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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대로알기] 일순간 돌변하는 일본식 ‘지킬과 하이드’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5일 09시07분    조회: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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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포트] 도라에몽과 일본식 ‘지킬과 하이드’

친절하고 상냥하다가도 일순간 돌변하는 아마에의 그림자…
미국에 대한 일본의 일방적인 애정이 상처 입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야스쿠니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태평양전쟁 사망자들의 모습. 아마에가 허물어진 일본의 공기는 광기로 흘러간다

초등학교 다니는 자식을 가진 부모세대라면 알겠지만, 도라에몽(ドラえもん)이란 일본 에니메이션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유럽·중국 전 세계 어린이가 도라에몽에 빠져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도라에몽에 ‘중독된’ 어린이 때문에, 정부가 텔레비전 방영 자체를 금지했다고 한다. 1969년 첫 등장한 도라에몽은 만화·소설·애니메이션 영화 심지어 뮤지컬이나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져 전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원작자는 후지코 후니오(藤子不二雄)로, 1996년 세상을 떠났다. 그를 잇는 프로덕션이 계속해서 드라마를 만들어 1주일 단위로 내놓고 있다. 어린이용 작품이라곤 하지만, 사실 50대인 필자는 물론 10대부터 노년층까지도 즐길 수 있는 가족형 드라마에 해당된다. 30분짜리 단막 스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2시간짜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통제되지 않는 일본식 광기 부르는 아마에(甘え) 집단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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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에에 기초한 응석과 재롱이 어린이들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도라에몽의 인기와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글로벌 인기상품으로 자리 잡는다. 스토리는 크게 6명으로 진행된다. 4차원 미래세계에서 온 ‘만능 도구’의 원천인 도라에몽과 같은 학급 내 다섯 명의 초등학교 학생이다.

공부와 운동은 물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노비타(のび太),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는 착하고 예의 바르며 공부도 잘하는 시즈카(しずか), 주로 노비타를 괴롭히는 악역을 맡는 힘자랑꾼 자이안(ジャイアン), 부자 아버지 덕분에 상류사회 취미 생활을 하는 스네오(スネ夫), 반장이자 스포츠 만능과 100점 만점 전방위 모범생인 데키스기 히데토시(出木杉英才)가 고정 출연진이다.

스토리는 늦잠 지각에 익숙한 노비타를 돕는 도라에몽의 만능 도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운동회 달리기 선수로 뽑힌 노비타가 온갖 변명을 대면서 출전 불가능을 호소하면 도라에몽이 마법 운동화를 꺼내 전한다. 신발을 신는 순간 초스피드 1등이 되지만, 자이안과 스네오가 비밀을 알아채고 훼방을 놓는다. 이 과정에서 시즈카, 데키스기도 등장해 노비타를 도우며 함께 대처해나간다. 전체적으로 보면 노비타가 노력하고 분발하는 과정이 스토리의 핵심이다. 자이안과 스네오가 심술궂게 굴 때도 있지만, 결국은 서로가 도우면서 사이 좋게 지낸다는 일본의 미덕인 ‘화(和)’의 세계를 연출해낸다.

도라에몽을 대하면서 주목한 부분은 일본인의 평균적 감각이다. 웃고 소리치는 평면 수준의 어린이 오락물로서만이 아니라, 드라마 등장인물의 역할이나 역학관계를 통해 본 입체적 분석이다. 도라에몽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입체적 차원에서의 메시지가 일본의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면 분석으로 본다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도라에몽이다. 비밀도구도 만들어내고 하늘을 날아 다니는, 귀 없는 대두(大頭) 도라에몽이 중심에 서 있다. 시중에 팔리는 캐릭터를 봐도 도라에몽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일본 성인들이 보는 입체적 분석에 따르면 주인공이 달라진다. 공부도 못하고 3단틀도 넘지 못하는 약골 노비타가 중심이다. 모자라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꾸지람 속에서 살아가는 루저(Loser) 같은 캐릭터다. 한국에서라면 상냥하고 예쁜 얼굴의 시즈카, 미남에다 100점 만점 만능운동선수인 데키스기가 스토리의 중심에 설지도 모르겠다. 튀고 창조적인 캐릭터를 선호하는 한국인이라면 근육질 자이안을 우선할 수도 있다.

