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기업들이 잘되는 이유는 뭘까.
‘원가보다 매출, 가격보다 가치’ … 이외에 다른 법칙은 없다
지구가 멸망해도 지켜야 할 3대 성공 원칙 … 딜로이트 리서치부문 마이클 레이너 대표
올해 초 미국 네바다대학에서 열린 TED 강연회에서 연설을 하는 마이클 레이너. 그는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간 자료를 분석해 성공 법칙을 도출했다. 레이너는 “내 인생에 이렇게 치열한 연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진 flickr.com] |
잘되는 기업들이 잘되는 이유는 뭘까. 가격 이상의 경쟁력을 추구하고 원가보다 매출에 집중했다. 이 두 가지 이외의 다른 원칙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매출 증가가 원가를 더 발생시킨다 해도 매출 증가를 선택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의 마이클 레이너 리서치부문 대표와 뭄타즈 아메드 최고전략책임자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한 책 『세 가지 법칙:탁월한 기업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작은 사진)에서 미국의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간(1966~2010년) 재무자료를 모두 분석했다. 이들 가운데 탁월한 실적을 유지한 상위 1.4%의 기업 344곳을 솎아내고 ‘경이적 기업(miracle worker)’ 174곳, ‘장수 기업(long runner)’ 170곳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9개 산업군으로 나눈 뒤 산업군마다 경이적 기업, 장수 기업, 평균 기업 한 곳씩을 골라 총 27개 기업을 집중 분석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성공(success)’의 계량화 작업인 셈이다.
『세 가지 법칙』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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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콜린스나 톰 피터스 같은 ‘경영 구루(guru)’들이 쓴 책을 보면 ‘창의력을 키우고 효율을 극대화하라. 고객관리를 철저히 하라’ 등의 얘기가 주종을 이룬다. 뭔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느낌이다.
이와 달리 계량적으로 도출해낸 3대 원칙 이외에 정말 다른 원칙은 없는 걸까. 최근 『탁월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의 한국어판을 펴낸 것을 계기로 미국 보스턴 사무소에 있는 레이너 대표에게 물어봤다.
-탁월한 실적을 내기 위한 원칙이 딱 두 개밖에 없다는 게 믿기 힘들다.
“우리의 두 가지 원칙은 저가 공세보다 높은 가치, 그리고 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고객 중심 경영이라든지 인수합병(M&A) 여부, 기업혁신·도전 같은 요소들도 다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딱히 탁월한 실적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2만5000여 개 기업이면 미국의 주요 기업은 다 분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탁월한 실적을 냈을 때는 가격 경쟁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했을 때, 그리고 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에 신경 썼을 때 딱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물론 탁월한 실적이란 게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우리의 산술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이 두 가지 경우, 그리고 이 원칙들 이외에 다른 원칙은 없다는, 세 가지 원칙만 존재한다.”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간 자료면 말만 들어도 방대하다.
“연구는 2007년 시작했다. 미국과 인도의 딜로이트 직원 40명이 달라붙어 분석 작업을 했다. 자료는 신용평가회사 S&P의 자회사가 제공하는 컴퓨스태트(Compustat) 서비스를 활용했다. 사례 연구(case studies)의 경우 30여 개 기업을 놓고 기업마다 수백 쪽에 달하는 자료를 분석했다. 또 통계 분석을 할 때면 수십 대의 컴퓨터를 일주일씩 동시에 돌리기도 했다. 내 일생에 이렇게 치열한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번 원칙(가격 이상의 경쟁력)은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중소기업은 적용하기 힘들겠다.
“중소기업은 물론, 경기가 나빠지면 큰 기업도 적용하기 힘들 것이다. 이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다소 실패가 있더라도 언젠가 가격 경쟁력을 뛰어넘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많은 기업이 저가 공세로 성과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탁월한’ 성과는 구조적으로 비가격적 차별성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신뢰도·편리성 같은 가치들은 소비자들이 비싼 금액을 감수하면서도 해당 제품을 구입하게끔 만든다. 우리의 바람은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원칙들을 경영자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대부분 이게 옳은 방향이란 걸 이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2번 원칙(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에서 원가 절감도 하면 좋은 것 아닌가.
“원가가 높다는 것은 비효율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좋은 품질의 원료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력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탁월한 수익성의 열쇠는 원가나 매출 어느 한쪽을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상호 의존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문제다. 탁월한 기업은 원가 절감이나 매출 증가에 따른 수익성의 트레이드오프에 직면했을 때 매출 증가가 원가를 더 발생시킨다 해도 매출 증가를 선택했다. 원가가 높아지더라도 많은 매출로 이어져 발생하는 수익은, 낮은 원가로 만들어지는 수익보다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증명됐다.”
-이 책과 톰 피터스, 짐 콜린스 같은 사람의 책들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많은 기존 경영 서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본받아야 할 모델 기업이 많이 생기지만 왜 그런 기업들이 자주 바뀌는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 기업들이 낸 성과를 경이롭다고 하는 건지 의문투성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성공 연구’가 범하는 근거 없는 선입견이나 추론의 오류를 피해가려고 노력했다. 산업별·연도별 차이 등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해당 기업의 퍼포먼스를 평가했다. 이처럼 다른 경영 서적과 달리 ‘성공한 기업’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산출해낸 게 가장 큰 차이 및 성과라고 하겠다.”
-당신은 미국 기업들만 분석했다. 이 세 가지 원칙이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기업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올해 우리는 126개국의 6만6000개 기업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한국에선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올 초 이 같은 분석을 책(『Found in Translation』)으로 펴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탁월한 성과가 국가별 차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밝혀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과 중국·일본에서는 우리의 오리지널 3대 원칙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클 레이너(Michael E. Raynor)
딜로이트 리서치부문 대표이자 딜로이트 내 ‘명성(Eminence)’ 부문의 혁신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유수 기업 CEO들의 자문 역할도 하고 있다. 2007년 펴낸 책 『위대한 전략의 함정』은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올해의 최우수 경제경영 서적’으로 선정했다.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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