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수로인
지난해에 70세를 바라보는 리한수가 경작지 40여헥타르를 도급맡고 초봄부터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고 동네분들은 입을 딱 벌린다. 리한수가 그렇게 많은 경작지를 다루게 된데는 결코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였다. 다만 편안한 로년시기에 다시 농사꿈을 이루어보려는 심산에서였다.
장춘시 쌍양구 신촌에서 살고있는 리한수(68세)로인은 17세나이에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시작해 생산대장, 촌의 회계와 촌주임으로 있으면서 37년간 농사를 지어온 실농군이다. 한국로무송출붐이 일자 2000년에 처자를 거느리고 한국로무를 갔다가 2011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300여평방메터 되는 살림집을 수건하고 로인협회 회장을 맡아하면서 천륜지락을 보낸 그다. 그러던 어느날 리한수의 집에 뜻밖의 액운이 닥쳐올줄이야! 집안의 기둥인 아들이 불치병에 걸려 몇달간 치료했으나 효험를 보지 못하고 세상떴다. 리한수는 심한 비통에 잠겨 가슴이 찢어질지경이였다.
그러던 2012년 여름날의 어느 하루, 마을앞 농터로 나갔던 리한수는 30여년간 다루어 온 논판이 거칠어지고 수리시설도 억망인것을 보고 놀랐다. 그때 그는 30여년간 쌓은 농사경험으로 다시 농사를 지어봐야겠다는 꿈을 품게 되였다.
그가 다시 농사지을 생각을 내놓자 가족들은 극구 반대해나섰다. 그의 안해는 아무 생각도 말고 늘그막에 편안하게 살아보자고 했고 자식들은 년세가 많기에 조용하게 어머니와 함께 만년을 보내라고 권고하였다.
리한수는 《내 나이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아니다. 뭔가 좀 하면 마음도 바뀌고 신체도 더 좋아지고 더 오래 산다》며 가족들의 반대를 마다하고 동네의 토지를 도급맡았다.
2012년말에 리한수는 논 24헥타르, 밭 18헥타르의 경영권을 양도받고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한족 재배대호 조회신, 사금성과 손잡고 신촌혜신농목유한회사와 명혜농기계합작사를 설립하고 등록까지 했다.
2013년 초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차비에 들어섰지만 자금난에 부딪쳤다. 리한수는 개인자금 50만원을 투자하고도 모자라 대부금 50만원을 맡았다. 연후에 비닐하우스 14개를 세우고 종자, 비료 등을 구입하였다. 하지만 청장년들이 없는 마을인지라 인력이 문제였다. 리한수는 55만원을 들여 농기계를 사들이고 마을의 녀성과 로인들을 인력으로 고용하는수밖에 없었다.
꿈이 있는 황혼이 더 아름답다 한다. 리한수로인의 농사꿈이 결실을 맺게 되였다. 지난해 리한수는 알곡총수입 85만원을 올렸다.
그는 《능력만 있으면 중국에서 농사짓는것이 한국에서 일하는것보다 낫다》면서 《올해부터는 도급맡은 토지중의 3분의 1일을 떼내 유기농사를 해볼 타산이다》고 했다. /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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