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기획-6] 반세기 넘게 거주 조선족 장상국 교수가 보는 상하이 변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4일 10시55분    조회:193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개혁개방후 상하이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흑룡강신문=하얼빈) 18세의 어린나이에 헐헐 단신으로 낯설고 물선 대도시 상하이에 진출해 장장 55년간 상하이에 거주한 상하이해양대학 조선족 장상국 교수(71. 사진)는 "개혁개방후 상하이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린성 반석시 출신인 장교수는 반석시에서 조선족 학교를 다니다 따롄으로 이주, 1964년 따롄에서 상하이해양대학 전신인 상하이수산학원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후 본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었으며 1987년 영국 cranfield대학교 석사를 졸업했다. 상하이해양대학 경제관리학과 박사생 지도교수, 학과장을 거쳐 정식퇴직했다.

   

 

▲사진= 장상국 교수 부부가 컴퓨터에 들어 있는 자료들을 보며 다정다감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수봉 기자

   

  1996년부터 1년간 한국여수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약했었다.장 교수의 가교 역할로 상하이시와 한국 부산시의 수산업계가 밀접한 업무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2004년 장 교수는 한국 부산시장으로부터 영예증서를 받았다.

  장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50년대 제1진(第一批)으로 10여명이 상하이시정부기관으로 발령 받아 왔다. 제2진으로 베이징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한 조선족 대학생들이 상하이에 있는 연구기관에 배치 받아 왔다고 한다. 장 교수가 상하이에 남아 교편을 잡으면서 상하이에 진출한 제3진 조선족이 됐다고 한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첫해 설에 상하이민위에서 소수민족 학생들을 불러 설을 함께 쇠였는데 한 30명이 됐어요. 그때 조선족으로는 제 혼자였어요. 그 이듬해 다른 학교에서 조선족학생이 한명 왔어요. 그래서 이듬해에는 조선족학생이 2명이 됐어요.그후에는 문화대혁이 나서 모임이 없었어요"

   

 

▲사진= 지난 5월초에 찍은 상하이 룽바이의 한거리. 조선족이 많이 집거한 지역으로서 코리아타운으로 불리운다. /이수봉 기자

  

  그러면서 장 교수는 "상하이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제일 높은 고층건물이 난징루에 있는 24층 국제호텔이였어요. 지금은 100여층 넘는 건물이 많지요. 그리고 상하이를 유유히 흐르는 황포강에서 수영도 했어요. 그때는 배가 적었어요. 지금은 배가 많아 수영을 못해요"라고 덧붙였다.

  대학교 학제가 5년인데 문화대혁명 때문에 1년후 졸업하게 되여 대학을 6년 다녔다. 대학공부를 할 때 방학간에 집에 딱 한번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도 배를 48시간씩 타고 다녔는데 5등급 배이고 짐을 싣고 다니는 배여서 속도가 아주 느렸다고 한다.

  1978년 개혁개방후 다른 상품보다 수산물가격을 제일 먼저 시장수요에 따라 결정했다. 따라서 원양어업이 제일 먼저 국문을 나서 국제경쟁에 뛰여들었다. 어업은 계획경제로부터 해탈돼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넘어갔으며 개혁개방의 혜택을 보기 시작했다.개혁개방이 깊이 있게 추진 되면서 어민들의 소득이 눈에 띄게 올랐으며 시민들이 ‘바다 고기를 먹기 어려운 문제’를 다소 해결했다. 어업경영 메카니즘이 바뀌면서 이 분야의 이론연구가 필요했고 어업경영관리 인재가 많이 수요되었다. 이 과정에 상하이해양대학의 어업경제 및 관리학과의 교수들이 큰 공헌을 했다. 장상국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들중의 한 사람이다.

   

 

▲사진= 장 교수 부인이 두 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뒷에 보이는 배경이 한창 건설 중인 동방명주 탑이다. /자료사진

  

  개혁개방후 상하이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고 묻자 장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첫째는 기초건설 입니다. 둘째는 관념개방 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처음 상하이에 왔을 때 상하이 사람들이 외지인을 배척했어요. 차를 타거나 물건을 구매할 때 중국어 성조가 상하이 사람들과 많이 틀려 이상한 눈길로 보았어요. 상하이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개혁개방후 외지에서 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외국인도 많이 오고 하니깐 자연히 마음이 오픈되고 달라졌어요 "

  그러면서 장 교수는 한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당시 소개로 지금의 부인과 첫 선을 보았는데 조선족이라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해 하더라고 한다. 상하이 ‘토배기’인 장 교수 부인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조선족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아마 첫 만남으로 끝날거라고 생각했어요.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얘기하니 그런 민족이 있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교통은행 직원이었어요. 그래서 학식이 좀 있었어요. 아버지 설명을 듣고 마음이 많이 후련했어요.당연히 두번째 만남이 이어졌지요. 키가 커서 당시 이 사람이 멋 있었어요”

    

 

▲사진= 지린성 반석현 명성향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부모님과 형님, 누나,여동생, 그리고 장 교수(뒷줄 가운데). 당시 형님은 ‘다롄해군함정지위학원’학생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여순해군기지 부사령원이었다. /자료사진

   

  부인의 얘기에 장 교수가 한수 더 떴다.

