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체니 등 네오콘 “수니파 탄압 무시, 내전의 단초” 오바마 공격
ㆍ브라운리 교수 “미 정치적 장기 주둔 늘 실패” 등 다른 주장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가 초래하고 있는 이라크 혼란상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책임인가.
ISIL이 이달 들어 이라크 북서부 일대를 유린하면서 딕 체니 전 부통령과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이라크전 설계자들’이 한목소리로 현 혼란의 책임을 오바마 탓으로 돌리고 있다. 오바마가 집권한 2009년 이후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수니파를 배제하는 정치탄압을 자행해왔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2011년 말 완전 철군을 단행해 알말리키의 시아파 독재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가 2010년 3월 이라크 총선에서 1위를 한 수니·시아파 연합인 이라키야 대신 2위를 차지한 알말리키에게 정부를 구성하도록 지원해 결국 ISIL 준동의 불씨를 심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도 비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최근 애틀랜틱 온라인판에 따르면 오바마의 아프간·파키스탄 특사였던 리처드 홀브룩의 선임보좌관을 지낸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지난해 쓴 <불필요한 국가>에서 “(이라크의) 깨지기 쉬운 권력 공유 관리에는 세심한 미국의 관리가 필요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출구만 열심히 찾았다”고 주장했다. 나스르는 대표 사례로 완전 철군 일주일 전인 2011년 12월12일 백악관을 방문한 알말리키 총리와 오바마의 대화를 소개했다. 알말리키는 오바마에게 수니파인 타리크 알하시미 이라키야 부대표가 테러리즘을 지지했다고 말하자 오바마는 이라크 국내 문제라며 무시했다. 알말리키는 오바마를 만난 뒤 보좌관들에게 “봐라, 미국은 관심이 없다니까”라고 말했다. 나스르는 이는 알말리키가 오바마를 시험한 것인데, 오바마가 걸려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말 이라크 철군계획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오바마가 완전 철군을 이행할 때 미군 관계자들은 2만~2만5000명의 병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라크 의회가 미군의 면책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주둔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라크의 정치 불안에 대한 오바마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제이슨 브라운리 텍사스대 교수는 2011년 말 이라크 상황은 안정되지도 자립적이지도 않았으며, 미군을 남겨뒀더라도 이라크 내부 갈등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난 26일 워싱턴포스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군사개입한 19건의 사례를 통해 미군 주둔과 주둔국의 정치적 안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주둔기간이 1년 미만이고, 특정 지도자 제거 같은 목적을 위한 개입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 장기적이고 정치공학적인 야망이 클 경우에는 대부분 실패했다. 그는 3개 그룹으로 분류했는데, 첫 번째 그룹은 독일·이탈리아·일본 같은 2차 대전 주축국과 유고슬라비아로, 다행히도 미군 철수 이후 정치적 불안은 없었다. 두 번째 그룹은 레바논·도미니카공화국·그레나다·파나마·쿠웨이트같이 1년 미만 주둔한 국가들이다. 미국은 이들 나라에서 특정 지도자 제거를 노렸을 뿐 이후 과정은 개입하지 않아 정치적 안정에 성공했다. 마지막은 이라크를 포함한 나머지 국가들로, 미군은 2~10년 주둔하며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정치적 안정을 이뤄내지 못했다. 레바논·아이티·소말리아에서는 미군 철군 이후 이라크처럼 내전이 만연했으며, 남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외부 침략에 시달렸다.
브라운리 교수는 “기록을 보면 미군이 가장 확실한 불안세력이 됐을 때는 철군 때가 아니라 확실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도착한 때”라면서 “8년간의 이라크 점령은 국가 건설의 황금의 기회가 아니며, 몇 년 더 있다고 해도 잘해내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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