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국가', 클린턴은 '생각' 강조
사용 단어량은 트럼프가 압도…토론 자체는 클린턴이 우세했다는 평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현우 인턴기자 = '썰전' 1차전은 끝났다. 두 후보는 90분 동안 7만자가 육박하는 단어를 이용해 총성없는 전쟁을 벌였다. 26일 오후 9시(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헴프스테드 호프스트라대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후보 1차 토론 얘기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서 오간 단어를 원고지로 옮기면 300매가 훌쩍 넘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텍스트 분석 업체인 지니어스와 함께 공개한 이날 토론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두 후보가 나눈 단어를 분석해 봤다.
말은 누가 더 많이 했을까. 90분 내내 하이 톤으로 장내를 휩쓴 트럼프였다. 목소리도 컸지만, 길게도 말했다. 그는 토론 당시에도 클린턴의 답변 시간에 끼어들다 사회자인 레스터 홀트(NBC뉴스 앵커)에게 제지당하는 모습을 종종 연출했다. 반대로 자신의 답변 시간은 곧잘 초과해 지청구를 들었다. 간혹 가다가는 사회자를 앞질러 발언하기도 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클린턴 발언이 주어진 시간인 30초가 넘어가자) 홀트 "네,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 볼까요?" 트럼프 "제가 마무리 할까요? 제 생각에는…" 홀트 "그러잖아도 방금 발언권 드리려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날 토론에서 47.1%를 차지했다. 그가 내뱉은 단어는 총 6천697자로 클린턴에 비해 1천자 이상 많다. 그의 발언을 옮겨 적으면 A4 용지로는 18장, 200자 원고지로는 147장이 나온다. 클린턴의 발언은 전체 중 40%다. 트럼프보다는 여유 있었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대신 유머를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200자 원고지 약 122장 분량.
CNN 방송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총 90분 중 트럼프는 42분, 클린턴은 37분을 말했다. 클린턴이 시간에 비해 단어량 자체가 적은 또다른 이유는 그의 발언 중 방청객들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방청객 사이에서 나온 총 4차례의 웃음 소리 중 3차례가 클린턴 발언 중에 터졌다. 환호성도 마찬가지다. 양 후보의 발언 도중 방청객의 박수가 터진 것은 모두 4차례인데, 이중 3번이 클린턴이다. 특히 세금을 주제로 토론할 때가 백미였다. 클린턴이 트럼프를 향해 "(중산층 붕괴는) 당신이 소득세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발언을 잠시 멈춰야 할 정도로 환호성이 컸다.
양 후보가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동사나 관사 등 의미가 약한 단어를 빼고, 비교적 많이 반복해서 사용한 것을 분석했다.
트럼프의 경우엔 country(조국, 국가)이다. 이 단어 앞에 our(우리의)를 습관처럼 붙여 썼다. 우리나라. 특히 미국의 해외 무역 협정을 놓고 벌인 토론에선 한 문장에만 무려 네 차례나 반복했다. 반면 클린턴은 같은 단어를 트럼프에 비해 절반도 쓰지 않았다.
think(생각하다)는 클린턴이 가장 많이 쓴 단어다. 입버릇처럼 썼다. 트럼프의 공격이 거세지자 이것을 반복해서 쓰면서 받아친 순간은 이날 토론의 명장면이다. 원문은 이렇다.
"내 생각엔, 내 생각엔, 트럼프는 단지 내가 이번 토론만 준비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생각한다...나는 대통령이 될 준비를 했다.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I think I think I think Donald just criticized me for preparing for thisdebate...I prepared to be president. And I think that's a good thing.)
클린턴은 이 외에도 know(알다)와 tax(세금) 등도 많이 썼다.
양 후보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단어는 무엇일까. jobs(일자리)다. 트럼프는 "우리 '일자리'가 중국이나 멕시코로 옮겨가고 있다"며 "그래서 좋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신(클린턴)은 일자리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클린턴 역시 "9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한 상황이고, 투자를 통해서 1천만 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분량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았다. 미국 주요 언론은 대부분 이날 토론의 승자로 클린턴의 손을 들어줬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훨씬 나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클린턴이 토론에서 이겼다"고 평했다.
지켜본 시청자도 마찬가지였다. CNN이 실시한 실시간 여론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이 잘했다는 응답은 62%를 기록했다. 반면 트럼프를 택한 시청자는 27%에 그쳤다.
2차 토론은 다음 달 9일에 열릴 예정이다. 약 열흘 뒤 다시 만난 클린턴과 트럼프는 어떤 단어를 들고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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