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는데 요즘은 기계로 작업을 많이 한다. 재래식농사에 비해 기계화가 보급되면서 기계가 많은 일을 도맡아해준다 해도 사람의 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벼종자를 선택하고 어떻게 벼를 재배할것인가 하는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비슷한 토질, 같은 기계로 벼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생산량을 올리는데만 중시를 돌릴것인가 아니면 질확보를 선두에 둘것인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겁니다.”
2005년, 한국행을 접고 고향에 안착하여 벼가공에 골몰했던 손근춘은 2010년 스스로 벼재배에 나섰다. 6년전 고집했던 한가지 벼종자로 오늘의 200무 경작지를 일궈냈다.“시작때는 30무 땅에 벼를 심었습니다. 예전에는 벼이삭을 거두어 가공만 하던데로부터 고품질의 벼농사를 짓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수전에 대부분 길경81호 유기농벼만 키워낸겁니다.”
2012년에 “황토촌입쌀”브랜드로 그가 손수 재배한 유기농입쌀이 연변을 벗어나 북경까지 팔려나갔다. 작년 입쌀년생산량만 80톤가량, 총매출액은 40여만원에 이르면서 손근춘은 몇해동안 쏟아부은 정성으로 보람을 얻기 시작했다.
현재 벼가공공장과 벼농사를 겸해 경영하고있는 그가 유기농벼만 심은 까닭을 밝혔다.“당초 남들이 심은 벼를 거두어 가공하다보니 품질이 불균형했습니다. 쌀이 좋을 때가 있는가 하면 나쁠 때도 많았고… 그래도 내 손에서 팔리는 입쌀만큼은 맛있고 건강한것으로 만들어 팔자는 생각에 스스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유기농벼를 심었습니다.”유기농벼 생산을 고집하다보니 논벼들이 도열병에도 잘 걸리고 재배하기 어려웠지만 손근춘은 유기농벼를 한사코 고집해왔다.
국가적으로 제창하고있는 록색발전이 자신이 경영하는 황토입쌀전문농장 확장에 너무 큰 도움이 되고있다는 손근춘은 “시농업국 산하에 있는 농촌경제관리쎈터를 통하여 토지저당대금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있었던 농장이였는데 자금난이 완화되면서 농장확장에 유조했습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올해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 농장의 자체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연변일보 글·사진 리명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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