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차라리 독재 시절이 낫다' 테러에 찢긴 아랍 민주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9일 07시30분    조회:149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재스민 혁명 5년, 끝나지 않은 아랍의 봄 <1>갈림길에 선 튀니지




[편집자주]

23년 장기 독재를 무너뜨린 2011년 1월 튀니지 민주화 혁명은 아랍세계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튀니지 국화(國花) 이름을 딴 재스민 혁명은 그 의미만큼이나 강력한 파장으로 아랍세계에 번졌다. 인근 이집트의 30년 독재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연달아 고꾸라졌다. 중동의 봄은 그러나 급진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출현으로 저지당했다. IS가 민주화의 혼란한 틈을 비집고 들어서면서 아랍 각국이 내전 상태로 빠졌다. 여기에 주요 강대국까지 개입하면서 중동 전체가 아노미 상태다.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들마저 휘청거렸다. 튀니지 혁명 5주년을 맞은 지금도 중동은 갈림길에 서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터키 현지를 찾아 아랍과 중동이 제2의 봄을 맞을 수 있을지를 점검했다.


지난달 11일 튀니지 남부 인구 4만명의 소도시 시디부지드. 아랍의 봄에 불을 댕긴 재스민혁명의 발원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시민들은 “우리도 당신들(한국)처럼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긍지를 드러내면서 “여전히 가난에 신음하고 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일거리가 없는 청년들은 관청 앞 카페에 단체로 모여 물담배 ‘시샤’를 피웠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했다는 하세프(27)씨는 “절망감에 테러단체나 마약에 빠져드는 이들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재스민혁명은 사회운동가들의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벤 알리 독재정권에 이어 들어선 이슬람 정부는 혁명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혁명 이후에도 거리 곳곳에는 노숙자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과 실업은 청년들을 이슬람국가(IS)로 유혹하는 미끼와도 같았다. 중동의 봄 기운을 이어가려는 유럽연합(EU) 등 주변국의 노력 정도가 실낱 같은 희망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희미해지는 혁명의 기억들

시디부지드 관청 앞에서 만난 인권연맹(LTDH) 회원 엔시리 부데르발라(58)씨는 2010년 12월 청과상 모하마드 부아지지(26)가 관청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하며 만들어 낸 혁명의 불씨를 생생히 기억해 냈다. 그는 “분노한 시민들이 ‘내가 바로 부아지지’라며 자유와 일자리를 요구했다”면서 “첫날에는 100명, 이튿날에는 300명, 다음날에는 1,000명이 모였고 마침내 벤 알리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부아지지가 만든 불씨는 들판의 불처럼 번졌다. 극심한 생활고와 억압통치에 눌린 민중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전국적인 봉기에도 끄덕하지 않던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당시 튀니지 대통령은 끝내 2011년 1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튀니지 국민들은 환호했고, 재스민혁명은 인근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도 혁명의 불쏘시개를 제공했다.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선사했다. LTDH 회원인 부데르발라씨는 “혁명 전에는 인권 활동을 하다 연행된 적도 있다”며 “LTDH 사무실조차 열지 못했는데 이제는 직원이 3명이나 된다”고 뿌듯해했다. 시지부지드 거리에서 만난 압델 가말(25)씨는 “독재 정권 때는 서너명만 모여도 군인이 총을 겨눠 해산시켰다”며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혁명의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1년 벤 알리 독재정권이 무너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성향의 엔나흐다(Ennahda)당이 의석 30%를 차지해 집권했다. 엔나흐다는 튀니지의 이슬람화를 추진했다. 엔나흐다의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시민들의 시위가 격화되며 경제는 꼬꾸라졌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즐비했고, 도로에는 운전자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걸인도 늘었다. 2013년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가 결성돼 대화로 엔나흐다를 퇴진시키고, 2014년 니다튀니스당이 집권하기까지 튀니지는 정치ㆍ경제 혼란에 휩싸였다.

