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귀 이어 눈까지 가리려나
지난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가상현실(VR)’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 엘지전자 제공
지난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MWC)’의 최대 화두는 ‘가상현실(
VR)’이었다. 삼성전자가 새 스마트폰 ‘갤럭시S7’을 공개하며 가상현실을 앞세웠고, 엘지전자는 가상현실 장비 ‘360도 브이아르(
VR)’를 선보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갤럭시S7 공개 행사에 깜짝 등장해 가상현실에 힘을 실었다.
스마트폰 성장 한계 다다랐으니
업체들엔 새 시장 필요할 테지만
식빵 만한 안경을 착용하는 순간
아이는 주변과 소통 차단하는 셈
VR기기의 ‘반사회성’ 극복해야
이에 한 외국 언론은 ‘가상현실이 얼떨결에 대중화를 눈앞에 두게 됐다’고 평했다. 때맞춰 가상현실 기기와 콘텐츠 개발업체들의 주가가 폭등했고, 업계에서는 ‘2016년이 가상현실 대중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7 예약 구매자들에게 가상현실 기기를 덤으로 주겠다고 하고, 애플과 소니 등도 가상현실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하니, 무리도 아닌 듯싶다.
이들 ‘공급자’들은 가상현실을 서둘러 띄울 이유가 분명하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에 밀리고, 화웨이 같은 중국업체에 쫓기는 처지가 됐다. 디스플레이 화질과 카메라 성능을 높이고, 디자인을 바꾸는 것 정도로는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기존 개념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도 한계에 다다랐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로 동영상 기반의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시장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진척이 더뎌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앞서 페이스북은 2014년 가상현실 기기 전문 업체인 ‘오큘러스’를 인수했다. 저커버그가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삼성전자와 손잡고 가상현실 대중화를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날, 페이스북은 따로 보도자료를 내어 ‘소셜 가상현실팀’을 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어떻게 하면 가상현실 동영상을 사진이나 스마트폰 영상처럼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팀이다.
또 에스케이텔레콤(
SKT)과 케이티(
KT) 같은 이동통신 사업자들도 5세대(5G) 이동통신 마케팅과 수익성 확대를 위해 가상현실 대중화가 꼭 필요하다.
그럼 이용자들은 어떨까. 지난 설 때 고향 가는 차 안. 모처럼 아이들과 얘기 좀 나눠보고 싶어 말을 걸었는데 대답이 없다. 백미러로 보니 모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열불이 났지만 참을 수밖에. 사실 가상현실이 대중화할 때를 떠올려 보면 이는 약과다. 그동안은 이어폰으로 귀만 막았지만, 가상현실 기기는 식빵 크기의 안경(
HMD)으로 눈과 얼굴까지 가린다.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혼자 낄낄대고 웃으며 손을 휘젓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집이나 차 안에서 이런 모습을 봐야 하는 부모는 말 그대로 복장이 터질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상현실 대중화는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은 최근 열린 ‘언론과 함께하는 넷마블게임즈’ 행사에서 가상현실 기술 적용 시기를 묻는 질문에 “가상현실 안경 크기가 걸림돌이다. 건축과 의료 같은 산업용에는 적용 가능할지 몰라도 게임에는 가상현실 안경이 얇은 선글라스 크기로 줄어들고,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적용하기 어렵다. 30분도 안 돼 고개가 아파 오고 어지러움 증세를 느끼는데 누가 이용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가장 큰 걸림돌인 ‘반사회적’이란 인식을 극복하는 것도 가상현실 앞에 놓인 과제다. 사용자는 가상현실 안경을 쓰는 순간 주위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가상현실에 빠져들수록 ‘사회성이 떨어지는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닌텐도가 1995년 가상현실 그래픽을 앞세운 새 가정용 게임기를 내놨다가 실패했는데, ‘제품의 본질이 반사회적’이라는 게 가장 그럴듯한 이유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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