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를 받아든 아이들은 어떤 ‘주제어’가 출제될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백일장이 시작되자 주최 측이 제시한 주제어는 총 9개. ‘처음해본 거짓말’ ‘그리운 얼굴’ ‘내가 만약’ ‘믿음의 소중함’….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주제어를 택일해 한글로 시나 산문을 써내려갔다.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어린이는 없었다.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14일 조선족 어린이 글짓기 경연인 ‘YUST컵 소년아동백일장’이 열린 이곳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 있는 옌볜(延邊)과기대 강당과 식당이이었다.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은 무려 843명. 이들은 옌볜 지역 조선족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30여곳에서 선발된 각 학교의 ‘대표선수’였다. 시험장 밖에는 학부모 수백명이 자녀가 좋은 글을 쓰길 기원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1999년 시작돼 올해로 18회를 맞은 백일장은 조선족 어린이 잡지 ‘소년아동’이 주최하고 옌볜과기대와 ㈜이엠코리아가 후원한 행사였다. 행사명에 있는 ‘YUST’는 옌볜과기대(Yanbian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의 영어 약자였다. 주최 측은 15명 안팎의 입상자를 선발해 한국방문 기회를 제공한다. 입상자들은 오는 7월 말, 7박8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는다.
두 시간이 주어졌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글짓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6학년생인 주은령양도 이들 중 하나였다. 주양은 ‘내가 만약’이라는 주제어를 골라 600자 분량의 산문을 제출했다. 산문은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어떨까’ 상상하며 써내려간 글이었다.
‘세상에는 선생님이 아주 많지만 모두 공평하고 훌륭한 선생님은 아니다.…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부유보다 총명한 것을 보고 절대 학생을 차별하지 않겠다.…’
주양은 “주제어가 어렵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그는 “백일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에 가고 싶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인 송중기를 만나는 게 꿈”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이나 미국 등지로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며 절절한 그리움의 글을 적어낸 참가자도 많았다. 2학년인 김은주양은 ‘그리운 얼굴’이라는 주제어로 “나는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산문을 적었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한국에 가 있었다. (중략) 아빠와의 추억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지우개가 글자를 지우듯 없어졌다. 아빠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마음을 달랜다.…’
김양은 “두 살 때 아빠가 한국으로 갔고 가끔씩 중국에 온다”며 “백일장에서 상을 받고 한국에 가서 아빠와 만나 신나게 놀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교 김진경 총장은 개회식 격려사에서 “여러분은 민족을 사랑하고 중국도 사랑하는 ‘사랑주의자’가 돼야 한다”며 “조선족 어린이 모두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옌지=글·사진박지훈 기자
국민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