응석과 애교는 일본식 논리에 따르는 외국인에 한해 통용된다.

평균 일본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비타’
노비타가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면에서 평균 일본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간바레(頑張れ!)’, 즉 화이팅을 슬로건으로 외치면서 살아간다. 가족·학교·사회·국가 그 모든 영역에서,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와 같은 슬로건을 접할 수 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식으로,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매년 겨울 서울은 세계적 입시경쟁의 현장으로 비치지만, 일본과 비교해보면 아직 여유로운 나라가 한국이다. 입시경쟁 하나만 보면 한국이 터져나가겠지만, 인생 전체를 통틀어 나타나는, 장시간에 걸친 ‘만인 대 만인’의 경쟁상태는 일본이 상위에 있다. 플랫폼 도착 시간이 늦다고 문책당한 전철 운전사가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내다가 대형사고를 낸다. 문책의 근거가 된 도착 지연 시간은 1~2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모두가 조이고 살아가는 경쟁 속에서 1~2분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도쿄(東京)에서 접하는 99% 온타임 지하철은 바로 그 같은 ‘처절하고도 비정한’ 일본적 노력과 땀을 기반으로 한다.

노비타 같은 캐릭터는 그 같은 상황을 이겨내기 어려운 보통 일본인의 분신에 해당된다. 노비타라는 이름은 ‘성장한다’, ‘늘어난다’는 의미의 일본어 ‘노비루(伸びる)’의 음을 차용한 것이다. 간바레, 즉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노비타는 바로 일본인 스스로의 모습에 해당된다.

도라에몽은 국제정치 속의 일본을 알리는 상징적 드라마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통해 본 국제정치다. 21세기 국제정치에서 노비타는 일본이다. 일본인 개개인의 분신인 동시에, 국제정치 속에서의 일본이 바로 노비타다. 강한 무력도 없고 여기저기로부터 꾸지람이나 듣고, 끝없는 반성만 해야 하는 노비타가 일본이란 나라의 분신이다.

노비타를 괴롭히는 자이안은 중국이다. 엉뚱한 핑계를 대면서 힘을 통해 노비타를 못살게 군다. 고급 요리와 브랜드 상품에 밝은 부잣집 아들 스네오는 한국으로 비친다. 돈 많은 아버지를 자랑하는 스네오는 상황이 불리하면 언제든 입장을 바꾼다. 거구 자이안을 통해 자신의 입지도 확보해나간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부모의 말도 잘 듣는 시즈카는 유럽 정도로 해석된다. 만능 도구를 만들어내는 도라에몽은 글로벌 수퍼파워 미국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것은 자이안의 의미다. 자이안이 일본을 못살게 구는 중국으로 여겨진 것은 21세기 들어서부터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자이안은 미국의 분신에 해당된다.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자이안이 무식한 미국의 이미지다. 20세기의 도라에몽은 세상사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神)쯤에 있다고 보면 된다. 자이안의 이미지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변한 것은 노골적으로 무력 팽창에 나서는 중국 탓만은 아니다. 반미성향이 강하던 단카이(?塊)세대가 사라지고, 중국에서 벌어졌던 어두운 역사가 잊혀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반미는 사라지고 반중은 뜨고 있다.

노비타가 일본인의 분신이자,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에 해당된다는 분석은 평균 일본인이 내린 자체 평가에 따른 것이다. 외국인인 필자는 일본인이 간과하기 쉬운, 전혀 다른 각도에서의 증거를 통해 ‘노비타=일본 일본인’이란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도라에몽이 주는 최대의 메시지는 집단 속의 ‘화(和)’에 있다.

