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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키신저가 일으킨 또 다른 우크라이나 전쟁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6월6일 06시28분    조회: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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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중국 방문 당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지난 5월 27일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에 영토를 할양하는 내용의 외교적 해결을 주문해 논란을 일으켰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두 나라의 전쟁은 6월 1일로 5개월째를 맞았다.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수도 키이우에 이어 최대 도시인 하르키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를 물리친 우크라이나군은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장거리 다연장로켓포(MLRS) 지원을 고대하며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대결에 대해 우려하는 여론이 일며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외교적 해결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제기하면서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100살이 된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중국 공산당과 화해를 도모했던 현실주의 전략가이다. 그는 지난 5월 27일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에 영토를 할양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외교적 해결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고언을 던졌다. 키신저는 "이상적인 분단선은 전쟁 전의 상태(status quo ante)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러시아가 크름반도와 돈바스의 3분의1가량을 통제하는 것이다. 키신저는 "그 지점 이상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에 새로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러시아군의 완전축출을 주장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군이 도처에서 살육과 파괴를 일삼는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군을 수도 키이우 및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밀어내는 등 전과를 올리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영토 일부라도 양보해야 한다는 키신저의 발언은 격한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해야만 평화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스티븐 파이퍼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도 "우크라이나 영토는 키신저가 러시아에 주라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트윗에 올렸다. 라트비아의 에드가르 링케비크스 외무장관은 키신저를 1938년 나치독일에 주데텐란트를 할양한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에 비유했다. 뉴스위크는 지난 5월 28일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들은 러시아에 영토를 할양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는 우크라이나 대표 미하일로 포돌략 역시 종전(終戰)을 대가로 영토를 일부 양도하는 것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푸틴의 욕심을 자극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국제사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82%는 평화를 위한 영토 양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키신저의 발언은 미국 내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포스트는 다음날인 5월 28일 '서방동맹국들이 포기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포스트는 "러시아의 독재자가 이웃나라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러한 도덕적 요구는 현실적인 결과를 결정하지는 못한다"며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세 가지 결정적 한계를 지적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월 30일 모스크바에서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세 가지 한계

첫째, 러시아가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이다. 푸틴은 궁지에 몰리면 실성해서 핵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즉 전술핵무기 한두 발을 사용하면 적들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서 모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자원이 부족하다. 군대는 능력 이상으로 싸웠지만 서방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셋째,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무기를 지원하려는 서방, 특히 미국의 의지이다. 미국은 인플레 위기와 중간선거라는 국내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국내 문제는 이미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유럽 동맹국들도 흔들리고 있다. 포스트는 "서방은 푸틴이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를 중단할 때까지 젤렌스키 정권을 지원할 용의가 있지만 그 이상으로 우크라이나가 대공세를 취하는 데에는 주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는 이어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전쟁은 끝나야만 한다"며 "현실적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이전의 현상유지가 우크라이나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상황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발언 직전에도 이미 미국에서는 종전 논의가 분출하고 있었다. 미국의 원로 국제정치학자인 그래험 앨리슨 박사는 지난 5월 20일 독일 슈피겔 인터뷰에 "푸틴이 전쟁을 확대시키지 않고 끝내게만 한다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이 "미국과 유럽의 주민 모두를 죽일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 핵무기 초강대국 지도자"라며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을 지구에서 없애버릴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상호확증파괴)라고 불린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분리될 수 없으며 샴쌍둥이같이 합체된 신세이다. 즉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을 목졸라 죽이려면 반드시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앨리슨 박사는 "불편하고 참을 수 없어 보이지만 푸틴이 벼락 맞고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악마와 함께 전쟁을 끝내야 한다"며 "루스벨트와 처칠이 3000만명을 죽인 스탈린과 마주 앉았으며, 스탈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마오쩌둥과 닉슨이 만났다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한다. 혐오스러운 지도자들이나 극단적인 대량살인자들과 협상하는 것이 국제관계이다"라고 강조했다.

앨리슨 박사는 "푸틴은 합목적적이고, 계산적이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이 행하는 바를 믿는다는 의미에서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ctor)'"라고도 했다. "푸틴은 전쟁에서 패하면 권력을 잃는 것은 물론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정확히 믿고 있을 것이다.… 푸틴은 패전과 파괴를 격화시키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합리적 행위자'이니만큼 후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앨리슨 박사는 푸틴이 궁지에 몰리면 히로시마 핵폭탄 수준인 15~20킬로톤 상당의 소규모 핵폭탄 한 방으로 2만~5만명을 죽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럴 경우 미국이 러시아 내부를 공격한다면 미국인이 러시아인을 죽이게 되는 것이며 매우 빠르게 전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살육을 중단하는 것이 긴급하다"는 것이 앨리슨 박사의 충고다. 그는 "푸틴의 마음을 돌리게 할 이야기를 제공해야 한다"며 "뭔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이 '나는 돈바스를 합병했다. 크름으로의 육로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15년 동안은 나토 회원국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4월 22일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회담 중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photo 뉴시스

