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려동준(呂东俊, 1907—1932):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비서
안청송(安靑松), 안광파(安光波), 안광(安光) 등이라고도 했으며 길림성 연길현 조양천 태평구 길성촌 출신이다. 1923년에 룡정중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고 1926년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했다.
1930년 5월, 조양천에서 동만 5.30봉기에 참가했고 6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8월에 8.1길돈봉기에 참가했다. 8월에 중공연(길)화(룡)중심현위원회 비서가 되였고 1931년 4월 중공연화현위원회 정치부 서기로 되였다.
같은 달 중공동만특별위원회 비서로 임명되여 부임하던 도중 체포되여 1932년 10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류영호(柳永浩, 1904—1931): 중공로투구위원회 제1임 서기
길림성 룡정 세린하 사람이며 룡정 대성중학교 재학중 진보학생조직인 ‘광명회’에 참가하여 맑스-레닌주의사상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같은 해 8월 중공로투구위원회 제1임 서기가 되였으며 1931년에 중공평강구위원회 제4임 서기가 되였다. 1931년에 한차례의 반포위전투에서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연길현항일전쟁영웅렬사≫)
류태목(柳太目, ? — ?): 중공청원현위원회 위원
1930년 8월부터 1931년 9월까지 중공청원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리경천(李擎天, 1896—1941): 중공로흑산지구위원회 서기
길림성 훈춘현 대황구 사람이며 1931년 9.18사변 후 훈춘일대의 유격대에 참가하여 지하병원 원장이 되였다. 1934년에 조직의 파견을 받아 로흑산지구에 가서 지하당활동을 하면서 약품을 구해 유격대 부상자들을 치료해주었다. 1936년 가을, 중공로흑산지구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조직의 지시에 따라 ‘충성맹세회’(忠誓会)에 잠입하고 부회장이 되여 당을 위해 활동하였다.
1940년 여름, 지하당 신분이 폭로되였지만 여전히 산에 남아서 당원과 항일대중들의 항일활동을 지도했다. 1941년 8월의 어느 날, 몰래 집에 들렸다가 탐정들에게 발각되여 체포되고 동녕헌병대감옥에서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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