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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1] 통신 도구의 변천을 말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8일 09시27분    조회: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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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신문=하얼빈) 채복숙 기자= 개혁개방 후 중국의 통신 업종은 신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전보, 편지와 BP로부터 '따거따', 오늘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40년 간 통신 도구의 변화는 시대 변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민 생활의 변화와 사회 진보 및 경제의 신속한 발전을 체현하고 있다.

  "전보를 받고 회의에 갔더니 마침 끝나는 날이었다"

  지난 세기 70~80년대 사람들의 주요 통신 도구는 편지와 전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집식구나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흥분된 심정으로 한시라도 지체할 세라 편지를 뜯어보군 했었다. 그 연대에 있어서 편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편지나 전보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해 울지도 웃지도 못할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헤이룽장성 상지에 사는 강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의하면 1977년도 당시의 목단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창작 회의에 참가하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달려갔더니 마침 회의가 끝나는 날이였다고 한다.

  그보다 더 웃기는 얘기는 처녀 만나러 갔던 일이다. 풍편에 좋은 처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중매꾼을 따라 온밤 기차를 타고 찾아 갔는데, 차에서 내리니 새벽이였다. 그래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그 처녀의 집에 찾아갔더니 벌써 며칠 전에 약혼해 약혼자를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전화 한 통으로 알아볼 수 있으련만 그때는 다른 연락 방식이 없다 보니 수 백리 길을 헛걸음 한 것이다. 그리고 전보를 받고 찾아가 보니 전보를 친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된 것과 같은 일도 수두룩했다고 강할아버지는 말했다.

  국가통계국의 수치에 따르면 1980년 전국의 우편 편지 총발송량은 33억1300만 통에 달해, 인구당 평균 1년에 편지를 세 통씩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헤이룽장성은 1980년 한 해의 우편 편지 발송량이 1억 2600만 통에 달해, 당시의 전성 인구 3129만 6000명으로 계산했을 때 인구당 평균 1년에 편지 4통씩 보낸 것으로 된다. 1994년 헤이룽장성의 편지 발송량은 역사 최대치인 1억 6800만 통에 달해, 당시의 헤이룽장성 인구 수자인 3672만 명으로 계산했을 때 인구당 평균 1년에 4.6통의 편지를 발송한 셈이 된다.

  그 이후 데이터 통신도구가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 전국 내지 헤이룽장성의 우편 편지 발송량도 끊임없이 하락했다. 2016년 헤이룽장성의 우편 편지 발송량은 총 3700만 통으로 1980년의 29%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의 헤이룽장성 인구 수자인 3799만 명으로 계산해 보면 인구당 평균 한 해 동안 발송한 우편 편지 양은 한 통도 되지 않는 셈이다.

  

  "90년대 초 유선전화는 늘 고장나군 했다"

  중국의 제일 첫 유선전화는 1900년 난징에서 나타났다. 1949년 이전 중국의 전신시스템은 발전이 아주 완만했다. 1949년 중국의 전화 보급율은 0.05%였고, 1978년의 전국 전화 사용자는 214만 호였으며 보급율이 0.43%였다.

  개혁개방 후 낙후한 통신 네크워크는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 전번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전신시설의 기반시설 건설을 다그쳤다. 2003년 3월까지 중국의 고정(유선) 전화 사용자는 2억 2563만 호에 달했다.

  하얼빈에 사는 박씨는 1992년 유선전화를 설치, 당시는 전화선이 무질서하게 설치되다 보니 전화선이 끊어지는 일이 비일비재였고 전화선 보수 때문에 통화가 불가능했던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박씨는 늘 외지에 나가 일하는 부인과 전화 연락이 가능해졌기에 과거 보다는 많이 편리했다고 말했다.

   

  역사 무대에서 퇴장한 BP와 '따거따'

  1973년 4월 3일 모토로라회사는 세계 제일 첫 휴대폰을 발명했다.