응석, 아양, 엄살 정도로 해석될 ‘아마에’
키워드는 ‘아마에(甘え)’라는 말이다. 아마에는 한국어로 풀이할 때 ‘응석, 아양, 엄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가까운 사이라는 전제 아래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엄살이나 아양을 떨고 그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간관계를 이른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상대의 호의에 맞춰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것, 친한 사람에게 응석을 부리면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등으로 풀이된다. 일곱 살짜리 어린이가 부모에게 매달리며 응석을 부리며 하는 행동이나 언어 같은 것이 아마에의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영미권에서는 아마에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풀이할 수 없는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서구인에게 아마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 해도 비상식적이고 뭔가 덜 떨어진 행동 유형으로 받아들인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Spoil(부모가 어린이에게 너무 관대해서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는), Dependent(상대에게 의존적)와 같은 단어가 차용될 뿐이다. 유치하고 주변 상식과 유리된,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영어로 번역된 아마에의 의미다.

영미권에서는 아이가 응석을 부리고, 부모가 거기에 맞춰주는 것을 수준 이하로 처리한다. 사랑의 표현으로 응석을 부리고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지만, 영미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이는 개인주의 사상에 입각한 세계관이라 볼 수 있다. 어린이가 걷다가 넘어져도 부모가 도와주지 않고, 잘못할 경우 대충 넘어가지 않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아마에 문화권과 거리가 먼 영미권의 특징이다.

노비타가 일본, 일본인의 분신이 될 수 있는 것은 노비타가 보여주는 아마에 심리상태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늦게 일어나고 학교에 늦어서 응석을 부리면서 대충 넘어가려 하고, 부모나 학교도 대충 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라에몽의 자세를 봐도, 노비타의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요구에 맞춰 만능 도구를 제공한다. 숙제를 하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는 노비타를 위해 공부 전문 아바타를 만들어 노비타에게 제공하는 식이다. 스스로 열심히 하라고 지도하기보다, 황당한 만능 도구를 통해 응석을 받아주는 식이다. 주체적, 독립적, 자주적이지 못하고, 남에게 기대고 핑계로 일관하면서 응석을 떠는 것이 노비타의 핵심 캐릭터다. 허구한 날 텔레비전 앞에서 도라에몽을 지켜보는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의도도 있지만, 노비타가 보여주는 아마에야말로 영미권에서 나타나는 반(反)도라에몽 정서의 근원이라 볼 수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화염에 휩싸인 일본 공사관의 일장기를 일본 공사가 챙겨 나왔다. 불에 뛰어들더라도 일장기를 지키는 게 아마에 속에 잠재된 공적 책임이다.

일본 전체에 넘실대는 조직·사회·국가적 차원의 정서
아마에가 일본, 일본인 특유의 심리·정신·행동 유형으로 규정된 것은 1971년부터다. 일본어로 ‘아마에의 구조(甘えの 構造)’로 번역된 라는 책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자로 도쿄대 명예교수를 지낸 도이 다케오(土居健?)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일본을 연구하는 영미권 사람이 읽는 필수서적 3점을 고르라면, 뉴욕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1946년 펴낸 <국화와 칼(菊と刀)>, 1900년 농학자 니토베 이나조우(新渡??造)가 영어로 출간한 <부시도: 일본의 혼(Bushido:The Soul of Japan)>, 도이 다케오의 <아마에의 구조>를 손꼽을 듯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워싱턴 내 일본연구가 가운데 3권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전무하다. 하버드대의 일본학, 나아가 아시아학의 대부격인 에즈라 보겔과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조셉 나이가 극찬한, 일본 연구의 기본서가 <아마에의 구조>다.

도이 다케오는 동양의학과 무관한, 철저히 서방의 정신의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영미권의 정신, 심리, 행동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미국에 없고,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행동유형을 발견한다. 바로 아마에다.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부모와 자식간에 이뤄지는 유치한 행동만이 아니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적당히 넘어가는 문화가 일본 사회 전체에 넘실댄다. 그같은 동서 비교 행동·행태론에 주목한 책이 <아마에의 구조>다.

