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등 생활이슈 내세워… 비리투성이 정치권에 새바람
지난 31일 치러진 도쿄도(東京都)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4) 전 방위상이 당선됐다. 1947년 도쿄지사 선거를 실시한 이래 69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도쿄지사다. 고이케 당선자는 1일 기자회견에서 "여성 도쿄지사로서 육아 문제 등 여성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하는 것이 행복한 도쿄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올 한 해 전 세계에서 배출된 여성 시장은 고이케 당선자까지 4명이다. 6월엔 루마니아 지방선거에서 가브리엘라 피레아(44)가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첫 여성 시장으로 당선됐고, 같은 달 이탈리아 총선에선 비르지니아 라지(38)와 키아라 아펜디노(31)가 각각 최초의 여성 로마 시장과 토리노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3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프랑스 파리, 독일 쾰른,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10여 명의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여성 지자체장 수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정치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다. 고이케 당선자는 전임자인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지사가 공금 유용 스캔들로 물러난 뒤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라지 로마 시장 역시 전임자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상황에서 당선됐다. 로마에선 지난 2014년부터 시청 공무원과 마피아 조직의 결탁 의혹이 불거졌다.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한 이그나치오 마리노 전(前) 로마 시장까지 범죄 조직 연루와 공금 과다 사용 혐의로 작년 10월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BBC는 "라지 당선자가 승리한 데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환멸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작년 스페인 마드리드 시장으로 당선된 마누엘라 카르메나(72)는 기성 정치권에 소속되지 않은 판사 출신으로, 유럽 금융 위기 이후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분노하라'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취임하자마자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시 소유 골프장을 대중에게 개방하는가 하면, 본인도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있다.
서민들이 공감할 만한 현실적 이슈를 앞세운 점 역시 여성 시장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요인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국가민주연구원(NDI)의 연구를 인용해 "일반적으로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들에 비해) 여성, 아동, 사회 소외 계층 등 생활에 밀접한 사회 이슈들을 잘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카르메나 시장과 마찬가지로 '분노하라' 운동을 이끌었던 아다 콜라우(42) 바르셀로나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 이력에 걸맞게 바르셀로나 빈민가 개발에 주력하고, 자동차 경주인 바르셀로나 그랑프리서킷 행사에 할당돼 있던 보조금 400만유로(약 49억원)를 초등학교 급식 재원으로 돌리는 등 복지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라지 로마 시장도 거창한 이슈보다 비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 도심 쓰레기 문제 처리, 공공기관의 무사안일주의 척결 등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그는 출마 이유에 대해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왔는데 인도가 없어서 차량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다녀야 했다. 이렇게 엉망인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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