"미국은 이미 네 가지 전략 목표 달성"

앨리슨 박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미 네 가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자유독립국으로 생존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모두 되찾게 될 것이다. 둘째, 3차대전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미군과 나토군이 러시아인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나토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셋째,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와 전 세계는 푸틴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토는 더 강해졌다. 미국과 유럽은 더 단합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국경에 있는 나라들은 훨씬 더 잘 방어되고 있다. 푸틴은 자신이 뭔가를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패전했다. 넷째, 국제사회는 국제법에 따라 승인될 수 없는 범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중 하나가 국경선을 재획정하기 위하여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것이다.

앨리슨 박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엄청난 용기와 결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에 대해 이전에는 없던 도덕적 요구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성공하는 나라를 건설하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푸틴이 전쟁을 확대시키지 않고 끝나게만 한다면 엄청난 성공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보수주의 논객인 패트릭 뷰캐넌도 최근 뉴스맥스에 기고한 '미국의 사활적 이익은 러시아와 싸우지 않는 것'이라는 칼럼을 통해 러시아가 중국에 가까워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협상을 촉구했다. 뷰캐넌도 러시아가 전쟁에서 성공하지 못해 "조롱당하는 신세이지만 여전히 강대국"임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의 영토는 미국의 2배이며 핵무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전술핵무기 보유는 미국과 중국을 능가한다. 러시아는 방대한 광물자원, 석탄, 석유, 천연가스 보유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허약하며 약점도 늘어나고 있다. 푸틴이 북극해, 발트해에서 군비를 증강했지만, 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회원국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항하는 러시아 군함은 나토회원국 11개국, 즉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폴란드,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프랑스의 해안을 지나야만 대서양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뷰캐넌은 "많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미국과 대적하는 시진핑의 중국과 동맹하자고 요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러시아의 자원을 탐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시사했다. 중국의 인구는 14억으로 러시아의 10배이며, 우랄산맥 동쪽의 중국 인구는 시베리아나 극동 인구의 50~100배나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장래를 위해서도 미국과의 제2의 냉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미국과 러시아가 화해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젤렌스키에게 한계를 얘기해야 한다"

뷰캐넌은 냉전 시절에도 아이젠하워·닉슨·레이건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협상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아이젠하워는 1959년 헝가리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여 '부다페스트의 도살자'로 불린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12일 동안이나 미국으로 초청하였다. 닉슨은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시위인 '프라하의 봄'을 바르샤바조약군의 탱크로 깔아뭉갠 브레즈네프와 '데탕트(detente)' 시대를 열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지도자들이 러시아를 따듯하게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러시아를 고립시켜 축출하면 러시아는 중국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230년 동안 미국은 러시아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로마노프 왕가나 스탈린과도, 냉전시절 공산주의자들과도 푸틴주의자들과도 전쟁하지 않았다. 이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뷰캐넌의 주장이다.

진보언론인 뉴욕타임스도 최근 사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모두 수복하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은 형편없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하며 푸틴은 너무 많은 개인적인 명예를 전쟁에 투자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아무리 초라하고 무능하더라도" 우크라이나를 무차별 파괴할 수 있으며 여전히 "자존심 상하고 격해진 독재자 푸틴이 지배하는 핵 초강대국"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의 군사 및 경제상황에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기대는 더욱 비용이 많이 들고 장기적인 전쟁에 개입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젤렌스키에게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제공하는 무기 및 돈과 정치적 지지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신들의 수단과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파괴될지에 대한 현실적 평가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도 이번 전쟁으로 인명과 물자를 엄청나게 상실한 데 이어 재정부담도 점차 커지고 있다. 러시아 국방비는 지난 4월 하루 3억달러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국방비는 1월 2337억루블(약 34억달러)에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상승하였다. 2월 3690억루블(약 54억달러), 3월 4500억루블(약 66억달러), 4월 6280억루블(약 92억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하루 평균 210억루블, 즉 3억800만달러 수준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지출된 국방비는 모두 1조6810억루블(약 246억달러)로 교육예산의 3배, 복지예산의 2배, 환경보존예산의 10배가 넘는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보도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지난 4월 이미 서방의 제재와 석유수출금지 조치 때문에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EU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5월 30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EU의 이번 조치로 러시아는 연간 220억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로서도 외교적 해결이 시급해진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미국도 6월 1일 현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MLRS 공급을 보류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를 공격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에 야전에서 지휘하는 러시아군 장성들에 대한 위치 정보도 전해주지 않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5월 30일 보도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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