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연춘
(치치할시조선족소학교)
과정표를 보고 오후 첫 수업시간 준비를 하는데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리더니 양뿔머리를 한 녀자애가 참새같은 머리를 내밀고 방울소리를 울린다.
“선생님, 명희와 재호가 교실에서 또 떠들어요!”
“그래! 반장은 뭐했지?”
녀자애 머리 우로 반장애가 머리를 쏙 들이밀었다.
“말… 말 했는데도 안 들어요!”
“알았으니 먼저 가서 선생님이 문 앞에 서있으란다고 해요.”
두 애는 큰 일을 집행하러 급히 가야한다는 듯이 문을 닫고 콩콩 뛰여간다.
시간종이 울리자 사무실에서 교실로 향하였다. 중간의 5학년 교실을 지나자 개구리처럼 볼록 튀여나온 배부터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재호가 문 오른쪽 벽에 기대여 입이 뾰료통해서 풀이 죽어 서있었다.
“벽에 몸을 붙이지 말고 서있어요! ”
이 와중에 문을 떼고 들어서려는데 또 다른 뽈같이 동그란 배에 내가 부딪칠번했다. 땀으로 얼룩져 고양이 수염까지 하고 교실 출입문 중간에 턱 버티고 명희가 문지기처럼 내 앞을 막았다.
“어? 넌 왜 문을 막고 서있는거니?”
그래도 비킬 생각을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선생님, 명희가 아까부터 문을 막고 섰어요!”
“왜요?”
“벌을 서라고 했더니 거기에 섰어요…”
교실 안의 여기저기서 쫑알쫑알이다.
“엉?… 아!… 그런거였구나! 호호호…”
배를 글어안고 나는 한참 웃었다. 한쪽으로 어이가 없었다. 애들이 전달한 말을 명희는 찰떡같이 잘 알아들은게 틀림없다.
‘문 앞에 서있으라… 그래서 한치 오차도 없이 문턱 중간에 섰구나!’
명희는 발은 움직이지 않고 몸만 틀고 깔깔 웃는 나를 의아쩍게 보고 있었다.
“음… 재호, 명희 교실로 들어가요!”
약삭빠른 재호가 명희의 배를 밀며 같이 교실로 들어가자고 눈짓 손짓 하는데도 명희는 자리가 아쉬워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지 억지로 발을 옮기는 것이였다.
“명희, 문 앞에 서있으라는데 문을 막고 서있으면 어떡해요?”
그 애는 영문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게면쩍게 웃는다.
시간을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생각하니 “킥킥—”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동료들도 실없이 웃는 사연을 알고 매일 코미디로 즐거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며 롱담을 던졌다.
오후에도 그 자리에 서있는 명희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한 글자가 있었다. 口와 人의 합자, 사람(人)이 울타리(口)에 갇혀있는 모습에서 “가두다”라는 의미를 지닌 구(囚),소심한 모습으로 문중간에 서있는 그 애의 마음 속에 내가 죄의식을 심어준게 아닐가? 그 애는 분명히 조여드는 어떤 압박감을 느꼈을거라 생각하니 실수를 한 것 같았다.
1학년 애들은 아직 분별능력과 지속적인 자아단속력이 부족하다. 교실에서 뛰고 떠들지 말라고 교원이 말할 때는 알지만 한창 신이 나서 뛰여다닐 때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동반한다. 즉 자동시스템의 작동이다. 공이 날아올 때 피하는 행위나 강아지를 보고 미소를 짓는 행위 등은 자동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두뇌학자들은 자동시스템의 활동이 두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서 인간과 파충류들이 모두 동일하게 갖고 있는 부분과도 련관된다고 말한다.
《삼국지》에서 결박당한 려포가 조조 옆에 앉은 류비를 보자 “공은 좌상객이고 포는 죄수(囚人)인데 어찌 한마디 관대말도 없는거냐?”고 하면서 류비에게 자비를 베풀 말을 해주기 바랐다가 결국에는 류비의 한마디 말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의 입으로 다른 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것이다.
교사라는 나도 숙고 시스템(합리적이고 심원한 사고방식)보다 직업적인 자동 시스템(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사고방식)으로 뇌가 작동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였다면 나의 죄의식은 왜 적절하게 작동하지 못했을가? 좀 더 심사숙고하면 교육받는 자한테 가는 상처가 적을것인데…
검색해봤더니 죄의 반대말은 “놓을 방(放), 풀 석(释), 풀 해(解)”라고 한다. 교육자라면 학생들에게 죄의식보다 개방된 사상과 밝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교육, 학생들의 신체와 심리에 알맞는 단계프로젝트교육, 애들의 눈높이에 맞춘 우호적이고 인격존중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한 자리에서 줄곧 한가지 일만 하느라니 때로는 직업태만이 따르고 감성도 무뎌지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시작되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문드러진 감성의 문을 두드려주는 것은 항상 내 신변의 학생들이였다. 그 때마다 흠칫 놀라고 학생들에게는 내가 수인이 되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교육자로서의 말과 행동이 애들에게 한송이의 꽃이 되고 빛이 되고 길이 되여야 할텐데…
독일의 철학가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 쪽이 아닌 안 쪽에 있다.”고 하였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육으로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손잡고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그들 인생의 한 부분의 동반자이자 스승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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