이러다 보니 시디부지드 주민들은 한때 부아지지를 기리며 관청 앞에 걸어 놓았던 대형 초상화와 꽃다발을 치워 버렸다. 시디부지드 시민들은 “벤 알리만 쓰러뜨리면 모든 것이 변할 줄 알았다”며 “그의 몰락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바르도 박물관 20번 방.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가난과 실업을 해결하지 못한 혁명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바르도 국립박물관에 만난 경비원 모하메드 모가디(37)씨는 지난해 3월 관광객의 비명소리를 악몽처럼 기억했다. 당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 2명은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들고 박물관에 난입해 관광객을 향해 난사했다. 8명이 몰살 당했다는 15평(50㎡) 규모 20번 관람실 곳곳에는 총탄 흔적이 선명했다. 모가디씨는 “테러범은 튀니지인은 살려주고 외국인만 골라 죽였다”고 했다. 희생자 22명 가운데 튀니지 경찰 1명을 제외한 21명이 독일, 일본, 러시아 등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모가디씨는 “하루 최대 3,000명이 방문했지만 지금은 하루 100명도 찾지 않는다”며 “박물관뿐 아니라 주변 관광지도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튀니지는 기원전 명장 한니발이 활약했던 옛 카르타고의 땅이다. 수려한 자연경관 덕분에 관광산업은 튀니지 국가경제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관광산업은 붕괴했다. 모두가 테러 때문이다. 중동 전체로 번진 IS는 튀니지의 민주화를 두고 보지 않았다. 지난해에만 3월과 6월 테러로 관광객 수십명이 사망했다. 심지어 11월에는 대통령 경호원 버스가 테러를 당해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광객 발길이 끊긴 관광지는 황량했다. 튀니스 도심 메디나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 오트만(52)씨는 음료와 과자가 쌓인 진열대를 보여주며 “원래 관광상품이 있던 자리인데 손님이 없어 안쪽으로 치워 버렸다”면서 “지금은 상인들을 상대로 담배와 콜라를 팔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 도시의 원형을 보존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 시장에는 하루 수백대의 관광버스와 수천명의 외국인이 몰렸다고 한다. 오트만씨는 “지금은 겁에 질려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튀니지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 573개의 호텔 중 9월까지 30%(192개)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관광객 수는 130만명으로 2014년의 53% 수준으로 떨어졌다. 호텔 매니저 에비나(34)씨는 “200여개 객실 중 20여개만 차 있다”며 “16년 동안 호텔에서 일했는데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관광산업이 무너지며 국가 경제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혁명 전인 2010년 12%였던 실업률은 지난해 15.3%로 올랐다. 청년(15~24세) 실업률은 37%까지 치솟았다. 물가는 연 6%씩 뛰었고 식품, 음료 부문은 9%대에 육박했다. 재스민혁명이 촉발된 배경에는 국민의 25%가 하루 약 2달러로 먹고 살았던 비참한 현실이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테러ㆍ고실업ㆍ인플레이션의 3중고가 겹치며 “혁명 전보다 오히려 가난해졌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차라리 벤 알리 독재 정권이 낫다”

