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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00년 된 소기촌의 사과배선조나무 구합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0월22일 10시49분    조회: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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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배선조나무가 스러질가봐 가슴을 앓는 리태수선생,정부와 전사회의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

소기촌에 있는 사과배선조기념비

키를 한어로 버치(簸萁)라고 부른다. 그런 “버치”가 희한하게도 지명으로 기재되여있는 곳이 있었다. 룡정시 로투구진의 소기촌(小萁村)이다. 골짜기에 자리잡은 지형이 마치 키처럼 생겼다해서 버치골이라고 불렀는데 후에는 소기촌으로 불리웠다고 지명지는 적고 있었다.

지금은 여러 마을들이 합쳐져 용진촌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입버릇처럼 소기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도중에 소기촌으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길가던 촌로 한분이 로투구시가지를 들어가기전 다리를 건느지 말고 왼쪽길로 꺽어들라고 신신당부했다.

연길에서는 30키로메터가 넘는 거리였다. 자전거로 한시간 반쯤 달리니 도착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마을이였다. 특히 연변의 명물인 사과배가 산에서 내릴 때쯤인 10월이면 더욱 떠오르는 고장이기도 했다.

소기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에 바로 연변사과배의 시조로 되는 사과배선조나무가 있고 그 모수(母树)를 육성해낸 최창호의 전설들이 깃들어있기때문이다.

로투구진에서 부르하통하를 건너 산골짜기를 따라 23키로메터쯤 달렸을 때 오른쪽 길가에 “연변사과배선조나무”라고 쓴 표지석 하나와 사과배고목 한그루가 나타났다. 사과배선조나무는 올해 99세라고 한다. 1921년도에 조선 북청에서 갖고온 배나무 접가지와 당지의 돌배나무를 접해서 육종해낸 나무가 바로 현재 연변의 유명한 사과배선조나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변지역 모든 사과배나무의 원시조로 되는 모수격인 사과배선조나무가 아직 소기촌에 한그루 남아 있는 것이다. 사과배선조나무를 마주하니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겪어온 백발이 성성한 로인을 마주한 느낌이였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했으나 너무 늙어서 차마 말은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듯 그런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제1대 사과배선조나무의 마지막 한그루.

“가끔은 사람들이 찾아와 신기한듯 구경하고 가기도 하지요.”방옥하라고 부르는 촌민이 일본은 물론, 한국손님도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몇해전 일본에서 온 손님은 연변에 와서 사과배를 먹어보고 그 맛에 미혹된 나머지 사과배의 유래에 대해 긍금증을 느껴 소기촌까지 찾아왔더라고 방씨는 말했다.

“외지에 있는 제 친구들도 많이 보고갔는데 이들도 소기촌에 이같은 연변사과배나무의 시조나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들 말합니다…”방옥하씨는 연변에 살면서도 사과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 선조나무가 소기촌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더욱 많다고 말했다.

사실 그러했다. 사과배가 연변의 명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과배가 연변의 명물로 되기까지는 어떤 내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사과배는 원래부터 연변에 있었던 재래종과일쯤으로 쉽게 생각했고 지역명물에 대한 료해가 부족했다.

“사과배는 저의 이모부인 최창호어르신께서 1921년도부터 시작해 다년간 알심들여 배육해낸 연변지역의 우수한 배품종이였습니다.”최창호선생의 일가친척벌되는 리태수(79세)선생의 소개였다. 연변사과배선조나무 전승인 자격으로 다년간 최창호선생의 고택에 머물면서 사과배선조나무에 대한 애정을 몰부어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사과배선조나무 전승인의 자격으로 고목을 돌보고 있는 리태수선생.

리태수선생에 따르면 원래는 사과배선조나무를 최창호어르신의 아드님이였던 최승묵과 함께 퇴직 후 고향에 돌아가 함께 돌보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형님벌되는 최승묵선생이 먼저 병으로 돌아가면서 고향의 사과배선조나무를 그가 돌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퇴직 후 리태수선생은 연길에서 소기촌에 옮겨가 최창호선생이 살던 고택에서 살면서 7년간이나 돌보았다. 그사이 말라서 거의 다 죽게 된 늙은 사과배선조나무에 영양제도 투여하고 지극정성으로 관리하면서 죽어가던 나무를 다시 살려냈고 지어는 고목에 꽃이 피고 열매까지 달리게 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전 들어서 살고있던 고택이 무너질 우려가 있는 위험주택으로 판명나면서 부득불 다시 연길에 돌아와 살고 있다고 했다. 밤에 자다가도 “우찌끈 우찌끈”하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고택이 지은지 무려 120년이나 된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비운지 2년이 넘어되고 사과배모수에 대한 관리가 힘들어지게 되니 지금은 겨우 한대밖에 남아있지 않은 제1대 사과배모수가 자나깨나 늘 걱정된다고 리태수선생은 말했다.

