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이후
알제리계 프랑스인 아버지
작년 시리아 IS부대서 아들 만나
어머니 편지 주며 “돌아오라” 호소
아들은 냉정히 돌아서
파리 테러 현장서 자폭 사망
사미 아미무르
2014년 6월 알제리계 프랑스인 마흐무드 아미무르(당시 66살)는 지뢰가 널린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옷장사를 하는 그는 일주일 전 집을 떠나 터키-시리아 국경 지역인 가지안테프 인근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유럽과 러시아, 북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람들과 작은 버스에 올라탔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를 헤치고 버스가 향한 곳은 시리아 최대 도시 알레포에서 북동쪽으로 80㎞ 떨어진 만비즈였다. 이슬람국가(IS)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이 보이자, 버스에 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미무르는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지하디스트가 돼버린 아들의 귀환을 설득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터였다. 하루를 기다려 어렵게 재회한 아들은 냉랭했다. 그는 100유로(약 12만5천원)의 돈과 어머니가 쓴 편지를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아들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며 돌려줬다. 아들은 어머니의 편지를 읽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버지는 혼자 프랑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미무르의 아들 사미 아미무르(28)는 지난 13일 밤 발생한 파리 동시테러 용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확인됐다. 그는 다른 두 명과 함께 바타클랑 콘서트홀에 난입해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진압 작전이 시작되자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시리아를 다녀온 이후 그해 12월 프랑스 <르몽드>에 자신의 여정에 대해 털어놨다. 당시 기사를 통해 그는 “아내와 함께 시리아로 가 아들을 다시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미는 파리 근교에 위치한 주택도시인 드랑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테러 용의자로 밝혀지면서, 드랑시 시청 뒤편 5층짜리 공동주택 3층에 살고 있던 가족들은 경찰 신문을 받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이날 보도했다. 그들과 같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익명의 이웃(63살)은 자신의 딸과 사미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며, 그에 대해 “평범하고 운동을 잘 하며, 사교성 좋은 아이”라고 기억했다. 또다른 이웃은 “사미의 아버지는 벨기에에서 일을 하느라 아내와 세 아이들을 가끔 보러왔다”고 했다. 파리철도공사(RATP) 소속 버스 운전사였던 사미는 2012년 일을 그만두었다. 그해 9월 예멘으로 출국하려다 적발돼 프랑스 당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이듬해 가을 자취를 감추면서 국제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사미는 당시 드랑시 출신인 또다른 2명과 함께 시리아로 향했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던 사미는 어느 순간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시리아로 가기 전부터, 부모는 아들의 극단주의 성향을 우려했다. 드랑시 부시장인 장크리스토프 라가르드는 16일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걱정하는 사미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대화를 꺼리고, 이슬람 사원 출입이 잦았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가족들에게 강요하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어머니의 걱정은 커졌지만,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진 못했다. 라가르드는 “사미의 어머니를 비롯해 시리아로 간 청년들의 부모가 함께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이들이 과격한 사상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가 없었다. 사미의 아버지가 홀로 시리아로 갔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던 청년들이 어떻게 시리아로 갈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드랑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시리아로 간 청년들이 왜, 어떻게 우리와 멀어졌는지 궁금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례신문 박현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