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창업한 애플서 쫓겨나고 재기 노린 ‘넥스트’도 실패
잡스, 최악 상황에서 본업 아닌 애니메이션 회사에 깜짝 투자
돈 될 가능성 전혀 안 보였던 취미로 시작했던 사업이 대박
잡스를 억만장자로 만들어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1986년의 미국 버클리 교정이었다. 상상을 넘는 학습량에 눌려 살던 신참 한국 유학생이 다음 날 숙제를 걱정하며 길을 가는데 옆에 있던 학생이 ‘어, 스티브 잡스다’라고 한다. ‘그게 누군데’ 한마디 하고 가던 길을 갔다. 대학에서 펀치 카드에 찍은 프로그램을 메인프레임에 몇 번 돌려본 게 전부인 어리바리 유학생이 애플컴퓨터가 뭔지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천재와 악수라도 해볼 기회를 그렇게 날렸다.
좌절의 시기는 천재에게도 범인에게도 찾아온다.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하고 우울해하며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한다. 애플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매킨토시가 시장에서 실패하자 이사회가 잡스를 경영에서 배제한 게 1985년이다. 자신이 공동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 깊은 좌절에 사로잡혔을 그는 무얼 했을까?
잡스는 다소 돈키호테적인 혼란을 보이면서도 여러 분야의 구루를 만나서 조언을 듣곤 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프랑스 남부에 정착하려는 계획도 세웠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설 생각도 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선에 태워 달라고 요청하는 엉뚱한 면모도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 대학에서 강의도 듣고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생각을 찾곤 했다. 내가 잡스의 뒷모습을 잠시 본 1986년에는 애플 적자의 원흉이던 매킨토시가 어느새 애플에 돈을 벌어다 주는 히트 상품이 돼 있었으니, 그걸 못 기다려준 이사회가 얼마나 미웠을까.
보통의 해피엔딩이라면 이런 좌절을 겪고 나면 새로운 시도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눈이 왔는데 서리까지 낀다고 했던가. 영어 속담에도 비가 오면 꼭 ‘쏟아진다’고 했다.
잡스가 그랬다. 애플에서 나와서 만든 넥스트컴퓨터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재들을 유치하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쫄딱 망하고 말았다. 시대를 앞선 탓에 비싸기만 해서 로스 페로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손을 털었을 정도니까. 이런 위기가 임계점에 오른 1993년은 그의 인생 최저점이어서 외부 활동도 없다 보니 이 시절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그는 좌절을 겪은 정도가 아니라 그 끝을 본 사람이다. 애플사가 미워서 퇴직 후에 그 주식을 모조리 팔았는데 그 종잣돈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낭떠러지에 다다른 잡스를 구원한 것은 토이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가 특유의 완벽주의로 몰입했던 사업은 넥스트였지만 취미 차원에서 운영하던 픽사라는 회사가 영화를 만들어 대박을 친 것이다. 기사회생 정도가 아니다. 영화의 성공에 이어 기업공개를 하자 그의 재산은 애플에서 번 모든 것보다 훨씬 많아져서 명실상부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나중에 픽사를 인수한 디즈니의 주식을 받았는데 그는 사망할 때까지 디즈니 1대 주주였다.
잡스는 넥스트를 사업으로 여겨서 외부투자 유치를 통해 키웠지만 픽사의 자금은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 컴퓨터 그래픽스를 통해 예술과 과학을 결합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 관심 탓인데, 이게 너무 적자가 심해서 팔아 보려 한 적도 있긴 하다. 도대체 돈 벌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이 회사를 그는 왜 계속 유지한 걸까?
폴 버그 교수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스탠퍼드대 교수이던 버그는 동네 이웃이었는데, 장기간이 필요한 DNA 실험의 어려움을 잡스에게 토로하며 강력한 컴퓨터와 시각화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상실험을 구현해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업과 과학의 연계에 영감을 받은 잡스는 조지 루커스로부터 컴퓨터 그래픽스 부문을 인수해서 픽사라고 명명했다. 픽사는 적자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 그의 재산을 축냈는데 기하모델링 분야의 수학자와 전산학자들을 모아서 3D 애니메이션 기법 등 전혀 돈이 안 될 것 같은 연구만 해댔다. 그러더니 위기의 잡스를 구원해냈다.
어린 왕자류의 자신만의 것을 간직하는 것은 이렇게 유용하기도 하다. 잡스가 예술에 재능을 가졌던 것에 비해서 수학에 재능을 가졌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이 가르쳐 주는 대로, 예술과 과학 그리고 자신의 본업이랄 수 있는 컴퓨터가 합쳐지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유지했고 그 부산물로 오늘날 할리우드는 많은 수학자가 일하는 곳이 되었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동아일보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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