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후보 모두 "중산층 살리겠다"
몰락하는 중산층의 상실감 반영, 노동층 분노가 트럼프 현상으로… 경쟁하듯 월가·中에 비난 쏟아
- 힐러리는 "부자 증세"
부유층에 '버핏세' 도입하고 투자·배당 세율등 대폭 인상… 최저임금도 7.2→12달러로
- 트럼프는 "오직 감세"
年5만달러 이하 '소득세 0' 공약, 법인세 절반 줄이고 상속세 폐지… 포퓰리즘 비난에도 노동층 환호
미국 대선 후보 경선이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강세가 유지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일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 각각 압승을 거두며 대선 후보 지명의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여론조사기관의 예측대로 두 사람이 오는 15일 '미니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도 압승을 이어갈 경우, 사실상 승세를 굳힐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의 최대 화두는 '경제'다. 퓨리서치 설문조사에서 경제는 헬스케어(73%), 테러리즘(71%), 이민(59%), 환경(55%) 등을 제치고 83%의 지지를 얻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혔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력과 이념, 화법(話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은 세부적인 경제 공약에서도 정반대라고 할 만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공약이 출발하는 뿌리는 비슷하다. 몰락해가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감과 상실감이다.
◇선거 공약의 공통점은 중산층 복원
두 사람은 모두 '중산층 복원'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힐러리는 스스로를 '중산층 유권자의 챔피언'이라고 지칭하며 "중산층 소득 증대가 경제정책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를 향해 "공화당이 노동자층과 중산층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산층 복원을 위해 소득 25만달러 이하 가구는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미국 가구의 중위 소득(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이 5만3657달러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 공약은 중산층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작 백인 중산층과 노동 계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다. 저학력 노동자와 소규모 자영업자 등이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며, 경기가 좋은 도시보다 침체된 도시에서 그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배 계층에 대한 노동 계층의 정당한 분노가 트럼프 현상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며 "과거 반세기 동안의 경제 성장에도 그 과실이 노동 계층에는 사실상 전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월가(街)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산층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해서다. 두 후보는 "월스트리트(금융, 소수의 부자를 의미)를 개혁해 메인 스트리트(실물경제, 미국 일반 국민을 의미)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힐러리), "이 나라를 건설하는 데 보탬이 되지도 않은 헤지펀드 사람들이 운이 좋아 돈을 벌면서도 세금도 안 내는 것은 어이없고 잘못된 일"(트럼프)이라며 칼끝을 '부유한 '1%'로 돌리고 있다. 중국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힐러리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트럼프는 몇 술 더 떠 "중국은 환율조작국이며 저작권 도둑"이라며 "중국 수입품에 관세 45%를 매기겠다"고 했다.
◇증세냐 감세냐, 해법은 딴판
중산층 복원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어떻게'에 대한 두 후보의 해법은 전혀 다르다. 힐러리는 부자 증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현재 최고 39.6%인 개인소득세 세율을 43.6%로 올리고, 투자·배당소득에 대한 세율도 현행 최고 20%에서 24%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 연간 100만달러 이상을 버는 부유층에게 적용되는 실효세율을 최소 30% 이상으로 하는 이른바 '버핏세'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민간싱크탱크인 조세정책센터(TPC)는 클린턴의 공약이 실행될 경우 소득 상위 1%가 내야 하는 세금이 평균 8만8284달러 늘어 세후 소득이 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법인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정유사에 대한 세금 감면을 제한하고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한 탈출세(exit tax)를 신설하는 등 기업에 대한 부담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을 인프라와 과학기술, 교육, 환경 등에 투자해 경제를 살리면 일자리와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이 힐러리 진영의 논리다. 현행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2달러로 인상하고, 유급 출산휴가와 병가(病暇) 제도를 도입해 중산층과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약도 함께 내걸었다.
반면 트럼프가 내놓은 해답은 클린턴과는 정반대로 '감세'다. 그는 현재 7단계로 나눠져 있는 세율을 4단계로 간소화하고, 연소득 5만달러 이하 가정(2인 기준)의 소득세율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유권자 7500만명을 소득세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고세율 역시 25%로 확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또 현재 최고 35%인 법인세는 15%로 낮추고, 상속세도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이렇게 세금을 낮추면 중산층과 서민층의 가처분소득이 늘고, 해외로 도망쳤던 다국적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와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대규모 감세로 인한 재정 적자 우려에 대해서는 작은 정부를 통해 재정 지출을 축소하고, 복잡하게 돼 있는 각종 세금 감면을 축소해 메꿀 수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감세 공약이 일시적으로 가처분 소득·소비·투자를 늘리는 데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허황되고 지속 불가능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조세정책센터(TPC)는 트럼프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미국 정부가 향후 10년간 9조5000억달러(1경1467조원), 20년간 24조5000억달러의 부채를 지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 매체는 트럼프의 경제 공약을 두고 '엉터리 경제학(Mockery of Economics)'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감세 정책이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미국의 세법 규정이 너무 복잡해 부자들은 다 빠져나가고 중산층만 우직하게 세금을 낸다는 심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재산으로 인한 후광 효과일 수 있다"(톰슨로이터)는 분석도 있다. 40억달러에 달하는 그의 막대한 부가 허황된 공약마저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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