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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주시대에도 '천황제' 이어가는 일본…문제와 미래는?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28일 07시47분    조회: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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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절 신격화…패전 후 美군정 용인으로 '천황제' 존속

1960년대 폐지 여론 거셌지만 보수정권 장기집권 속 목소리 약해져 

현재는 국정관여 못하는 '상징 천황'…'제도존속 위한 표현' 지적도

일왕, 신년인사…"세계 안녕 기원"(도쿄 교도=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일 고쿄(皇居, 일본왕궁)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새해 축하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5월 새 일왕으로 취임하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등과 함께 왕궁 베란다에 나와 "일본과 세계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2019.1.2 bkkim@yna.co.kr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다음 달 1일 새 일왕 나루히토(德仁)의 즉위와 새 연호 '레이와(令和)' 시대의 개막에 앞서 일본 사회가 한창 들떠있다. 

신문과 방송은 곧 있을 일왕 즉위식을 소개하고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새 일왕이 될 나루히토 왕세자를 치켜세우는 데 바쁜 모습이다. 상점가에는 '헤이세이(平成·지금의 연호)'나 '레이와'를 활용한 마케팅이 넘쳐난다. 

일본인들은 당연시하고 있지만, 사실 '천황제'는 민주주의가 보편화한 21세기의 세계에서 매우 희귀한 왕정제다. '천황'은 영어로 'Emperor of Japan'으로 번역되는데 현재 지구상에서 '황제(Emperor)' 칭호를 쓰는 유일한 군주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의 일왕은 제국주의 시절 군통수권자였다. 

그렇다면 첨단의 시대인 21세기에,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상징이었던 '천황제'가 일본에서 여전히 이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새 국왕 즉위 한 달 앞두고 새 연호 발표 (PG)[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 제국주의 시절 신(神), 이제는 일본의 상징

일본 '천황제'의 역사는 덴무(天武) 일왕(673∼686년 재위) 때인 7세기에 시작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나라(奈良) 시대(710∼794)와 헤이안(平安) 시대(794~1192)까지 일왕은 정치와 제사의 정점에 있었지만 이런 권위는 점점 사라졌다. 그러던 일왕이 다시 절대적 권위를 얻게 된 것은 1868년 시작된 메이지(明治)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메이지 헌법을 통해 일본의 주권자이자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른 일왕은 제국주의로 폭주하는 일본 사회에서 '신(神)'의 자리에 올랐고, 식민지 통치와 침략 전쟁의 핵심이 됐다. 

군통수권자이기도 했던 일왕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에는 '천황도 인간이다'는 선언(1946년1월 국운진흥조서)을 한 뒤 인간의 자리로 내려와 '상징 천황'이 됐다. 

1946년 11월 공포된 현행 헌법은 1조에서 일왕을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헌법에 따라 일왕의 직무는 국사행위를 행하는 것에 한정돼 있으며(헌법 7조), 국정에 대한 권한을 전혀 갖지 않는다(헌법 4조).

'상징 천황제'라는 이름으로 '천황제'가 패전 후 일본에도 여전히 남게 된 것은 미 군정이 일왕에게 전쟁 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주며 '천황제'를 용인해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학생 운동이 드셌던 1960년대를 전후해 '천황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런 목소리는 자민당 보수 정권의 장기 집권을 겪으면서 점점 존재감을 잃었다. 

1945년 9월 27일 맥아더와 함께 포즈를 취한 히로히토 일왕[일본 위키백과 캡처]

◇ '상징 천황'을 둘러싼 논란…'상징'의 모호성

"30년만에 '천황(일왕)'이 바뀌는 것이니 더 제로베이스에서 '천황제'에 대해 논의를 했어야 했다. '상징 천황제'에서 상징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연호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지난 24일 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68)가 기고문의 일부다. 그는 주간지에 '히로히토(쇼와일왕[1901~1989년]의 이름)'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다카하시 작가처럼 '천황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천황제'를 언급하는 일조차 터부시되는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론의 장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천황제'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상징으로만 존재하며 국정에 관여할 수 없는 '상징 천황'이란 개념의 모호함을 지적한다. 

'상징 천황'이 천황제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억지로 만들어진 만큼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8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도쿄(東京) 야스쿠니(靖國)신사 주변에서 "합사 반대"를 외치며 촛불 행진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선 현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2016년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것 자체가 국정에 관여한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다카하시 작가는 "퇴위 발언부터 지금까지 일왕이 계속 주역을 맡았다"며 "상징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상징으로 두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천황에게 인권은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황'이 재난 피해 지역을 방문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해 제국주의 시절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것도 사실상 국정에 관여한 것, 즉 정치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천황제'에 비판적인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대학원(철학) 교수는 "실은 일왕은 헌법 위반 행위를 스스로 계속하고 있고, 일본 정부도 이런 위반 행위를 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필리핀을 방문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환영만찬에서 인사하는 모습. 그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필리핀인들이 대거 희생된 데 대해 "저희 일본인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 일왕, 전쟁 사과 권한 있나?…새 연호 '레이와'에 거부감도

헌법이 정한 일왕의 직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은 한국의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왕의 사죄를 요구한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문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의 주범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의 요구와 관련해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헌법상 '천황(天皇·일왕)'은 정치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일본 정부, 특히 총리 자신이 육성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천황제에 대한 이의 제기가 사회 전체의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새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부왕처럼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면서 상징의 자리를 지키는 이상 '천황제' 존폐 논란이 범사회적 이슈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 도쿄 도심서 '천황제 폐지' 시위 열려(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24일 '반 천황제 운동 연락회' 등 단체들이 아키히토 일왕의 마지막 재위 기념식에 맞춰 도쿄 중심가인 긴자에서 천황제 폐지 거리 집회를 열고 있다. 2019.2.24 bkkim@yna.co.kr

'천황제'와 함께 일본 사회에 남아있는 또 다른 독특한 제도가 연호제다. 

패전 후 미군정이 연호를 금지했지만, 1970년대 부활 운동이 시작돼 우경화 흐름을 타고 1979년 연호가 부활했다. 

'천황제'와 마찬가지로 연호제에 대해서도 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반면 '레이와'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나 연호 교체를 아베 정권 등 정부 여당이 정권의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이용하려 한다는 우려는 큰 편이다. 

'레이와'에 대해서는 단어에 포함된 두 한자어 중 하나인 '레이(令)'이 '아름답다'는 뜻 외에 '명령'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국민에 대한 규율과 통제 강화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레이와'의 출전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에 대해서도 '지위를 막론하고 즐겼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귀족층의 시가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와(和)'라는 단어가 이전 연호 '쇼와(昭和·1926∼1989)'의 '와'와 같은 글자여서 제국주의 시절을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다만, 새 연호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저명한 고전학자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90)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가 "레이와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면서 일본이 한반도 등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한 참혹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日 새 연호 '고안' 나카니시 스스무 명예교수(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90)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 나카니시 교수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의 군국화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201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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