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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학생 6명 다 함께 《V-예!》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7월2일 09시59분    조회: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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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계렬조사보도 《길림성 산재지역 조선족학교에 가보다》(9)

반석시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를 찾아서

 전교학생 6명이 지켜나가는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

연통산역을 빠져나와 삼륜오토바이를 잡아타고 우리는 《조선족소학교》를 찾아나섰다. 《조선족학교라면 진작 페교된거 아닌가?…》삼륜택시차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간판없는 헐망한 학교에도 희망의 불씨는 있다

도심을 벗어나 동쪽으로 꺾어들며 한참을 달리던 삼륜택시는 페허같은 한 공장앞에 멈춰섰다. 아무리 살펴봐도 학교같은데가 없었다. 아닐거라고 우리는 좀kㅇ더 가보자고 극구 우겼다. 문뜩 《교정경비실》이라는 작은 패말이 눈에 띄여 차를 세우고 보니 멀리 운동장가장자리에 낡은 교사건물이 보였다.

간판도 없는 학교울안으로 들어가 교정쪽으로 다가서니 정문우에 《연통산진조선족소학》라는 조선문글발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느새 정문으로부터 신경수교장선생님이 웃으며 걸어나와 우리들의 손을 잡아주셨다. 《좀더 일찍 오시지…》 반가움속에 깊은 시름이 묻어있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교장선생님을 따라 적막한 교정안으로 들어서는데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복도벽에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그림들이 붙어있어 그나마 생기를 느낄수 있었다.현재 전교 학생수는 고작 6명, 거기에 교직원 24명까지 총 30명 사생이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를 지키고있었다.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  신경수교장

하학종이 울리자 우리는 수업을 마친 한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안에 책상 하나 걸상 두개가 있었다. 동학이 아닌 책가방이 한걸상을 차지하고 3학년 최명순학생과 짝꿍을 하고있n었다. 교실옆벽에 붙은 《비겨보자야 붉은별따기》란은 명순학생의 어제와 오늘을 비기는 내용이였다. 과문읽기도 혼자, 문제풀이도 혼자 하면서도 명순이는외로움을 모르는듯했다. 조선어문교과서를 들고 줄줄 내리읽는 목소리는 그처럼 또랑또랑했고 너무나 밝고 씩씩했다.

도란도란 오가는 말소리가 들리는 교실도 있었다. 4학년 교실에서 전교생의 절반인 3명이 모여 수학문제를 풀면서 서로가 자기 답이 맞다고 옥신각신하는데 가운데 앉은 수학선생님이 대견한듯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고있었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학생들은 수집음을 타며 키차례로 줄을 선다. 참으로 재미나는 진풍경이였다.

다음은 1학년 교실이였다. 수업종이 울린지 한참 되는 때 부랴부랴 달려들어오는 꼬마개구쟁이가 있었다. 우리 말로 물으면 한어로 답하는 이 남자아이는 이름을 묻자 《강위현》이라고 교과서 책가위우에 또박또박 써보이고는 씩 웃는다.

옆교실에서는 5학년 김문우학생이 수학공부에 빠져있었다. 그의 꿈은 천문학자가 되는것이라고 볼우물을 패며 답한다. 문우는 이 학교의 맏이로서 우리 말도 곧잘하였고 아주 밝고 의젓하였다.

2학년과 6학년은 학생 한명도 없는 공백이였다. 그러나 페교의 위기에 직면한 헐망한 교정에서도 글소리, 웃음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학생들은 유일한 희망의 빛줄기이고 호흡을 이어주는 산소 같은, 가물을 이겨내는 이슬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교수청사 1층 현관복도

80년 력사를 지닌 연통산진의 첫 조선족학교

100여년전부터 음마하를 따라 논을 일구며 정착하는 조선이주민들이 늘어났다. 1934년 리씨성을 가진 조선족촌민이 조선인들이 비교적 집중해 살고있는 연통산거리에 자그마한 글방을 앉혔는데 당시 20여명 학생이 한자리에서 공부, 1년후 40여명으로 늘어났다. 2년후 1936년도에 조선족유지인사(有识人士)정학문이라는분이 소금장사로 번 돈으로 이 글방을 넘겨받고 현재 연통산진정부위치에 조선인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연통산삼명학교(烟筒山三明学校)》라 명명했다. 당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5개 학급을 두었고 학생은 50여명이였으며 교원 5명이 있었다.

그뒤로 마을은 커가고 학생수는 불어 70년대부터 소학교, 중학교에 식당, 기숙사까지 갖춘 종합학교로 발전하였다. 1981년도에 지금의 교사를 짓고 이듬해 중학교와 분리하고 단독소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연통산조선족중심소학교》라 명명, 1999년에 《연통산조선족소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2003년도에만도 연통산진에는 4000여명 조선족인구에 400여명(학생 306명, 유치원어린이 96명)의 학생들로 학교는 늘 들썽하였다.

그러나 2004년경부터 도시진출, 해외로무로 조선족들이 마을을 떠나고 돈을 번 조선족들은 도회지에 거주하면서 한학기가 지나면 학생들이 30명씩 전학해가고 한해가 되면 50명씩 훌쩍훌쩍 줄어들었다. 학기초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우리 아이 전학가요. 도장찍어주세요.》라고 할 때마다 마치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듯 가슴아팠다고 신경수교장선생님은 서글픔을 감추지 못한다.

