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활성화 법안 사장시킬때, 일본은 그대로 활용해 치료제 개발]
- 日연구소 가보니 '줄기세포 천국'
시험관엔 심장근육세포 두근두근… 심장·눈·폐 등 이식 줄줄이 성공
- 의학 연구는 시간싸움인데
한국, 황우석 사태 후 규제만 쌓아
일본은 임상시험·치료 고속 허가
117년 전통의 도쿄여자의과대학 캠퍼스에 자리 잡은 '트윈(twin)'연구소. 이곳은 환자 대상 임상 연구가 활발한 도쿄여자의대와 바이오 세포공학 연구에 강한 와세다대가 의기투합해 만든 융합의학원이다. 연구소 지하의 세포 공정실에는 1~2㎜ 두께 심장 근육 세포 덩어리가 시험관에서 '두근~ 두근~' 박동하고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얇은 심장 세포 천(cell sheet)처럼 보인다. 이 세포를 심부전증으로 힘을 잃은 심장에 파스처럼 붙이면 세포가 안으로 스며들어 심장박동을 일으킨다. 죽은 근육을 새 근육으로 되살리는 첨단 줄기세포 재생 의료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총괄하는 시미즈 다쓰야 박사는 "지금까지 말기 심장병 환자 40여 명에게 세포 천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며 "건강보험이 적용돼 이식이 더욱 활성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줄기세포 메카로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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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가 황우석·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주춤한 반면 일본은 2012년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역분화 만능유도 줄기세포(iPS)'로 노벨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줄기세포 치료제 최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고베의 정부 산하 이화학연구소 리켄(Riken)에서는 세계 최초로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안구 망막 되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은 환자에게 줄기세포 망막 세포 천을 이식하는 치료다. 지금까지 두 명의 환자에게 치료가 이뤄졌다. 개발자인 안과 의사 다카하시 마사요 박사는 "큰 부작용 없이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혈액형과 유전형을 가진 10여 명으로 망막 줄기세포 은행을 만들면 일본인 85%에게 보편적으로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막 손상 환자 30여 명에게 각막 재생 세포 이식 치료가 이미 이뤄졌고, 식도암으로 식도가 찢긴 20여 명에게는 식도 점막 세포 이식 치료가 이뤄졌다. 다방면에서 줄기세포 치료제가 개발돼 환자에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 법 가져가 실행에 옮긴 일본
일본 줄기세포 치료가 활성화된 계기는 2014년 11월 의약품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부터다.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임상 시험 초기(1~2상)가 끝나고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사용 승인 허가를 먼저 해주고, 치료 과정을 보면서 부작용 여부를 감시·관리하자는 내용이다. 사용 시기를 1~3년 앞당기고, 개발 비용을 수십억~수백억원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의약품 신속 허가 방식은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가 먼저 입안한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여기에 줄기세포 치료제를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논쟁을 벌이다 이 법안이 사장됐다. 그런데 그 사이 일본 후생성이 한국 법안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2014년 도입했다. 리켄연구소 다카하시 박사는 "한국의 신속 승인 아이디어는 다른 치료 대안이 없고 부작용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적용하기 알맞다"면서 "일본 연구자와 의사들은 다들 한국에서 이 법안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세포 치료제 회사들이 일본으로 속속 집결하고, 후지 등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줄기세포 회사들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2015년 재생 의료를 포함, 생명과학 기초 연구부터 산업화까지를 총괄하는 '일본 의료 연구개발기구'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는 생명과학 R&D가 보건복지부·미래창조과학부 등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질병관리본부 허영주 생명의과학센터장은 "우리나라도 배아줄기세포와 만능유도 줄기세포 은행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연구·개발 활성화 여건이 마련되면 3년 내에 일본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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