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의 잠금장치 특성. << 서울=연합뉴스>> "정부 요구 보안체계 `뒷문' 잠글 기술 수단 풍부"
판결 무관하게 결국 애플 승리 전망
애플 "정부도 못 뚫는 보안체계" 홍보 효과 얻어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휴대전화 암호 해제 문제를 둘러싼 미국 사법당국과 애플간 대결은 정부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의한 휴대전화 등의 도감청을 둘러싼 기존 논란과 다른 차원의 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
NSA)은 테러 대책의 일환으로 정보통신업체들의 협조를 받는 외에 휴대전화나 개인용컴퓨터 보안체계의 허점을 뚫고 들어가 광범위한 도감청을 해온 것이 지난 2013년 전직
NS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됐다.
이로 인해 국가안보 필요성과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에 따른 논란이 진행돼 왔지만, 지금까지는 정보기관이 자신들 손으로 '뒷문(
back door)'을 따고 들어간 경우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 연방수사국(
FBI)이 애플에 요구한 것은 '우리는 뚫을 능력이 없으니, 당신들이 당신들 제품에 뒷문을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에게 넘겨달라'는 것이다.
애플이 수용한다면, 자사 고객들에게 해킹으로부터 안전하게 비밀을 지켜줄 수 있도록 보안을 강화했다며 아이폰을 판매해 놓고 제 손으로 그것을 깨뜨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외부에 제공하는 것이 된다.
애플이 이번에 문제된 아이폰 사용자인 테러범에 관한 수사에 대해 전혀 협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 19일자에 따르면, 테러범은 테러를 자행하고 숨지기 약 달포전까진 클라우드에 자료를 백업해놓았었는데, 애플은 이 자료는
FBI에 제출했다.
그러나
FBI는 테러범과 외부 테러조직간 연계 여부 등에 관한 결정적 증거가 문제의 아이폰 단말기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암호 해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미국 정부 당국과 애플이 절충할 수 있는 중간지대는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19일 지적했다.
미국 법무부는 "우리의 요구나 법원의 명령은 애플한테 아이폰 설계를 새로 하라거나 암호체계를 불능화하라거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내용을 공개하라는 게 아니라 문제가 된 그 아이폰 1대에 대해서만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게 양측의 접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날 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 정부 당국의 실제 주문은 문제의 아이폰 암호를 해제하는 기술이 애플의 최신 기종에 도입된, 더 강화된 보안체계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지난 17일 성명에서 미국 정부의 요구를 "위험스러운 선례를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해커나 전체주의적 정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곁쇠(본 열쇠는 아니지만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라는 위험스러운 도구를 만들라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설사 문제의 아이폰 한대에 대해서만 암호를 해제하더라도, 그 이후 "국가안보와 거리가 먼" 일반 범죄 사건에서도 이 선례를 내세워 암호 해제 요구가 이어질 것이고, 중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정부든 애플에 같은 요구를 할 것이라는 게 애플의 반박 논리다.
팀 쿡은 개인정보 보호도 인권의 하나라고 말했었다. 애플은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미 정부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의 가치를 들어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애플의 강력한 저항엔 이러한 '가치' 만큼이나 `사업모델'로서 보안의 중요성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포린 폴리시는 18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애플,
IBM 등에 대해 외국 고객들로부터 미국 서버에 저장된 자신들 자료의 안전성에 관한 문의가 잇따르자 각 업체는 정보보호를 위해 암호체계 강화에 나섰다.
"스노든의 폭로로 모든 미국 기술제품들의 브랜드가 손상"된 상황이었다고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의 제임스 루이스 선임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 가운데 특히 애플의 아이폰이 경쟁자인 구글의 안드로이드폰보다 보안면에선 월등히 앞서게 됐다.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애플 사용자의 91%는 자동으로 암호화되는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데 비해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34%만 암호화가 가능한 안드로이드를 사용하고, 그마저 자동으로 암호화되지는 않는다.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강력한 암호화의 실행을 강제하게 되면 휴대전화 성능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이다.
"애플은 자사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인권운동가들로부터 중국 정부의 사찰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적 '뒷문'을 만들지 말라는 압박을 특히 강하게 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가 지적한 것은 인권 가치와 사업모델 가치가 서로 엮여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당신들 제품의 보안체계를 뚫을 수 없으니 당신들이 협조하라'는 미국 판사의 명령은 "애플로선 소비자 상대 홍보면에서 상당한 승리"라고 포린 폴리시는 해석했다.
애플이 다른 기술정보업체들의 선봉에 서서 대담하게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정부 조달 사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아마존은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클라우드 컴퓨터 운영 계약건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방부와 윈도10 운영체제 계약건 등이 있는 등 정부와 대규모 거래를 해야 하는 업체들은 정부의 신경을 거스리기 어렵다고 뉴욕타임스는 대비시켰다.
미국 정부로서도 이번 싸움은 테러 정보 수집과 관련, 포기할 수 없는 선례를 만드는 기회이다.
수사기관이 압수한 기기에 들어 있는 이른바 `저장 자료(
data at rest)'마저 찾아내서 활용할 수 없다면, 범죄 음모를 탐지하기 위해 실시간 감시가 어려운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한 `움직이는 자료(
data in motion)'에 접근할 수 있는 법원의 허가를 얻기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스노든의 폭로 이후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기술업체들과 겨룬 대민 여론전에서 수세에 몰려 있으면서도 반전 기회를 엿보다가 지난해 12월 샌버너디노 테러 사건으로 테러 공포가 확산되자 "애플을 테러범의 비밀을 숨겨주는 쪽이라고 몰아세울 수 있는 완벽한" 기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대 애플간 대결이 대법원까지 가는 오랜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장기적으론" 정보기술 업체들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예고된 결론"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단언했다.
애플이 이번에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 자체가 "콧대가 더 높아진" 기술산업의 위상을 말해주는데, 애플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선 설사 패소하더라도 "뒷문을 잠글 기술적 수단들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번에
FBI가 요구하는 대로 암호해제 프로그램을 넘겨주게 되면, 다음 아이폰 기종에는 이 프로그램이 작동하려면 사용자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만들기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대 애플의 싸움 결과는 미국 내에서만 획기적 선례가 되는 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 정부와 기술업체, 정보통신 기기 사용자들에게도 중요한 선례를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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