도이 다케오에 따르면 아마 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인간 존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리의 상황을 부정하고, 분리가 가져올 고통을 잊으려는 심정인 동시에, 분리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닥칠 갈등과 불안을 숨기려는 심리상태다. 이 같은 개념에 입각해 도이 다케오는 아마에를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본 특유의 문화라고 규정한다. 아마에를 나쁘거나 좋다는 식의 가치판단과 무관한, DNA의 하나로 해석한다. 그러나 응석이나 아양 같은 것은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아시아권 내의 일반적 DNA에 해당된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도이 다케오가 지적한 일본 특유문화론를 부정하면서, 한국에도 일찍부터 아마에 문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화제가 된<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에서 밝힌 내용이라고 한다.

필자는 ‘감히’ 이어령 전 장관의 고견에 맞설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어령 전 장관이 말하고, 대부분의 한국인이 동의할 ‘아마에= 동양 전체의 문화’에 덧붙여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도이 다케오가 강조한 아마에는 구조적 차원의 아마에를 의미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 청춘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개별적·가족적 차원의 아마에만이 아니라, 일본 전체에 넘실대는 조직·사회·국가적 차원의 아마에가 도이 다케오의 연구 테마다. 한국에도 아마에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필자가 판단하는 구조로서의 아마에는 일본, 일본인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피나 정으로 맺어진 가까운 사이만이 아니라, 사회·국가와 같은 대규모 조직에서도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 아마에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과 그에 맞선 상대가 행하는 대화 내용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도움을 청하고, 그에 맞서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때 나타나는 정형화된 장면이다.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何とかできませんか)?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何とかやってみます).” 절대위기에 빠진 사람이 던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의 읍소형, 응석형 부탁과 그에 맞춘 답이다.

“좀 어떻게…” 대화는 사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한국 곳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아마에의 본보기에 해당된다. 도시가 아니라, 작은 동네에 거주하면서 서로가 친하고 잘 알고 지내는 과정에서 탄생된 대화 스타일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에서는 그 같은 대화가 전부 사라진 듯하다. 도산 직전인 기업 사장이 은행에 찾아가 “좀 어떻게…”라고 말할 배짱도 없고, 말한다 해도 들어줄 리 없다.

다도(茶道)는 차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집단 속의 일본인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워싱턴 주일 대사관 내에 설치된 다실(茶室).

최후의 상황에서 전해지는 “좀 어떻게…”
일본은 어떨까? 20세기에 비해 약화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아마에형 대화는 21세기에 와서도 건재하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조건 없이 상대에게 무작정 매달리고, 상대는 그 같은 상황을 이해하면서 무엇이 도움이 될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서 지원한다. 물론 지원할 경우, 나중에 그에 따른 유상·무상의 보상을 무언으로 기대하게 된다. 돌고 도는 것이다. 사실 “좀 어떻게…” 대화법은 막판에 몰린 경우에 나오는 최후의 응석에 해당되기도 한다. 참고 또 참지만 하늘도 도와주지 못할 도저히 힘든 상황에 들어설 경우 “좀 어떻게…”가 전해진다. 그동안의 인고의 시간을 지켜본 상대는 그 같은 최후의 응석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마에의 예로 차(茶) 접대에 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내 개인 집이나 회사에 찾아가면 반드시 차를 권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권하는 스타일과 너무도 다른 것이 일본식 접대 법이다. “차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어떤 차를? 아무거나 좋습니다. 5월에 맞춰 신차(新茶)가 나왔는데 향이 좋습니다만… 좋습니다.” 미국의 경우 어떤 식의 대화가 이뤄질까? “차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어떤 차를? 커피가 좋습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칸 어떤 종류를? 아메리칸이 좋습니다. 설탕은 몇 개? 두 개로. 크림과 우유 어느 쪽을? 우유로 해주세요. 몇 스푼 정도? 두 스푼 정도 우유가 좋습니다.” 커피와 함께 설탕과 우유를 통째로 대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회사나 가정이라면 구체적인 취향을 전제로 미리 준비해 대접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오하이오주 미국인 친구집에서 경험한 것이지만, 설탕·우유·커피의 온도 등에 관련된 개인적 취향에 대한 가정주부의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대충 10명 정도에게 물어본 뒤 그대로 전부 재현해서 준비한다. 친구의 부인이 특별한 기억력의 소유자라 생각했지만, 의외의 배경을 알게 됐다. 커피 취향에 관한 개별 질문과 그에 따른 정확한 대응은 백인가정 모두가 당연시하는 손님 접대 법이란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일본의 경우 일본인의 경우 차를 기본으로 한다. 영미권 손님에게는 커피를 전제로 하면서 미국에서처럼 상대의 기호에 맞추는 식으로 대응한다. 일본인 이외의 아시아계 손님에게 차를 권할 때도 구체적으로 상대의 기호에 맞춰가면서 권한다. 예외도 있겠지만, 한국의 경우 그 같은 세부적인 구별이 없다. 아시아인이든 영미권이든 커피나 차 하나로 통일해 대접한다. 영미권 손님에게 커피에 관한 개인적 취향을 묻지도 않는다. 눈빛만으로도 대충 상대의 의향에 맞추는 아마에 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하다.

