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특별기획―‘내 고향은 지금(13)’[서란편―신선촌]
서란시 신안향 신선촌 회방툰의 귀향촌민 대표이자 툰장인 신태원.
-툰장 신태원으로부터 알아보는 회방툰 귀향촌민들 정착스토리
최근 몇년간, 서란시 신안향 신선촌 회방툰(会房屯)을 지나는 사람들은 산골마을에 한채두채 늘어나는 고래등같은 신식 전원주택들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반짝반짝 외벽 타일이 마을의 낡은 벽돌집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회방툰 툰장인 신태원(申太远, 67세)씨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고향마을에 돌아온 촌민 7가구를 포함하여 현재 툰에 살고있는 촌민은 도합 13가구에 이른다. 이제 고향에 돌아와 살련다는 촌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돌아온 귀향촌민들은 전부 15~20여만원씩 들여 뜨르르한 로후대비용 전원주택을 지었다. 신태원도 7가구 귀향촌민중의 일원이다.
신태원보다 조금 젊은 고향후배들도 몇년만 더 고생하여 로후자금을 충족히 마련하면 고향마을에 륙속 돌아올 의향을 밝혀왔다고 한다. 그중 근간에 귀국할 의향을 밝힌 이웃만 5가구다. 현재 촌에 남은 빈 집은 5채, 집터는 3개가 남았다.
조선족이 70가구가 북적이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신선촌의 5개 툰중에서 조선족 귀향촌민수, 전체 조선족 촌민수가 제일 많다.
회방툰의 토지소유권 확정사업을 이미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출국길에 오를수 있게 된 신태원 툰장.
신안향의 5개 조선족툰에서 회방툰에 유달리 귀향정착 촌민이 많아지는 리유는 무엇일가?
신태원은 1999년에 한국에 나가서 부지런한 로동에 자신의 50대를 전부 바치며 2011년 환갑나이가 되여 귀국하였다. 몇해전 안해와 상론한 후 옛집터의 낡은 집을 허물고 20만원을 들여 마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신식 전원주택을 지었다.
88평방메터의 면적에 대도시의 어지간한 아빠트보다 더 뜨르르하게 장식한 벽돌집과 긴 유리복도로 특색있게 설계된 멋진 베란다, 동쪽에 지은 50평방메터의 창고, 남쪽과 북쪽에 각각 수백평방메터씩 되는 넓직한 터밭…… 그들 내외가 로후를 보내기엔 더 이상 아늑할 수가 없다.
회방툰의 최고령인 박준영로인의 자전거 핸들을 잡아드리는 신태원 툰장.
한국에 나가있은 12년동안 버섯농장, 모텔 청소, 건축현장, 식당 등 못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다. 몇해동안 고향에 와서 그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많이 달랬다. 자식들이 결혼장만도 해주고 집까지 장만하고 나니 노후 생활비도 벌 겸 6월 9일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샀단다. 겨울이 오기전에 귀국하여 겨우내내 집을 잘 건사할거라는 신태원씨다. 안해는 이미 2015년 11월에 한국에 재출국하였는데 5년후 비자가 만기되면 귀국할 것이란다.
기자 일행이 강일남 촌서기의 안내를 받으며 집을 찾았을 때 출국을 며칠 앞둔 신태원 툰장은 한창 몇묶음이나 되는 촌민들의 토지경영권 확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신태원씨처럼 그나마 촌에서 젊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촌민들은 귀국하면 있는 동안 마을의 간부로 되여 촌민들을 위해 열심히 심부름을 하고 봉사를 해야만 한다. 신태원씨가 출국하고 나면 또 입국하는 친천되는 분이 맡게 된다고 한다. 힘들지만 마을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높다란 집 마루에 설치된 긴 건조대에는 드릎, 오갈피 등 여러 가지 산나물을 말리고있었다. 본인이 직접 산에 가서 뜯은건 데 친척들에게 똑같이 나눠줄거란다. 30집이 되는 친척들에 나눠주려고 산나물별로 누룽지덩어리처럼 동그랗게 30몫을 나누어 말리고 있는 풍경이 풍경화 같다.
길림신문사 한정일 부총편의 취재를 받고있는 신태원 툰장.
촌의 강일남서기의 소개에 따르면 회방툰은 집체에서 책임지고 촌민들의 토지관리를 잘해놓았기에 마을사람들의 제일 큰 근심걱정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이웃 마을 촌민들처럼 들쑥날쑥 계약한데서 손실이 크지만 이 마을에서는 80헥타르의 토지를 통일적으로 관리해오면서 나간 촌민들의 합법적권익을 보장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하남성 모 회사와 당지에서 제일 높은 양도비로 무당 1100원의 가격에 논을 전부 10년동안 계약했다. 무당 200원의 농업직접보조금도 촌민들이 받기로 계약했다.
한편 이 마을 촌민들은 한국이나 대도시에 나가면서 집과 집터를 타민족에게 팔지 않고 남겨둔 것이 외국에 가서 목돈도 벌고 귀향하여 재정착할수 있는 터전이 보장되였다. 돌아오려 해도 집이 없어 오도가도 못하는 이웃마을 사람들과 대조적이다.
이 마을은 친척이나 사돈이 유독 많은것도 뉴대관계가 더 잘 뭉칠수 있은것 같다고 한다. 7가구 새 귀향촌민의 경우 신태원과 그의 큰형, 남동생, 녀동생, 처남 등 가까운 친척이 위주이다.
귀향촌민들이 새로 지은 전원주택과 이웃한 촌 위생소.
신태원의 앞집에 있는, 조선족 부부가 운영하는 위생소는 외지의 환자들도 많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촌민들은 감기같은 작은 병에도 위생원 덕분에 별 근심이 없다.
마을의 10가구의 한족 로촌민들도 예로부터 조선어로 소통도 얼마간 가능해 교류가 편하다보니 마을의 분위기가 사뭇 가족적이고 명실공히 조선족동네같은 분위기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다. 귀향촌민들이 많아지면서 량성순환을 부른다고 한다. 함께 오손도손 모여살기 좋아하는 조선족 사람들의 특성상 아늑한 둥지가 만들어지면서 줄레줄레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신씨는 말한다.
나서 자란 정든 산천이 있는 고향땅에 고래등같은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가족같은 죽마고우 촌민들과 로후를 보낼수 있는 행복, 그래서 회방툰은 이웃마을 사람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길림신문/유경봉 한정일 기자, 배영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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