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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약속 22] 나만 잘사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월21일 13시39분    조회: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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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약속 22] 나만 잘사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함께 잘사는게 곧 능력입니다


하고싶은 일을 하다보니 성공하였습니다.


선정이유:"꿈을 향한 21년이 즐거움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헤어디자이너 허영숙씨! 그녀는 이미지메이킹시대에 있어서 헤어디자이너의 일은 예술과 기술이 필요한 전문직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혼자 잘사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용돈으로 파마도구를  샀던 남달랐던 초중학생

룡정시동성진영성촌(현재 룡산촌)에서 태여난 허영숙(40주세)씨는 초중때 짝궁한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난 커서 가게사장이 될거야" 라고...그리고 초중때부터 꿈이 생겼습니다. "헤어디자이너"라는... 그때 당시로는 리발사라고 불리웠지요. 헤어디자이너 꿈을 꾸었던 초중학생은 부모님이 주는 용돈을 모아서 파마도구를 삽니다. 파마약, 브레쉬, 전기모자 ..등 그리고서는 동네어른들에게 파마를 해주었습니다. 초중학생이였지만 파마가 잘 나오다보니 외가집에 놀러가서도 동네어른들에게 파마를 해주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그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헤어디자이너로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정작 헤어공부를 시작하자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었던 허영숙씨였으니말입니다. 헤어샵 일도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인지라 어느정도 수완도 있고 넉살도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던것.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영숙씨는 헤어샵에 학도로 들어갑니다. 그때가 21살때였습니다. 당시로는 가장 유명한 실력있는 스승님의 제자로 들어간 허영숙씨!  그때를 이렇게 상기합니다. "연습을 하기 위하여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가발을 가지고 연습하지만 그때는 실제 사람을 모셔와야 연습이 가능했습니다. 아는 사람을 모셔가는 것도 제한되여 있었죠. 모델을 모셔오기 위하여 공사장에 가면 한족남자들의 휘파람소리에 무서워서 도망친것도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남자일군을 모셔왔었고 삼륜차를 모는 아저씨들을 모셔왔었습니다. 21살 처녀가 현장에 가서 남모를 한족남자들한테  다가가 말을 걸고 모델을 모셔왔지만 사실 무서웠었습니다. 그렇게 일년 가까이 악을 쓰고 배웠습니다. 당시 스승님이 한컷에 30원을 받았었는데 하루는 스승님이 제가 깎는 머리도 돈을 받을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면서 7원은 받아도 충분하다고 했었죠. 머리를 배우는 그 시절에 자나깨나 머리생각뿐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깍을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었습니다. " 그렇게 배운후 1994년 연길 북대에 머리방을 오픈합니다. 반대가 심했던 부모님이였으나 그녀의 꿈이 확고하고 강한 의지를 보였기에 선뜻 머리방을 차려주었습니다.

반년여하고 현재의 중관촌부근에 미용샵을 확대하여 오픈을 합니다. 3년정도 미용샵을 꾸리다가 부족함을 느낀 허영숙씨는 한국행을 합니다. 한국행 논현동, ..다시 학도로 된 그녀는 집에서 아침 7시에 나서면 밤 11시반이 되여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습니다.  남들은 돈을 벌때 그녀는 10여만을 팔면서 기술을 배웁니다. 일년동안 열심히 배운덕분에 학원원장선생님까지도 한국에 남아서 강사로 임하라고 할 정도였지만 자신의 사업을 꿈꾸면서 귀국합니다. 돌아와보니 다짐했던 그 미용샵에 재개발에 들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때가 2000년도였고 대우호텔에 미용실 원장으로 3년반쯤 있습니다. 꿈을 꾸면서 일본으로 기술배우려고 준비를 하였지만 일본행은 수포로 되고 별다른 생각없이 상해행을 결정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됩니다.




