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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북동부 터키 접경지역에 주둔한 미군들이 쿠르드족으로 이뤄진 시리아민주군(SDF) 민병대와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내전 중인 시리아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하면서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시리아 동북부 터키 국경지대에 2000여 명의 지상군을 파병해 유지해왔다. 이들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쿠르드족 민병대인 시리아민주군(SDF) 훈련을 주로 맡아왔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독재자 지원한 러시아가 승리
쿠르드족은 ‘등에 비수’ 배신감
트럼프, 에르도안 말만 듣고 결정
매티스 국방, 사표 던지며 항의
프랑스 등 나토 동맹국 불쾌감
내년 70주년 나토 와해 위기
트럼프는 “IS를 상대로 승리했다”며 철군 명분으로 내세웠다. 시리아 철군은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어 20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주둔 미군의 절반인 7000여 명의 철수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트럼프의 철군 결정을 두고 “세계 최강 군사력의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지역에서 발을 빼기로 한 이 결정은 동맹을 버리고 한 지역을 지정학적 경쟁자에게 넘기는 것”이라며 “세계사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비난했다. CNN은 “트럼프가 취임한 뒤 2년 동안 온갖 혼란, 폐해, 무책임을 다 봐왔지만, 그중에서도 최근 72시간 동안 벌어진 일(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병력 감축)은 역사적”이라고 대놓고 비꼬았다. 가장 큰 문제는 철군 결정 과정이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군 수뇌부와도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철수를 결정했다. 특히 14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를 상대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통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BBC는 터키가 자국과 시리아·이라크·이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이 세력을 확대해 독립국을 건설하는 시나리오를 경계해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군은 IS 격퇴를 위해 쿠르드족 민병대를 지원한 것은 물론 이들을 훈련하기 위해 지상군 병력을 파병했다. 쿠르드족의 협조를 얻어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시리아에서 펼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미군 수뇌부가 아닌 에르도안의 말만 듣고 철군을 결정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철군 결정에서 소외된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20일 “동맹 없이는 미국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는 편지를 트럼프에게 보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IS 격퇴를 위한 글로벌 동맹 담당’ 특사인 브렛 맥거크도 22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걷잡을 수 없는 리더십 공백 상태에 빠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동맹 무시’다. 트럼프는 시리아 작전을 함께 펼쳐온 영국·프랑스 등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동맹국과 논의를 거치지 않고 철군을 명령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3일 유감 의사를 밝히고 “동맹은 반드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르 몽드가 보도했다. 트럼프의 독단적인 결정은 전 세계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특정 국가나 세력이 국제사회나 미국 조야를 상대하지 않고 트럼프 개인에게 이익을 주면서 잘 달래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그릇된 신호 말이다.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기대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런 방식으로 ‘핵을 가진 북한’을 용인받으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내년 초 무역 갈등 해결을 위한 협상을 앞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국가 이익과 트럼프의 개인적·정치적 이익이 이해 상충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나토 동맹국의 미국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취임 뒤 두 차례에 걸친 나토 정상회담에서 계속 ‘군사비 부담 확대’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비용만 생각해 오랜 가치 동맹을 헌신짝처럼 버린 ‘수전노’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에 대항해 함께 싸우던 쿠르드족과 수니파 반정부군을 대놓고 ‘배신’했다. 미 지상군이라는 방패가 없어지면 쿠르드족과 시리아 반정부군은 터키와 알아사드 정부군의 협공 속에서 설 땅을 잃게 된다. 궁지에 몰린 이들은 미국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면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테러리즘이 될지, 미국의 적과 손을 잡는 길일지 알 수 없다. 신화통신은 "시리아 동북부 전선에서 IS 잔당과 전투를 벌이는 SDF 민병대가 ‘미국이 등에 칼을 꽂았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의 시리아 철수는 지금까지 시리아에서 알아사드 정부군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해온 러시아에 결정적인 이익을 안겨주게 된다. 냉전과 소련 붕괴 이후 계속 미국에 밀려온 러시아가 중동에서 첫 군사적·외교적 승리를 시리아에서 거둔 셈이다. 러시아는 이를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이 지역에서 지속해서 세력 확대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손잡고 이 지역에 ‘시아파 벨트’를 구축해온 이란도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가장 큰 승자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펴면서 학살극을 벌여온 알아사드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라던 시리아 내전은 결국 알아사드와 러시아·이란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이로써 중동 지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치를 거론할 세력은 설 자리를 잃을 됐다.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미군의 시리아 철수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미국은 믿지 못할 세력이라는 불신감이 확대하면 미국의 국익과 트럼프의 정치적 이익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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