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지난해 11월 후이저우한글학교 가을철운동회에서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련옥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광둥성 후이저우의 한 축구장, 조선족 젊은이들이 부지런히 땀을 쏟고 있다. 응원팀은 아내분들과 걸음마를 타는 아들, 딸들이다.
바람타고 들려오는 담소 속에 가끔씩 시름소리가 들린다.
“애들 우리말 공부가 걱정입니다……”
광둥 진출 조선족들 앞에 놓인 가장 큰 난제는 다름아닌 자녀들의 우리말 교육임을 이번 광둥 출장에서 가슴 저리게 느꼈다. 광둥 진출과 정착에서 흔들림을 가장 세차게 받을 때가 역시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에 접어들 때이다.이곳에서는 우리 언어 교육이 한창 전례없는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뛰놀던 정겨운 조선족학교는 우리에게 민족을 배워주고 뿌리를 지켜주기 위한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광둥에는 조선족 학교가 아직 ‘진출’이 안됐다. 부모들이 바질바질 애간장을 태우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고 광둥지역에 한글학교가 13곳이 나졌지만 그것 또한 주말학교여서 임시 갈증은 달랠 수 있어도 장기적인 해법은 결코 아니다.
▲사진= 광둥성 후이저우시 진위(金裕)소학교 내에 위치해있는 후이저우 한글학교. 2006년 9월에 설립해 2010년에 현재의 진위소학교로 교실을 옯겼다. 토요일 수업으로 유치부, 초.중등부로 총 13개 학급이 있으며 현재 학생수가 78명이다. 개학일은 1학기(2월), 2학기(9월)이다. 현지 파견 한국 특파원들의 자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련옥 기자
▲사진= 후이저우 한글학교 반급 내부. /김련옥 기자
▲사진= 후이저우 한글학교에 장만된 도서실. /김련옥 기자
10여년 전 가진 것 하나없이 광둥 선전에 와서 오직 선전에 살아남겠다는 목표 하나로 이를 악물고 보내왔다는 헤이룽장 출신 박모씨(남,36) , 초창기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낮과 밤 따로 없이 돈벌이 긴장에 얼굴 근육 한번 풀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고달펐던 경력과 비해 지금 곧 학교 갈 나이가 된 아들과 딸의 교육문제는 고민이 아닌 고문으로 가슴을 후빈다.
“내 자식들을 왜 조선족으로 키우고 싶지 않겠소…깨알 주으려다 수박을 놓친건 아닌지……” 다시 되돌아보게 된단다.
이와 같은 부모의 심경은 대부분이었다. 유치원에 보내지기 까지는 집에서 천방백계로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만 일단 학교에 붙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점차 조선어 구사를 못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잊어간다.
애들이 모두가 한족학교로 보내지면서 명실상부한 ‘광둥인’ 이 되어 본토의식을 키워가고 있지만 의식속에 망각돼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그 해결책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부모님들 한세대의 ‘희생’으로 쌓은 ‘부’의 뒤모습에는 뭔가를 잃어 가고 있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처절하고 ‘성세호대’하다.
“우리 애들 철저한 ‘광둥인’이예요” 무심코 한 얘기에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묻어난다.
“어떻게 일군 가산인데…남방은 북방보다 기회가 많아 돈 벌수가 있는데…귀향해서는 마땅한 항목이 없는데…” 등등의 이유로 이땅에 정착한 거의 모든 분들에게 있어 다시 떠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진= 지난해 11월 후이저우한글학교 가을철운동회에서 학부모들과 아이들. /김련옥 기자
▲사진= 금방 걸음마를 타는 조선족 어린이들. 우리말을 척척 잘도 알아듣는다. /김련옥 기자
▲사진= 광둥 후이저우의 한 축구장에서 아빠와 딸. /김련옥 기자
취재가 끝날 무렵, 5년 전 광둥 후이저우에 정착한 김모 씨(여,33)를 만났다. 그에게는 1살 된 딸이 있다.
“우리 딸에게 꼭 조선족 학교에 보낼겁니다.” 북경, 한국을 전전하다 이곳에 정착해 아글타글한 5년이지만 자식에게 제대로된 우리민족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하루 빨리 돈 더 벌어 좋은 프로젝트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게 현재 그녀의 절실한 꿈이란다.
그의 확고한 신념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의 우리말 공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부 젊은 부모들의 모습들에 나의 마음도 뭉클했다.
옛날에는부모님들이 소를 팔아 자식에게 민족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100여년동안 조선족사회가 흩어지지 않고 민족군체를 이루고 이 땅에서 옹골종골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역시 조선족의 민족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 타진 정신으로 꿋꿋이 정착한 광둥성 조선족, 자녀의 우리말 교육 문제를 두고 그들의 시름은 깊을 뿐이다. 길잡이가 시급하다.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 이수봉 김호 진종호 김련옥 이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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