조선족한테서 사기당한 한국인 사장이 그녀에게 "준오헤어" 브랜드명을 주기까지

상해에 있는 준오헤어샵에 취직을 바로 하게 되였다는 허영숙씨!  상해한국헤어샵 준오헤어에서 보조로 일하는 조선족직원은 많았으나 디자이너는 오직 한국디자이너만 채용하였으나 조선족인 그녀는 최초로 디자이너로 입사합니다. 한국에서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사하였지만  그녀가 받을수 있는 월급은 한국인 디자이너들 월급의 1/5밖에 안되였습니다. 연길에선 5성급대우호텔에서 원장으로 있었으나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상황. 하지만 프로테이지 없이 기본급으로 생활을 할수 없는 정도로 월급이 적었습니다. 기본급외 더 올려줄거라는 기대감에 일을 하였지만 3개월 되여도 월급 인상이 없자 그녀는 사장님과 직접 월급인상을 요구합니다.  그녀가 3개월동안 보여준 실적과 능력만으로 그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준오헤어를 떠납니다. 그후 바로 다른 한국헤어샵에 취직을 하여 3개월 일하고 있을 무렵 준오헤어에서 다시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처음엔 그녀의 요구를 안받아준 고까운 마음에 망설이였지만 사장님과 원장님의 요청으로 다시 준오헤어에 정식으로 입사를 합니다.

그녀가 다시 입사하면서의 첫번때 목표는 한국 디자이너만큼 월급을 받는것이였습니다. 입사후 회사내부에는 실제 조선족 직원들의 무책임한 행동들 때문에 조선족들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안 좋았다고 그때를 회상합니다. 그때가 2003년이였습니다.그녀가 준오헤어에 취직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는 가족처럼 믿던 조선족 관리자한테 크게 사기를 당하면서 조선족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였습니다. 조선족도 책임심 있고 믿고 신뢰할수있는 사람이 있다는걸 보여주고 조선족으로서 조선족이미지가 회복 되도록 뭐라도 증명해 보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습니다. "사실 조선족관리자 사기사건직후 사장님이나 원장님과 눈만 마주쳐도 제가 죄진 사람처럼 불편하고 가시방석에 앉은것처럼 난처하고 죄송스러웠었습니다." 그녀의 당시 심경입니다. 그후로 정말 회사 입장만 생각하고 일을 했습니다. 새벽 한시까지 일을 한적도 있었고 자기가계를 운영해봤던 경험덕분에 다른 직원들 눈에는  안보이는 부분의 일까지 하면서  맡은 분야외의 가계관리와 직원관리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후로 입사 2년후쯤 최초로 조선족관리자로 일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열성껏 일을 하니 사장님도 차츰 인정하기 시작하였던것! "사심가지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니 힘들지도 않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내 가게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면 헤어디자이너일은 고역이고 지겨웠을것입니다. 저는 내꺼 아니라고 생각한적 단한번도 없었고 오히려 월급을 받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을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일하는동안 개인적사유로 청가맞은적 몇번없을 정도로 자기관리도 철저하게 하였죠." 직업에 대한 그녀의 기본마인드입니다. 허영숙헤어디자이너는 입사 1년 7개월만에 하루매출 11200원을 하면서 전체 준오헤어샵에서 일일매출  기록을 세웠고 그후 한달 최고매출액기록도 하게됩니다.  다른가계 직원들이 그녀가 관리자로 있는 가계로 견학을 올 정도로 최선을 다 하여 일을 합니다.

