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오바마 ‘비핵화’ 행보… ‘전범국 日’ 희석시킬 우려
[동아일보]
美日 “27일 히로시마 방문” 발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하기로 결정한 것은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하겠다는 선언과 관련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 연설에서 비핵화 선언을 발표한 뒤 같은 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2010년부터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며 비핵화 및 핵 감축을 위한 행보를 계속했다.
일본의 원폭 피해자들과 반핵운동단체들은 이런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히로시마를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히로시마평화공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원폭 돔이 있으며 매년 원폭 투하일인 8월 6일 희생자 추모 및 평화기념 행사가 열린다.
원폭 투하로 상처를 입은 일본인과는 달리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에 대한 원폭 투하가 종전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한다. 현직 대통령의 원폭 피폭지 방문은 사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일본을 방문할 때부터 히로시마 방문을 추진해 왔다. 올해 주요 7개국(G7) 회의 의장국인 일본은 임기 마지막 해에 일본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필두로 총력전을 폈다. 마지막 기회인 만큼 ‘오기만 한다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조건도 달았다.
지난달 G7 외교장관 회의를 히로시마에서 연 것도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위한 포석이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외교장관 회의 중 현직 국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위령비에 헌화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히로시마에서 본 것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미국 내 여론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은 원폭 투하가 종전을 위해 불가피했으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유지해 온 만큼 이번 방문이 ‘사죄 외교’로 비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사과 방문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존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사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NSC) 부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사용 결정에 대해 다시 논의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2차대전 당시 조국과 세계를 위해 희생한 미국의 군인들에 대해 영원히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기 내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의 비핵화 연설을 정치적 업적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군사 대국화와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어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