120년이 넘는 최창호선생이 살던 고택.

“이게 어떤 나무입니까? 연변의 유명한 명물인 사과배를 전 연변에 퍼뜨린 모수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명물을 배육하기 위해 한생을 분투해온 최창호어르신이 손수 배육하고 키워내신 나무가 아닙니까?! 이제 그 제1대 모수가 1대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이 귀중한 나무를 어찌 관심없이 바라보고 방치해둘 수 있단 말입니까?!” 리태수선생의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안타까움인 것 같았다.

소개에 따르면 1927년에 최창호가 접가지로 접목한 나무에 드디여 과일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달고도 수분이 많고 시원했으며 저장하기도 까다롭지 않았다. 그때는 배이름을 “참배”,“청배”,“큰배”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배품종이 좋다보니 30년대부터 처음 접목에 성공한 제1대 3그루의 사과배나무를 모수로 소기촌에서부터 3헥타르의 과수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뒤를 이어 로투구와 화룡, 도문 등지로 널리 퍼져나갔다.

알고보면 “사과배”라고 정식이름이 붙은  것은 그후의 일이였다. 1952년도에 연변에 온 길림성과일품종조사조는 소기촌에서 세밀한 조사를 거친 후 확실히 새로운 배품종임을 긍정했다. 또한 최창호가 1921년도에 접목한 제1대 모수 3그루를 연변사과배의 모수로 결정하였다. 배처럼 노랗고 사과처럼 붉은 색갈을 띤 과일의 형태를 보고 “사과배”라는 정식이름을 달아주게 된 것이였다. 그후 1954년도에 길림성농업과학연구소의 고모가 연변의 사과배는 추자리(秋子梨)계통과 사리(沙梨)의 자연교잡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해방후 소기촌은 배나무덕에 번신했다고 한다.

그것은 사과배가 있었기때문이였다. 2030년대부터 심기 시작한 사과배나무가 과일이 잘 열리고 품질이 좋은 장년기에 접어든데다가 거름도 잘내고 관리도 잘해준 보람으로 품질이 좋았던 것이다. 1955년도 가을에 최창호를 비롯한 소기촌의 촌민들은 공산당과 모주석의 은덕으로 농민들이 번신했다는 감사의 뜻을 담아 10광주리의 사과배를 모주석께 보내드렸다고 한다. 사과배 하나에 한근반, 두근씩 되는 희귀한 것들이였다고 리태수선생은 과거를 회억했다.

1961년도 련속 3년 자연재해가 들었던 때에도 소기촌은 부유했었다고 리태수선생은 말했다. 그해 사과배를40만근이나 수확했다고 한다. 그때 다른 마을들은 하루에 일공이 3전도 되나마나 했지만 소기촌은 2원 64전5리나 되였고 성급 모범상장도 탔다고 말하면서 리태수선생은 수치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농민들이 당시 3대 가장기물이던 손목시계, 재봉침, 라지오를 거의다 갖추었을 정도로 잘사는 마을이였다. 시골마을이지만 부유하다보니 전기도 62년도에 일찍 마을에 들어올 수 있게 되였다고 한다.

“그게 다 사과배덕이였지요” 리태수선생이 자랑하는 사과배의 덕은 소기촌 하나만 혜택본 것이 결코 아니였다.

 연변의 특산물로 유명한 연변사과배.

