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계약직원 30대 A씨는 부서 회식 자리에서 남자 상사에게 신체 접촉을 당했다. 자신의 허벅지를 만진 것이다. 회식 자리가 깨질까 봐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런 뒤 A씨는 회사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남자 상사에 대해 아무런 인사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인사팀 직원과의 면담이 이뤄졌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업무 시간 외에 일어난 개인적인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계약 연장은 무산됐고, 회사를 나가야 했다.
성희롱 실태, 정부서 첫 조사
비정규직 여성이 가장 많이 당해
피해자 5명 중 4명은 “참고 넘어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5명 중 한 명은 A씨처럼 직장을 떠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9년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매년 한 차례 성희롱 예방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회사까지 나가야 하는 등 2차 피해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결과는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4~12월 전국 공공기관·민간사업체 직원 7844명과 성희롱 관련 업무 담당자 161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내용이다. 정부의 성희롱 실태조사는 3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조사는 공공기관만을 대상으로 표본조사에 그쳤다.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직장에서 한 번이라도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6.4%(500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성희롱 경험자 중 여성의 비율(9.6%)이 남성(1.8%)의 5배였다. 일반 직원(6.9%)과 비정규직(8.4%)의 경험 비율이 관리직·정규직보다 2%포인트 이상 높게 나왔다. 고용 상태에 따라 성희롱 경험에 있어서 차이가 난 것이다.
피해자의 연령은 주로 20대(7.7%)와 30대(7.5%)였고, 가해자는 남자 상사가 가장 많았다.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는 회식 자리였고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 등 언어적 성희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 같은 성희롱을 경험하고도 ‘참고 그냥 넘어간다’고 응답한 피해자가 10명 중 8명가량(78.4%) 됐다. 회사 내 조직이나 외부 기관을 통해 처리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1%도 안 됐다. 성희롱을 참고 넘어간 이유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48.2%, 중복 응답) “인사상 불이익이 걱정돼서”(16.2%) 등의 답변이 나왔다.
DA 300
성희롱이 벌어진 다음 피해자는 가해자 징계를 회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처리 결과는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나타났다. 피해자 5명 중 한 명(20.9%)은 오히려 회사를 관뒀다고 응답했고, 이 가운데 가해자는 멀쩡한데도 피해자만 퇴사했다는 응답도 9.9%나 나왔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성희롱 사건 발생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재직한 경우도 21.7%였다.
각 사업장에서 성희롱 사건 처리를 담당하는 직원은 조직 구조상 하급자인 데다 신분이 비정규직인 경우도 있다. 이는 성희롱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한 대학 내 성희롱 업무 담당자는 “사건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년씩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 계약직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기관 내 상대적으로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성희롱 관련 업무를 맡겨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가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성희롱 방지·사건 처리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보급하고, 공공기관에 재발 방지 대책을 제출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중앙일보] 직장 성희롱 피해 5명 중 1명 회사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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