전교생중 절반인 3명이 공부하고있는 4학년 교실

2010년까지만 해도 원정교육망과 20대에 달하는 컴퓨터를 리용하면서 현대교육정보를 접수하고 과학문화지식수준을 높여갔다. 길림시표준화중심유치원도 꾸려 학령전 어린이들의 요람을 만들었고 국가C급표준 식당으로 학생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등 구전한 규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1만 1194평방메터에 달하는 부지면적에 1827평방메터 되는 건축면적을 가진 학교가 썰렁하다. 진작부터 거리옆에 학교간판이라도 걸려 하다가도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를 상황에서 그만 손맥을 놓고말았다고 교장선생님은 실토한다. 《오늘같은 이런 처참한 교육현실은 누굴 탓할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학교가 오늘래일하니까 교육부문의 중시가 점점 떨어지고 자금투입이 따라서지 못하니 시설이 락후하고 환경이 렬악해질 수밖에 없지요. 이런 헐망한 학교에서 누군들 자기 자식을 공부시키려 하겠습니까?》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저으기 차분했다.

《지금 연통산에는 120여명 조선족로인들과 몇 안되는 아이들만 있는데 그 로인들이 안 계시고 우리 학교가 문을 닫는 날이면 연통산조선족사회는 끝나는셈이지요…》 교장선생님은 맥없이 머리를 돌려 멀리 창밖을 응시한다.

책가방과 짝꿍인 3학년 최명순학생

끝까지 버티고 견지해야 하는 리유는

신경수교장선생님은 《끝까지 견지하는것이 옳은건지 그른건지》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장 도시학교로 보내는것이 마땅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소수민족 소학생들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수 있으니 만약 페교를 한다 해도 그들은 도회지 조선족학교에 가 해당 지원금을 받으며 공부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원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재교생들의 상황으로 보면 대부분 량부모가 구전하지 못하고 생활조건이 렬악하다. 조선족소학교가 문을 닫게 되는 경우 그들 일부는 도회지조선족학교로 전학할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가까운 한족학교에 보내져 다시는 자기 민족 말과 글을 배울수 없게 된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5학년 김문우학생

더우기 페교가 되는 경우 평생을 민족교육에 바쳐온 24명 재직교원들은 어떻게 되는것인가?! 이미 페교된 이웃 조선족학교들의 사례를 놓고보면 교원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타민족 교단에 설수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한족학교의 대문지기로, 보일러일군으로, 기숙사와 식당의 후근보조로 배치되여갔다. 지금 반석시 조선족중소학교들만 해도 교원이 모자라서 안달아하고있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말이 안 통하고 습관이 맞지 않는 곳에 가 《징역살이》나 다름없는 마음고생을 하고있단다.

《산재지역 민족교육일선에서 열심히 민족언어문자와 문화를 가르치며 민족인재양성에 일체를 바쳐온 교원들이 타민족 학교의 후근 보조일군으로 배치받아 밤당직을 서고 장화를 신고 밥을 짓고 설겆이를 하면서 퇴직할 때까지 고역살이를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이건 완전 민족교육인재에 대한 랑비입니다!》 그는 만약 정부관계부문에서 년로한 교직원들을 추호의 불리익이 없이 퇴직을 시키고 젊고 능력있는 교직원들을 도회지 민족교육일선에 배치한다면 다시 한번쯤 페교를 고려해볼수도 있지 않을가싶다고 한다.

신교장 개인으로 보면 오늘 당장 페교를 한다 해도 해가 될것이 없다. 이미 57세 년령에 퇴직을 눈앞에 두고있고 높은 임금대우를 보장받을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힘을 합쳐 평생을 간고한 산재지역 민족교육현장에서 일체를 바쳐온 교원들을 생각할 때 그는 사명 하나로 이 학교를 살려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 6명으로도 학교는 견지할수 있습니다.》

이제 몇년을 더 견지할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이 위태로움 하나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것이다. 끝나는 마지막순간까지 교원답게 사업하자는것이 이 학교 전체 교직원들의 각오이다. 교직원들은 매일 아침 일곱시전으로 애들보다 먼저 학교에 등교하면서 맡은바 임무를 참답게 완수해오고있다.

하여 2010년경에는 40명 학생에 30명 교직원들로 성급골간교사 1명, 길림시급골간교사 7명,반석시우수교사 9명, 길림시전천후우수교사(全天候) 1명을 배출하였고 그들이 집필한 론문은 성급, 국가급 간행물에 발표되였다. 학생들은 길림성조선족중소학교 《3어》(三语)경연 2등상, 길림성수학경색 동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올림과 동시에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는 길림시민족교육사업선진단위로, 신경수교장은 길림시민족교육선진개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신교장선생님은 지금쯤 남들이 소반화(小班化)교육에 열성들을 내는것을 보면 《배가 아프고 골이 아프다》고 우스개를 한다. 한해 다르게 학생수가 절감되여 지금은 아주 《미반화》(微班化)돼버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그 흔한 동창생마저 한명쯤씩 만들어주지 못하는것이 퍽 안타깝다고 한다.

언제까지 같이 있을지 모를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모여 집체사진을 찍기로 했다. 도시학교들 같으면 책걸상을 나르고 줄을 서는데만 수십분이 걸리겠지만 연통산진조선족소학교는 촬영을 마치기까지 단 2분으로 족했다. 신경수교장선생님이 앞장서 웨치는 (승리를 위하여) 소리에 6명은 따라 웨치며 저마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까르르대는 웃음소리는 교정의 푸르른 하늘가로 울려퍼졌다.

그들을 일별하며 《개천에 룡 난다》는 우리 말 속담을 믿어보고싶었다.

길림신문 김청수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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