  개혁개방 초기, 바다 건너 중국에 들어온 휴대폰은 중국 대륙에서 '따거따'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1987년 모토로라는 베이징에 판사처를 설립, 이로부터 중국 대륙은 이동통신 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당시의 매체 보도에 의하면, 1987년 중국 제일 첫 '따거따' 사용자는 2만 위안을 들여 기계를 구입한 외에도 6000위안의 통신망 가입비를 내야 했다. 그때 '따거따'는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다.

    

 

▲사진= 80년대 한 사람이 달리는 열차안에서 따거다를 치고 있다. /자료사진

   

  1999년 하얼빈에 사는 김씨도 끝내 '따거따'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김씨에 따르면, 1999년 그는 5000위안을 들여 따거따를 샀다. 당시는 따거따가 처음에 나왔을 때처럼 대단한 물건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들고 나가면 체면이 섰다.

  당시 따거따는 외형이 지금의 휴대폰과 비교할 수도 없이 육중했고 통화 외 다른 기능이 없었으며 그 통화 질마저 안정적이 되지 못했다.

  사실 중국 사용자들은 따거따보다도 BP를 더 많이 사용했었다. 따거따에 비할 때 BP는 신호를 접수할 수 있을 뿐 메시지를 발송할 수 없었다. 1995~1998년 전국적으로 BP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해마다 평균 1593만 호 이상 늘어났다. 2000년, BP업무량은 최고봉에 올랐다.

  과거 중국시장을 휩쓸었던 모토로라는 스마트폰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모토로라가 세계 제일 첫 휴대전화를 발명해서부터 4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중국 통신 시장에도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고 따거따와 BP는 역사의 뒤울안으로 사라졌다.

  2000년, 모토로라는 세계 제일 첫 터치 스크린 스마트폰을 생산해냈다. 중국에서는 2007년에 제일 첫 스마트폰이 탄생해, 2009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헤이룽장성은 2012년 휴대폰 보급률이 100인 당 69.5대에 달했다. 2017년 2월 말까지 중국 휴대전화 사용자 수는 이미 13억 3000명에 달하며 전국적으로 10개 성의 휴대폰 보급율이 100명 당 100대를 넘어섰고, 헤이룽장성의 휴대전화 보급율은 100명 당 91.6대에 달했다.

   

  모바일 인터넷, 위챗으로 한국 일본의 가족과 연락하다

  2008년 중국은 처음으로 모바일 인터넷 3G를 개발해 냈으며, 2013년 3G신호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접속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헤이룽장성의 3G 사용자 수는 471만 명이였는데 2013년 837만 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2015년부터는 4 G신호 휴대폰이 보편화 되어, 현재 휴대폰 시장에서 절대적인 주류 제품으로 되었다. 헤이룽장성의 모바일 4G 네트워크도 2015년 전면적으로 건설되었고, 지난해 제1분기까지 모바일 4G 신호 사용자 수는 1861만 여 호에 달했다.

  2016년, 전국적으로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수는 6억 9500만 명에 달했으며 2017년 2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휴대폰 사용자는 13억 3000만 명에 달했는데, 그중 3G와 4G 사용자는 누계로 9억 7800만 명에 달했다.

  현재 웨이하이에 사는 헤이룽장성 출신 이씨네 가족은 국제화 가족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은 일본에, 딸은 한국에 살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금 위챗을 통해 국외의 아들딸, 손자, 손녀와 실시간 영상통화가 가능하기에 조금도 자녀들과 떨어져 산다는 감이 없다고 말한다.

    

 

▲사진= 현재 사람들은 핸드폰을 떠나 살수가 없는 '핸드폰의 노예'가 되었다. 특히 과학의 발전으로 스마트 핸드폰은 우리 생활에 많은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하얼빈의 모 핸드폰 매장이다. /한동현 기자

   

  '통신 고속열차' 삶의 질 향상을 이끌다

  통신 도구의 발전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좁혀주던 데로부터 이제는 정보를 얻고 여가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 발전했다.

  개혁개방 전에는 유선전화마저 희소하던 데로부터 지금은 스마트폰, 모바일 인터넷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 중국은 5G 시대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으며 국민들은 이 '통신 고속열차'에 탑승해 삶의 질 향상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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