"원장님은 지금도 모르는 사연이지만 그때 홍콩회사에서 준오헤어 월급의 배로 줄테니 오라는 스카웃제의가 들어왔었습니다. 하지만 원장님과 저의 사이는 돈에 흔들릴만한 사이가 아니였기에 단칼에 거절하였습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사장님과 원장님의 배려와 믿음 덕분이였죠. 저의 롤모델인 원장님은 냉철하고 완벽한 분인데 그 원장님 밑에서 저는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현재 경영관리면에서도 원장님한테서 받은 영향이 가장 클정도로 준오헤어에서 크게 성장하였고 많은것을 얻었습니다." 알차고 최선을 다한 상해준오헤어에서의 도전은 그렇게 거의 9년간 이어졌습니다.  남편과 커가는 자식 교육을 홀시할수 없어 귀향합니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를 더는 만류할수 없음을 알았던 사장님은 그에게 이런 뜻밖의 선물을 합니다. "고향에 돌아간다하니 더 말릴수는 없구나 여직껏 일하면서 공헌도 있고 하니 돈으로 보상하긴 그렇고 준오헤어 이름을 내여줄테니 해보거라"라고 하였는데 허영숙헤어디자이너도 생각못했던 부분이였습니다. 북경에서도 몇십만원씩내면서라도 준오헤어 분점을 내겠다했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줄곧 직영으로만 운영되는 준오헤어에서 최초로 조선족헤어디자이너에게 분점을 내주게 되였고 이렇게 되여 연길에도  상해에서 알아주는 유명브랜드헤어샵 준오헤어가 탄생하게 되였습다.

 2011년 6월 30일 鑫田大厦 4층에 준오헤어샵을 오픈합니다. 그녀는 준오헤어샵이라는 이름에 미안하게 않게 철저하게 관리하고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헤어샵을 이끌고 있습니다. 연길에 자리잡은 준오헤어샵도 어연 4년이 되여갑니다. "오래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준오헤어샵으로 연변사람들의 이미지관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것 또한 기대됩니다.

자기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 꿈을 향한 변함없는 노력, 구체적인 목표, 하는일에 대한 철저한 요구, 드높은 책임감 빈틈없는 준비...어느하나 모자라지 않았던 그녀 조선족 헤어디자이너 허영숙씨의 미래는 결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만 나간다면 이미지메이킹시대가 시작된 지금 그녀의 앞날은 기필코 눈부실테니깐요.

"저를 믿고 따르는 저의 헤어샵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잘살고 싶습니다.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자기의 분야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잘 살수 있게 이끌어주고 싶습니다. 혼자 잘사는건 능력이 아닙니다. 함께 잘사는게 비로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 주택문제도 그렇고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는 지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소원이 꼭 이루어질거라 믿으면서 취재를 마쳤습니다. 정신적"영양식"을 푸짐하게 대접받았던 많은 걸 배운 고마운 만남이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소리소문없이 기부에도 앞장서는 따듯한 사회인이라는것을 저는 진작에 알고 있습니다.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3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만 이일을 얼마만큼 즐기고 원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딱히 할일이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혹 부모님의 권유로 이렇게 시작한 사람들은 세월의 인고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진정 즐기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기초부터 확실하게 잘 가르쳐줄수 있습니다.

단비의 속삭임:봄날의 약속 너무 긴 "동면"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다시한번 열심히 뛰겠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알찬 조선족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거창한 사업은 아닐지라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정 잘 영위해나가면서 착실하게 살아가는 조선족의 이야기,  고향떠나 타향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 오래동안 택시운전을 하신분의 이야기, 대리운전에 참여하시는 조선족청년의 사연, 주방에서 오래세월 몸 담궈오신 분의 이야기, 평범한 직장에서 긴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작은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아끼면서 노력하고 분투하여  힘을 모은다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올거라고 믿습니다. 최고의  제빵사도 조선족. 최고의 디자이너도 조선족, 최고의 판매왕도 조선족, 가장 성실한 회사원도 조선족... 작은 분야의 곳곳에서 조선족들이 하루빨리 일떠서길 바랍니다.  열심히 사는 조선족들을 사회에 알리는데 작은 보탬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로 열심히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을 표현하기에는 많이 어설프겠지만 힘이 닿는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아낌없는 조언과 따듯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조글로미디어 김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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