회사 선배가 신입사원들의 실수를 탓할 때 던지는 말 중의 하나로 “원래부터 그런 거 몰랐어?(決まっているんじゃ)”라는 표현이 있다. 가령 상사가 2만 달러짜리 자동차를 타고 회사로 출근할 경우, 부하는 2만 달러 이하이거나 아예 도보로 출근하는 식의 자세다. 연공서열, 장유유서와 같은 유교적 사고의 결과라 볼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요소들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원래부터…’ 논리다. 사실 ‘원래부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일본 조직 내에서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단지 지금처럼 해오던 것처럼, 서로 믿고 따르면 거기에 맞게 답이 내려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이 존재한다.

가미카제(神風) 대원의 마지막 인사는 ‘가겠습니다(行きます)’이다. ‘원 웨이 티켓’으로 무장한 자살특공대에 비견될 수 있다.

“원래부터 그런 거 몰랐어?(決まっているんじゃ)”
‘원래부터…’는 그 같은 조직 내 분위기, 즉 공기(空氣)를 상징하는 말이다. 공기를 통해 조직 전체가 돌아가고, 아마에 같은 행동·행태가 일상화된다. 공기를 못 읽는 외국인, 기존의 공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아무리 대단해도 의미가 없다. 개별적 실력이 아니라, 전체를 가로지르는 공기에 근거한 처세와 자세다. 아마에는 그 같은 구도 속의 윤활유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응석이나 애교 같은 것이 한국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기에 기초한 사회·국가 차원의 아마에는 한국에 전무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원래부터…’, ‘좀 어떻게’ 식의 대화와 드라마 도라에몽에서 접하는 공통점으로 ‘신용’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윤리이자 가치다. 단일민족에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동질성에 기초해, 서로 의지하고 따르는 구조가 신용사회를 낳고, 결국에는 아마에 같은 DNA가 보편화된다.

한국인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로, 일본인의 친절에 관한 부분이 있다.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자세나 행동을 보이다가도 한번 돌아서면 전혀 딴 사람이 된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이란 결론으로 나아간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판단도 아니다. 일본인이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자세를 보이는 것은 서로 믿는 관계에 한한다. 신용관계가 무너지거나, 그럴만한 조짐이 보일 경우 차갑게 변한다. 한국에도 정착되는 듯한 왕따, 즉 이지메(イジメ)는 그 같은 차가운 현실의 일상적 예에 해당된다. 서로 믿는 신용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행하는 사회적 약속에서 기초한다. 굳이 말은 안 하지만, 어릴 때부터의 교육을 통해 서로가 느끼고 알고 있다.

온갖 애교로 범벅이 된 아마에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양면의 얼굴을 한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아마에로 대하던 서로의 관계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경우 상상 밖의 행동이 연출된다.

