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방북한 폼페이오 장관과 협상중인 김영철. [뉴시스]
북한이 미국에 평화 협정 체결에 호응하지 않으면 비핵화 협상 판을 깰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미 CNN 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갑작스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CNN "북한, 평화협정 미진에 불만"
폼페이오 4차 방북 취소 배경인 듯
CNN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핵화 협상은 다시 위기에 처해 있으며(at stake) 결딴이 날 수도 있다(may fall apart)”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CNN은 이런 사실을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에 직접적 지식이 있는 소식통 3명으로부터 확인했다고 했다.
앞서 워싱턴 포스트(WP)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27일 칼럼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금요일(방북 취소를 발표한 24일·현지시간) 오전 김영철로부터 비밀 서한을 받았으며 백악관에서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줬다”고 전했다. 이어 “메시지의 정확한 내용은 확실치 않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으로 하여금 방북을 취소하게 결정할 만큼 충분히 호전적(sufficiently belligerent)이었다”고 설명했다.
CNN 보도대로라면 김영철의 서한에 담긴 호전적 내용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걷어찰 수 있다는 위협인 셈이다. CNN은 “서한에는 미국이 아직도 평화협정 서명을 향해 진전된 조치를 취하는 것과 관련해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정권은 (협상)과정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한 소식통은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 초기 협상이 어그러진다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까지 들고나온 것을 주목하고 있다. 연내 종전선언은 남북이 이미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방위태세 등 종전선언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우려,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서 조기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해왔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평화협정은 종전선언과 달리 법적 구속력을 지니며, 1953년 이후 한반도를 의율해온 정전 체제를 대체한다는 의미다. 또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한반도의 안보 지형도 완전히 달라진다. 남북 관계가 공식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될 수 있고, 정전체제의 관리자였던 유엔군 사령부의 지위 변경도 불가피하다.
CNN 보도가 사실이라면 김정은이 통상 비핵화 프로세스의 마지막 단계이자 결과물인 평화협정을 입구에 놓으면서 크게 판을 흔들려는 의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초기부터 조약 체결을 통한 체제 안전 보장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핵 폐기가 완전히 마무리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몇단계 앞으로 당겨서 하는 셈인데, 이는 미 행정부는 물론 협정의 비준 권한을 갖고 있는 의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김영철 친서’와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영철의 친서 내용과 관련 “(친서가 전달됐다는) 기사의 진위 자체를 판단할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한ㆍ미 간에 긴밀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여러 외교 현안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며 튼튼한 관계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김영철의 편지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편지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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