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눈물 쏟는 오바마, 꽃을 든 푸틴, 이웃집 아저씨 시진핑.
세계 주요국 대통령들의 '감성 정치' 경쟁이 불붙고 있다.
10일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역사적인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하던 도중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초등학교 학생들을 열거하다가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초강대국 미국 최고 권력자의 눈에서 흐른 눈물은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악어의 눈물', '오스카상 수상에 버금가는 연기'라는 반대 진영의 비판도 나왔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눈물이 국민의 심금을 울려 그간 번번이 가로막힌 총기 규제 강화를 현실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농구를 하거나 환한 미소로 아기를 들어 올리는 등 종종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임기 막바지로 갈수록 '감성 정치'의 색채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와 대담을 나눴다.
당시 대담에서는 거의 매번 질문을 받는 입장인 오바마 대통령이 거꾸로 인터뷰 진행자로 나서 로빈슨에게 지론을 던지면서 견해를 물었다.
에릭 슐츠 백악관 대변인은 AP통신에 "더 트인 방식으로 생각을 얘기할 기회를 대통령에게 주고 싶었다"며 "반드시 톱 뉴스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들을 국민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목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유명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의 '차에 타서 커피를 마시는 코미디언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생활을 공개하고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과거 냉전 체제에서 미국 라이벌이었던 러시아의 수장도 경쟁하듯 '소탈 행보'에 나섰다.
러시아에선 '상남자'에서 '꽃할배'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2016 푸틴' 달력이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달력 사진에서 상반신의 근육질 몸매를 과시한 모습은 강인한 이미지의 푸틴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다.
반면 푸틴 대통령이 꽃향기를 맡거나 전통 복장을 한 여성과 춤을 추고 온화한 표정으로 개를 끌어안는 장면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푸틴을 소재로 한 티셔츠와 머그잔, 냉장고 마그네틱에 이어 푸틴 향수도 등장해 서민 속으로 파고드는 대통령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에 맞춰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는 누구'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시진핑 주석의 별명인 시다다를 활용해 시 주석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하려고 만든 영상이었다.
지난해 영국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넥타이를 매지 않는 정장차림으로 '펍(영국 술집) 회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맨체스터시티 트레이닝구장을 찾은 자리에선 한 선수와 셀피를 찍는 여유로움도 보였다.
국가 지도자의 감성 정치학을 펴는 것은 진심이 잘 전달될 경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모셔널 인텔리전스 2.0'의 저자 트래비스 브래드베리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진심 어린 것이라면 지도자의 감성 표출은 강력한 동기 부여 효과를 거둔다"며 "적절한 상황에서 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도 인간'라는 사실을 부각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나치게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밀다 여론의 도마에 오른 지도자도 있다.
유럽의 여제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난민 문제가 유럽을 휩쓰는 와중에 독일 망명을 희망하는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에 냉정한 대응으로 구설에 올랐다.
원론적인 난민 정책을 밝힌 메르켈 총리의 냉담한 답변에 난민 소녀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소셜미디어에는 "동정심이 없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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