한국인이라면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영화로도 수 차례 만들어진 실화, 아베 사다(阿部定) 사건이다. 군부 쿠데타인 2·26사건이 터진 해로, 중국과의 전쟁에 들어간 1936년 발생한 사건이다. 주인공은 창녀이자 접대부인 31세 사다라는 여인이다. 오랫동안 교제해오던 남성과 여관에 투숙해 성교를 벌이던 중 목을 졸라 살해한다. 남성의 시신에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혈서도 칼로 새겨 넣는다. 이어 남성의 국부를 잘라낸 뒤 잡지에 싸서 들고 다니던 중 체포된다. 남성의 성기를 자신의 성기 안에 넣어 돌아다녔다는 얘기도 있다.

사다가 남성을 죽이고 성기를 자른 엽기적 행위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정신 이상이라는 설도 있지만, 남성이 원래 부인에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다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주장도 있다.

둘째는 1981년 파리에서 벌어진 이른바 파리 인육사건이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으로 일본인 유학생 사가와 잇세이(佐川一政)가 저지른 범죄다. 친구인 네덜란드 출신 여자 유학생을 집에 초대해 살해한 뒤 피에 젖은 시신과 성교를 벌인다. 이어 시신 일부를 잘라내 생으로 먹고, 작게 잘라낸 뒤 사진도 찍는다. 남은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 튀겨먹기도 한다. 일본인 전체를 식인종 이미지로 만든 사건으로, 이후 범인은 정신병을 이유로 석방돼 일본에 송환된다.

사다와 사가와의 엽기적 살인과 이후의 행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아마에가 갖고 있는 어두운 이면에 관한 것이다. 믿고 따랐던 사람에 대한 유치할 정도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좌절과 배신의 결과가 바로 사다와 사가와의 행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엽기적 살인범의 경우 주변상황을 통해 이미 예정된 사건이라 점쳐볼 수가 있다. 일본의 경우 그 같은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 아마에에 기초한, 너무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860년 3월 28일 뷰캐넌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일본 대표단. 미국에 대한 안보 의탁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전후 일본 아마에의 대표적 사례다.

예측 통하지 않는 일본의 엽기적 살인사건
일본만큼 범죄자 스스로가 자신의 범행을 ‘곧바로’ 고백하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경찰이 들이닥치는 순간 머리를 떨구고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한다.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용의자는 극히 드물다. 최근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게 착하고 예의 바르던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반응이다. 아마에에 기초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질 때 상상을 넘어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일수록 상황이 변하면 아마에의 정반대편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특정 일본인만이 아니라, 아마에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인 모두가 그 같은 DNA를 갖고 있다고 봐도 된다. 식민지 당시 한국인이 경험했던 일본의 잔인성은 바로 그 같은 아마에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바로 일본의 광기다. 우향우로 치닫는 일본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아마에의 이면에 놓인 광기 때문이다.

미일안보동맹은 일본 지식인들이 <아마에의 구조>라는 책을 언급하는 순간 떠올리는 구체적인 본보기다. 승전국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응석을 떨면서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로 일관해온 것이 일본의 자화상이란 것이다. 응석이 잘 안 받아들여지면 돈으로 보충해온 것이 그동안의 일본이다.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미일안보동맹을 파기할 것 같은 발언을 흘리지만, 만약 그 같은 현실이 눈앞의 현실이 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다시 말해 미국에 대한 일본의 아마에가 상처를 입을 때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도이 다케오의 아마에 정의에 따른, ‘분리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닥칠 갈등과 불안을 숨기려는 심리상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경우에는?

현재의 미국 상황을 보면 당장 트럼프가 당선이 안 된다고 해도 미일동맹이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 이상 국제경찰은 없다. 도라에몽이 더 이상 만능 도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아마에로 일관해온 약골 노비타와 그의 친구들이 과연 어떤 자세로 달라질지? 곧 닥칠지도 모를 한반도의 엄청난 변화는 노비타의 그 같은 극적인 변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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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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