  “지금도 멋 있지요”

  장 교수 노부부의 얘기를 들으며 행복이란 별거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1974년 결혼했는데 한족은 한달에 쌀을 한근씩 배급 주고 조선족은 5근씩 배급을 주었는데 그래서 아주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장 교수는 “1970년에 봉급을 48.5위안 받았는데 80년에 55.5위안, 85년에 62.5위안, 영국서 귀국하던 이듬해인 88년에 955위안, 2001년 3000위안, 지금은 1만위안을 받는다”며 “봉급의 변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혜택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집거주 조건도 많이 개선됐다고 자랑했다.학교에서 준 작은 집에서 살았는데 2001년 125제곱미터 아파트를 구매해 입주했고 2007년에 또 아파트 한채를 구매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1964년 상하이에 왔을 때 조선의 조교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인성소학교라고 했는데 1917년 개교했다고 한다. 서울 88올림픽때부터 한국인들이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로 오기시작했다고 한다. 1990년 베이징아시아운동회때 한국인들이 상하이로 많이 왔고 여행사들이 통역을 많이 구했다고 한다.상하이 사람들이 좀씩 달라진데는 외국인들의 역할도 크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 이수봉기자, 박형군 특약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070
  • 국경절 황금련후기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정책과 더불어 주내 많은 관광지에서 입장료 할인정책이 실시되면서 관광시장이 호황세를 보였다. 돈화륙정산풍경구에는 지혜의 등을 밝히고 기복카드를 거는 등 행사를 조직했는데 륙정산풍경구 책임자에 의하면 “국경절기간 입장료를 30% 가량 할인했으며 관광객들은 옥불...
  • 2013-10-08
  • 27일, 전국 500강 기업인 장춘구아집단과 연길백화청사가 공동으로 훈춘시에 일떠세운 원스톱 쇼핑쎈터가 개업했다. 장춘구아집단주식유한회사는 국내 대형상업기업으로서 1984년에 설립되였다. 29년 동안 리사장 조화평...
  • 2013-10-05
  • 하서촌 당지부서기겸 촌민위원회 주임 관언영   기지에서는 남새 외 딸기,수박,참외 등 과일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지 면적이 10여헥타르 늘었고 온실 16개, 비닐하우스가 90여개에 달합니다.     온실   촌민들이 유기비료를 발효시키는 온실에 비닐박막을 씌우고 철사를 고정시...
  • 2013-10-04
  • 지난 9월 29일에 열린 주 및 화룡시기계화가을걷이 현장회   올해 저온랭해 등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어거리풍작을 거둔 우리 주 농촌들에서 기계화가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평강벌일대에 있는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 벼재배기집니다.    알알이 염근 벼이삭들이 서늘한 가을바람을 타고 황...
  • 2013-10-04
  • 《10.1》황금주를 앞두고 북경시의 첫 시급 관광안내소가 정식으로 천안문광장 동쪽에 설치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있다. 《일찍 북경시의 적지 않은 풍경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침 천안문안내소개업날에 천안문에 오게 됐다》. 26일 집식구들과 함께 천안문광장 유람을 온 호북 리박의 말이다. 국가박물...
  • 2013-09-28
  • 김광서 씨(오른쪽)와 저장성 중국 단독투자법인 관계자가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기업인이 경영하는 국제 선진 친환경 건자재제품 헤이룽장 총판이 지난 25일 개업했다.   하얼빈의 기업가 출신인 김광서(47)씨는 일본 최대 친환경 건설 및 인테리어 업체인 '다이켄(大建)...
  • 2013-09-27
  • -도문형통양조유한회사 최형길사장의 일가견 《우리는 살아있는 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늘 감주의 질에 대해 강조하는 최형길사장(중간사람). 최근 《연변의 여름》-2013 두만강문화관광축제와 연길두만강투자무역박람회에서 《미아리(米阿利)》 표 100%활성화 막걸리로 현지 한족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인 ...
  • 2013-09-27
  • 부동산관리국 감독관리 실시   개발상이 분양주택 구매자의 예매금을 람용하는 불법행위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분양주택 거래 쌍방의 합법적리익을 수호하는데 도움을 주고저 일전 연길시인민정부 제8차 상무회의는 “연길시 분양주택예매금 감독관리 실시세칙”(이하 “세칙”으로 략함)을 실시...
  • 2013-09-26
  • 9월 30일, 10월 13일 시운행 중국, 조선, 로씨야 3국 주요관광지를 잇는 연길-평양-울라지보스또크 전세기관광상품이 곧 출시할것으로 알려졌다. 연변천우국제려행사 지금녀총경리에 따르면 관련 관광코스는 5박 6일(가격 인당 5280원)로서 오는 9월 30일과 10월 13일에 시운행을 하고 래년에 정식운행을 할 계획이다. 소개...
  • 2013-09-26
  •   길림시 길림-료녕초시(吉草)고속도로 부근에 높이 6메터되는 팽이조형물이 경사진 형태로 당장이라도 넘어질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있다. 설계자의 한 사람인 동북사범대학 미술학원 조각전공 곽수의교수에 따르면 이 팽이는 높이가 6메터, 직경이 5메터, 무게가 약 5톤이다. 길림신문
  • 2013-09-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