50년대초 자치주 초대주장이셨던 주덕해가 사과배 새품종의 확대생산을 위해 1951년도에 모아산기슭에 과수원자리를 잡아주고 과수농장건설을 지시격려했다고 력사는 기록하고있다. 그후 불과 40년사이 과수농장의 사과배재배면적이 1만 3000헥타르로 확대되였다. 사과배는 그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길림성은 물론 우리 나라 20여개 성과 조선, 로씨야, 벌가리아 등 해외에까지 전파되면서 현재 총재배면적이 8만헥타르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특히 내몽골, 청해, 감숙, 료녕성의 일부 지역들에서는 사과배가 지역의 주요한 과일품종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1976년에 있은 전국배과학연구협작회에서는 설리, 태양리와 함께 사과배를 중국의 3대 명표배로 인정했다. 사과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강한 저장성과 내한성 그리고 품질이 우수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1987년 농목축어업부는 룡정현을 “사과배의 고향”으로 명명했으며 전국의 유일한 량질사과배생산기지로 결정했다. 화룡시는 길림성생산기지로 되였다. 1989년에는 《해란강표》사과배가 농업부의 명표과일로 되였고 1990년에는 사과배가 록색식품으로 되였다. 2002년에는 국가기술질량감독총국의 심사를 거쳐 룡정시가 사과배의 국가원산지보호산품지로 되였다…

흘러간 세월속에 세상에 널리 이름떨친 사과배를 보면서 소기촌의 사과배모수가 우리에게 중요한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사과배가 어떤 나무입니까? 우리 민족이 이 땅에 든든히 뿌리박고 개척하면서 가꾸어낸 노력의 열매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응당 사과배를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생각해야 하며 문화적, 정신적인 유산으로 길이길이 계승하고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리태수선생의 말은 인심을 격동시키는데가 있었다.

1987년 사과배선조나무 비석 락성식 장면(자료사진).

“물마실 때 우물 판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어느 위인이 하신 말씀이 있다. 사과배와 최창호의 공덕을 기리여 룡정시인민정부과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에서는 1987년과 1998년도에 각각 사과배재배 성공과 최창호가 재배한 제1대 3그루 사과배선조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소기골에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사과배는 연변 여러민족인민들이 연변을 개척한 성과의 하나로서 그 선조나무는 연변인민들이 대자연과의 투쟁에서 따낸 승리의 상징이며 연변경제의 중요한 유산이며 연변인민들의 애국주의와 향토애교양의 산 교과서이다.”고 적혀있었다.

1987년 오장숙, 장룡준 등 당시 지도일군들이 락성식 테프를 끊었다.

“이제 2년만 지나면 사과배선조나무도 만 100살이 됩니다. 최창호어르신과 사과배나무 100년은 매우 기념적의의가 있는 매우 소중한 력사적 유산입니다.”

사과배선조나무 탄생 100주년을 맞으면서 리태수선생은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바로 말라가는 고목을 제때에 관리하고 돌볼 수 있는 집을 한채 짓고 사과배선조나무기지에 최창호선생의 석고상을 세워놓고 싶은 것, 그리고 허물어져가는 사과배선조나무비석을 다시 수건하여 우뚝 세워놓고 싶은 것이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제1대 사과배모수도 제대로 관리해주기만 하면 아직도 꽤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아직 건강한 제2대 사과배모수도 6대나 있어 사과배브랜드창출과 사과배력사박물관, 그리고 향촌관광에 밝은 전망이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소기골에서 나는 질좋은 꿀제품과 과일, 목이버섯, 홍송, 소, 양 등 다양한 특색자원들을 리용하면 향촌경제의 미래와 출로는 더욱 밝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과배선조나무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리태수선생은 말한다

사과배선조나무를 브랜드로 한 향촌의 민속문화와 지역특색, 그리고 력사를 결부시킨 독특한 사과배문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리태수선생의 타산이였다.

그러나 혼자힘으로는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과배선조나무기지의 전승권을 팔라고 찾아오는 개인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기지를 결코 양도할 수 없다고 리태수선생은 말한다.

어찌보면 사과배선조나무는 연변과 중국조선족의 엄연한 력사적 유물이기때문이다. 력사유물은 보호하고 계승해야 한다. 그러나 100년 유물을 개인투자자들의 돈벌이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고 리태수선생은 말한다. 얼마 못가 그 대가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리태수선생은 단호히 거부했다.

현재 리태수선생은 사과배선조나무의 계승과 보호를 위한 정부적 차원의 합작과 도움을 박절히 수요하고 있었다. 해당부문을 찾아 다니면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라고 한다. 소기골에 사과배문화의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여나 새로운 현대판 사과배의 전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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