중동의 봄이 진원지가 튀니지가 IS의 타깃이 된 현실은 아이러니했다. 튀니지 명문 튀니스대에서 만난 트릴리 무스타파 역사학과 교수는 “일종의 체제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민주화에 성공한 튀니지가 경제 성장도 이루면 아랍 세계에 좋은 국가모델이 된다”며 “위협을 느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경제를 무너뜨려 민주화를 흔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와 가난을 구제하지 못하는 정부 때문에 튀니지 국민은 2중, 3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차라리 벤 알리 독재가 낫다’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운송업자 빌렘(25)씨는 “벤 알리는 진정한 보스였다”며 “혁명 전에는 물가도 안정되고 경제도 발전했다. 모두가 그의 명령만 따르면 됐었다”고 치켜 세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좌절한 청년들이 IS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보안컨설팅업체 수판그룹에 따르면 IS는 지난해 약 2만8,000명의 신규 전투원을 모집했다. 튀니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6,000명을 차지했다. 대통령 직속 싱크탱크 튀니지전략연구소의 하템 벤 살렘 소장은 “절망한 젊은이들에게 매달 1,500달러(약 178만원)를 주고 다른 한 손에는 소총을 쥐어 준 후 ‘알라를 위해 싸우라’고 하면 누가 거절 하겠냐”며 “역설적으로 테러로 가난해진 튀니지가 테러범의 가장 큰 공급처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616
  • 블라디미르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72명 선정…오바마 2위로 하락, 이건희 회장 41위, 朴대통령 52위 김정은 46위…반기문 사무총장·김용 총재도 포함 (뉴욕=연합뉴스) 이상원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
  • 2013-10-31
  • 일본군 생물학전 부대인‘731부대’가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했던 각종 해부용 기구와 소화 13년이라 새겨진 방독면, 당시 부대원들이 착용했던 완장과 신분증. [서울대 서이종 교수, 극비문서 분석] 지린성 農安에 페스트 벼룩 살포, 2500명 사망 日731부대 간부의 논문·문서 분석 통해 입증 731부대 민간...
  • 2013-10-31
  • [서울신문 나우뉴스]최고수 저격범은 정말 광대였을까?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거물이 저격을 당해 사망하면서 광대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광대들은 성명까지 내고 “광대 중에는 저격범이 없다. 광대는 범죄의 피해자일 뿐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고 해명했다. 발단이 된 사건은 멕시코의 휴양지 로스카보스에...
  • 2013-10-31
  • 2012년 10월 29일, 허리케인 `샌디(Sandy)`가 뉴욕, 뉴저지, 펜실베니아주 등 미국 동북부 지역을 강타해 피해가 속출한후, 일년이 지났다. 도저히 답이 없는 줄만 알았던 뉴저지주의 다리는 어느 정도 복구되어 말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허리케인 속에 집을 잃었던 로버트 커널리 부부도 새로 지은 집에 정착하여 살...
  • 2013-10-31
  • 영국, 독일 등 유럽 북서부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급' 폭풍이 29일 러시아 서북부에 상륙, 정전 등 피해가 잇따랐다. 폭풍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러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련일 내린 폭우로 침수 등 피해가 큰것으로 알려졌다.   신화넷
  • 2013-10-30
  • 더 빨리 대응할 순 없었나... (A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터렐 경찰 책임자가 전날 저녁 5명이 피살된, 총기난동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시간에 걸쳐 소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의 용의자는 찰스 브라운로우(36)로, 상습 마약 복용자로 알려졌는데 경찰의 추격 끝에 체포됐다. 사...
  • 2013-10-30
  • 미국국가안보국의 도청사건이 최근에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한달사이에 프랑스인들의 7천만건 통화내용 도청에서부터 독일 메르켈 총리의 전화 도청에 이르기까지, 또 세계 35개 국가 정상들의 전화 도청, 스페인의 6천만건 전화통화 도청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폭로되는 도청사건에 미국 백악관...
  • 2013-10-29
  • 고위도 지역인 영국에 26년 만에 허리케인급 저기압이 통과하면서 4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으며 프랑스 서북 지역에서도 수만 가구에 단전이 이뤄졌다. 영국 기상재해 당국은 28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중부 이남 지역이 최고시속 159㎞를 기록한 해양성 저기압 '세인트 주드'의 피해로 4명이...
  • 2013-10-29
  • 일본 도쿄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데 이어 2015년 일본·태평양 다자회의까지 일본 후쿠시마에서 개최된다. IOC 회의에서 일본 아베 총리의 `원전,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발언이 논란에 휩싸이며 일본 방사능 유출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를 강타한 쓰나미 이후 방사능 유출에 대...
  • 2013-10-29
  • 28일 고려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워셜 교수(오른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박성우 기자. “과학자는 자신의 신념 믿고 끌고가는 근성이 필요합니다.” 아리에 와르셸(Arieh Warche·73)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8일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때가 많지...
  • 2013-10-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