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질서 붕괴 위험’ 잇단 경고 “美-유럽사회 내부로부터 도전에 직면”
1989년 동유럽 붕괴 이후 한때 ‘역사의 종언(終焉)’을 구가하던 서구 자유주의가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도전에 직면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현실주의 정치이론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61·사진)는 브렉시트를 계기로 26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붕괴’에서 이같이 밝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에 대한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로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과 정반대의 길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은 1989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수록된 논문으로 동유럽과 옛 소련의 붕괴 등을 예측해 발표 직후부터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는 또 다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의 ‘쇠퇴하는 민주주의’를 인용해 2000∼2015년 러시아 터키 태국 케냐 등 27개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1990년대 들어 민주화된 이들 나라 국민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대의정치를 포기하고 권위주의적인 독재자(strong leader)를 선출했다. 또 미국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민주주의의 확산을 강조한 네오콘 사상에 입각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제도를 이식했지만 오히려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만 키워 놨다고 진단했다.
월트 교수에 따르면 이런 반작용은 비자유주의 사회에 내재한 민족주의 내지 종파주의와 그에 입각한 문화적 전통을 경시한 결과다. 이는 비자유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같은 자유주의 사회에도 적용된다. 영국에서 반(反)이민자 정서에 기댄 브렉시트가 현실화하고 미국에서 불관용과 반이민자 정책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주요 정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가 된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영국 우선주의’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구호에 숨은 정치적 향수(노스탤지어)는 이를 겨냥하고 있다.
서구 자유주의 내부에서 발생한 이런 반자유주의적 경향의 문제점은 관용과 다원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대어 자유주의를 공중 납치하는 데 있다고 월트 교수는 진단했다. 트럼프 같은 정치 지도자의 부상은 권위주의 사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선 통제할 방법이 없다.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런 반자유주의적 현상에 반색하는 것은 그 본질이 반자유주의적이라는 데도 있지만 자유주의의 내재적 약점을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트 교수는 자유주의 사회도 이런 약점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봤다. 많은 유럽인이 ‘엉클 샘(미국)’이 끊임없이 유럽 문제에 관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러시아라는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이런 반자유주의적 경향에 굴복할지 모른다는 내부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엉클 샘 내부의 두려움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서구 자유주의가 답해야 할 또 다른 질문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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