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국인뿐만아니라 중국 관광객 지어 일본 관광객들도 한국에 가면 념두에 두고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 있다. 한국 대구 앞산 안지랑골 아래에 위치한 안지랑시장은 1972년에 생겨난 재래시장이였다. 야채, 정육점, 방앗간, 철물점 그냥 동네에서 볼수 있었던 흔하고 흔한 재래시장이였다. 초창기에는 고객들로 시끌법적하면서 번창하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슈퍼, 마트 번창과 함께 재래시장의 점포수가 줄다가 급기야 1997년 IMF로 안지랑 시장 내 점포는 "거미들의 궁전"으로 전락하였다.
그 와중에도 후날 아세아권에 소문나는 먹거리골목으로 성장할수 있었던 그 씨앗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979년 린근시장에서 양념곱창집을 운영하던 충북곱창할머니집이였다. 안지랑 제1대 원조 곱창집으로 지금 불리게 되는 충북곱창할머니의 페헤로 된 안지랑시장골목에 장사터를 옮기면서 안지랑은 생기를 차츰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유명해진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은 1997년 IMF 한파 이후 10여점의 곱창집이 자연스레 골목을 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이 사장님들이 ‘안지랑곱창번영회’를 설립했고 정부의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유명 음식거리로 발돋움해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놀랄 일은 이것뿐이 아니다. 시장골목에서 있었던 약 500~600m 골목에 50개 안팎의 곱창 전문식당이 통일관리를 받는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안지랑곱창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전국각지 지어 외국에서 온 고객들에게까지도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 50여개 곱창전문식당에서 똑같은 재료를 공급받는다는점, 그리고 어느 집이 더 맛있고 어느 집이 더 깨긋하고 어느 집이 더 싸고 량이 푸짐하다는 그런 차별이 없는 골목이다. 재료의 철저한 위생관리를 위해 전문적으로 세척한 곱창 막창을 모든 가게에 공급한다. 무작정 경쟁을 하게되면 어느 한 집에서라도 곱창재료의 위생문제가 드러날 수 있고 그 순간 골목 전체의 이미지가 무너지기 때문에 위생관리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곱창을 전문업체에서 일괄적으로 세척해서 공급하고 있다. 이 때 곱창 자체의 냄새도 잡아서 나온다. 그렇게 공급을 하게 되니 가격도 같다.
이렇게 고소하면서 영양만점, 쫄깃쫄깃하고 깨끗한 안지랑곱창으로 전국 나아가 아세아고객들도 불러들이는데 평일 3000~4000명, 주말엔 두배인 약 8000명이 몰려온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일체의 호객행위가 없다. 그리고 매일 한업소씩 당번으로 나서서 고객들이 정해진 선안에서만 드시게끔 관리도 한다. 시장골목인것만큼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시장골목 공용길을 점용해서 불편을 주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 있다. 우리주변에서는 봉록을 받으면서 하는 일을 한국안지랑곱창골목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무보수로 착실하고 즐겁게 임하고 있다.
죽어가던 재래시장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무엇이 힘일까? 단합이 아닐까싶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구경 어떤 모습일까? 같은 업종, 같은 분야, 이웃, 동료들을 대할때 구경 어떤 심정으로 대하는지 시기,질투는 없는것인지? 같은 분야거나 같은 업종이거나 동료의 실수를 보면 조소나 야비를 던지지는 않는지? 한번은 참답게 생각해보게 된다. 조선족! 우리는 우리자체만으로는 대단한 군체라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경제력, 정신력, 문화적수준까지도 과연 자부할만한 200만 동포인지 랭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모래알처럼 흩어진것도 모자라 헐뜯고 시기질투하고 그것도 비평과 자아비평이라는 거짓허울아래 갑질도 일삼으면서 약자를 무참히 짓밟는 그런 행위는 과연 없는것인지? 소위 상위권에 있다는 사람들한테는 그런 비열함과 파렴치함이 없는것인지?
봉록을 받으면서 하는 일도 꼭 마치 누굴 위해 무보수로 하는것처럼 생색을 내거나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로 뭉쳤더라면( 아니 애초 뭉치지도 못했을것이지만) 과연 우리 조선족무리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삶이 과연 우리 조선족들에게 "안지랑곱창골목"같은 그런 단체행복을 주었을까하고 반성하게 된다.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쫓길 때 대구 앞산의 어느 동굴로 숨어들었다. 이때 갑자기 거미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가득 쳤다.
뒤쫓아 온 견훤이 동굴 입구를 살폈지만 거미줄이 쳐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게 된다. 덕분에 기진맥진 살아남아 동굴 밖으로 나온 왕건은 안일사 샘에서 목을 축이며 편안하고 안일하게 지내다 돌아가 결국은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왕건이 ‘안일하게 지냈다’ 해서 이곳을 안지랑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왕건이 ‘안일하게 지냈다’는 이야기처럼 한국 대구 "안지랑곱창골목" 사람들은 뭉쳐있는한 그들의 미래는 안일할것 같다.
조선족들도 이런 단합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안일하게 보낼 날은 얼마 남지 않았을것이다. 리더조직은 리더조직답게 갑질 아닌 포용, 진심, 지혜, 너그러움 등등 모든 능력과 정성을 다해서 사회를 이끌어갈 그런 민족적책임을 갖고 헌신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할것이다. 그다음 약자단체들은 리더조직의 지휘하에 힘을 모으는 존재가 되여야 할것이다. 그게 살길이다.
조글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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