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근현대사는 중국과 일본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흥망성쇠에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나라의 국운은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으로서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는 세계 경제 성장의 중요한 동력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마리 용 사이에서 위험한 경쟁이 촉발됐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합하면 아시아 전체 경제의 3분의 2가 넘는다.
무인도와 암초로 구성된 군도인 댜오위다오(일본명은 센카쿠 열도)를 두고 벌어진 중일 영토분쟁을,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에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 간에 벌어진 포클랜드 해전에 비유하는 사학자들도 있다.
당시에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다고 아시아가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국과 일본—여기에 한국과 대만까지 합세했다-이 급파한 해양감시선과 순시함, 전투기가 동중국해 해상과 상공에서 위험천만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순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면서 군비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북한은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혼란의 배후는 뭘까? 바로 중국과 일본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역내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십년에 걸쳐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있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다.
19세기 하반기까지 중국은 아시아를 지배했다. 이후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중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력의 상대적 변화는,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비극적인 형태로 절정에 달했다. 참혹한 중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100만 병력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중국의 국운은 새로운 상승기를 맞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패권을 탈환하고 전시 굴욕을 만회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중국의 부활을 지켜보면서 일본을 20년 넘는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양국 정상 모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임자들에 비해서 국내에서 막강한 입지를 확보했다. 야심만만한 경제개혁 의제를 추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론적으로 중일 경제가 동시에 번영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고로 아시아 전체에도 이득이 된다. 어쨌든 양국은 대단히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공할 만한 산업조직과 기술력, 자금력을 갖춘 나라다. 중국은 저가 제조업체와 농산품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정치적인 문제가 양국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경제적 야심을 자극하는 요소는 뼈아픈 근현대사의 경험을 통해 각인된 민족주의다.
지난해 말 도쿄에서 열린 굉장히 대조적인 행사 두 개를 보면 이 같은 역학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12월30일 아베 총리는 핀스트라이프 수트에 핑크빛 카네이션을 꽂고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폐장일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닛케이지수가 한 해 동안 57% 급등한 것을 치하했다. 이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에 아베 총리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검은색 연미복을 차려입고 제사를 주관하는 신쇼쿠(神職)의 뒤를 이어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중국은 격분했다. 중국은 이를 일본이 과거사를 참회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제 아시아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중일 양국의 경제 개혁 성공 여부에 아시아의 앞날이 달려 있다.
아베 총리의 계획에는 위험이 동반된다. 아베 총리는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 공격적인 양적완화가 이를 가능케 했다. 이 같은 정책을 통해 물가가 상승하면,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국가채무에 부담을 한층 더 안겨줄 수 있다는 게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와는 정반대 노선을 지향한다. 그의 목표는 투자를 조절하고 부채 비율을 낮춤으로써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경제 시스템에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수 중심으로 경제 체제를 재편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너무 빨리 꺼지면 국가 성장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노선에 수반되는 리스크다.
번영만 추구하느라 안보를 등한시한 아시아에서 중일간의 과열 경쟁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만들 해법은 요원해 보인다. 아시아는 국가간 분쟁을 중재할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핫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현재로서는 양국 정상회담도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는 정치・외교적 긴장관계가 경제에 커다란 손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영토분쟁이 촉발된 초기 단계에 중국은 희토류 대일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일본은 초전도체 등 첨단 산업 핵심원료로 희토류를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해 일본 재계에 불안감이 확산됐다.
도쿄에서 근무하는 켄 커티스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부사장은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 회사 임원들의 자국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는 점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들은 (정치인들 대신) 직접 중국과 협상을 벌이고 싶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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