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혐의로 왕위 계승 서열 6위의 공주가 법정에 섰다. 같은 사건 연루자 17명과 함께였다. 특별 대우는 없었다.
11일 오전 스페인 동부 마요르카섬의 팔마 법원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48)의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50)가 탈세 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크리스티나 공주는 1975년 스페인 왕정이 복고된 이후 형사 재판을 받는 첫 왕실 인사가 됐다.
공주는 이날 재판정으로 향할 때나 나올 때뿐 아니라 재판정 안에서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판결이 어떻게 나든 공주로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셈이다. 탈세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고 8년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공주가 아닌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출신인 공주의 남편 이냐키 우르당가린이다. 그가 16명과 공동 운영하던 스포츠 자선단체 누스연구소를 통해 공금 600만 유로(78억원)를 횡령하는 등 사기·탈세 행각을 벌였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공주의 경우엔 연구소의 이사로 등재된 만큼 남편의 불법 행위를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공주는 "몰랐다"고 맞선다.
공주는 나머지 17명과 달리 탈세 혐의로만 기소됐다. 공주 측 변호인은 "공주에 대한 혐의는 세무당국이나 검찰이 아닌 민간 반부패 단체(클린핸드)에 의한 것이므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형법은 검찰뿐 아니라 민간에도 기소권을 준다. 스페인 검찰은 공주에 대해서는 탈세 혐의를 적용하지 말고 벌금을 부과하자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스페인이 유럽 재정 위기의 한복판에 있던 2011년 불거졌다. 공주 부부는 횡령한 돈으로 저택을 호화롭게 꾸미고 사치스런 휴가를 보내며 자신들과 네 자녀를 위한 개인 살사춤 레슨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공주의 부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초호화 사파리 여행을 다녀온 사실까지 드러났다. 카를로스 국왕이 아들에게 양위를 결정해야 할 정도로 반감이 커졌다. 그는 TV 연설을 통해 "정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해야 했다.
2014년 6월 왕위에 오른 펠리페 6세는 크리스티나 공주의 작위를 박탈했다. 1997년 우르당가린과 결혼하면서 얻은 '팔마 공작 부인'이란 작위다. 펠리세 6세는 자신의 즉위식에 공주를 초청하지도 않았다. 누나라도 봐주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이번 공개 재판도 그 연장선상이란 게 현지 언론의 해석이다. 공주 측에선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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