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남과 북 모두 '독립유공자'로 표창한 혁명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3월31일 10시09분    조회:34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경찰서를 빠져나와 감쪽같이 사라진 거물급 공산주의자 '이재유'


일제가 만주를 석권한 1934년 4월 13일 밤. 조용하던 서대문경찰서에 한가닥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이어 "이재유가 달아났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당직경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경성과 경기도 경찰부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 시내를 뒤졌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일본 경찰이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이재유가 한달 전 탈출했다가 다시 붙잡혀 2명의 감시인을 붙이고 양손에 자동수갑까지 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유는 경찰서 고등계 형사실에서 고문과 구타를 받으며 조사를 받다 양심적인 일본인 모리다 순사의 묵인 아래 1차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정동 골목길로 달리다 경찰이 보이자 어떤 집의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그러나 하필 그 곳은 미국 영사관이었다.

미국 영사는 이 초라한 행색의 조선인을 도둑으로 단정하고 일본경찰에 넘겨줘 1차 탈출에 실패했다.

그러면 이번에 이재유는 어떻게 탈출했나?

그는 배달되는 우유의 양철 병뚜껑과 짓이긴 밥알을 이용해 수갑 내부의 형을 떠서 열쇠를 만들었다.

이어 개인 사물함에서 외투와 마스크, 지폐를 꺼내놓고 탈출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같은 방에 있던 피의자가 설사 때문에 당직경찰과 함께 화장실에 간 사이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갔다.

택시를 타고 이재유가 찾아간 곳은 동숭동 경성제대 교수 관사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일본인 사회주의자 미야케 교수가 반갑게 맞았다.

이 곳에서 다다미 밑의 나무마루 아래 흙을 파서 토굴을 만들었다.

이재유는 38일 후 미야케 교수가 다른 사건으로 체포될 때까지 이 토굴에 은신했다.

경찰이 미야케 교수 집을 샅샅히 뒤지고 떠나자 이재유는 토굴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농사를 지으며 조직을 재건하다 다시 체포

탈출하기 2년 전에 1차 수형생활을 마친 이재유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상황은 이미 민족주의 진영이 친일로 돌아서고 조선공산당 마저 궤멸되자 사실상 일본에 대한 저항은 끊긴 상태였다.

이재유는 붕괴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로 하고,비타협적 운동가들과 함께 경성시내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 학생운동, 농민조합을 연결해 연쇄파업, 동맹휴학을 지도했다.

일련의 파업을 주시하던 일본 경찰은 배후에 조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대규모 검거와 고문수사 끝에 이재유를 검거한 것이다.

1937년 일제의 어용신문인 <경성일보>호외. 이 신문은 이재유 체포 기사에서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고 보도했다. (사진=사회평론 제공)

 
<조선일보>의 1937년 5월 1일자 호외.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로 두 손을 앞에 모은 인물이 체포된 이재유다. 일본 형사들은 체포 성공을 기념한다고 변장한 복장 그대로 기념촬영을 했다. 당시 서대문경찰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사진=사회평론 제공)

 
이재유는 갓 출옥한 동지 이관술(전 동덕여고 교사)을 만나 서울서 멀지 않은 경기도 양주군 공덕리(지금의 노원구 창동)의 농촌마을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전국 조직에 뿌릴 팜플렛을 만들었다.

이재유는 수시로 서울로 나가 조직 재건에 몰두했다.

이재유의 뒤를 쫒던 일본 경찰은 드디어 성탄절인 1936년 12월 25일 창동역 부근 야산에 이재유가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전 11시, 온갖 복장을 한 형사 60명이 코밑에 수염을 기른 농부 차림의 사내를 덮쳤다.

이재유는 끌려가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며 저항했다.

"놔라~ 이 더러운 쪽발이놈들아! 일본이 영원할 줄 아냐?"

그가 소리지른 것은 자기를 기다리는 이관술에게 빨리 도망가라는 신호였다.

이렇게 해서 이재유는 서대문경찰서에서 탈출한 지 2년 8개월만에 붙잡히고, 6년 후 1944년 10월 26일 해방을 보지 못하고 청주보호교도소에서 병사하였다.

일본이 패망한 뒤 북한 정권은 이재유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남한 정부도 독립운동을 통해 건국에 기여한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재유 계열의 일제하 마지막 저항운동…'경성꼼그룹'

1930년대 독립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들이 자주 접선하던 '황금정' 일대. 현재의 을지로이다. 이재유는 서대문경찰서에서 2차 탈출한 뒤 택시를 타고 이 곳에 내렸다. (사진=사회평론 제공)
이재유가 체포되자 잠적한 이관술은 다시 이재유의 조직 재건에 나섰다.

그는 전국을 돌며 이재유와 연결된 인물들 100여명을 엮어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지도자로는 감옥에 있는 이재유 대신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상징인 박헌영을 영입했다.

이 조직이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한 '경성꼼그룹'이다.

그러나 1941년 몇 차례에 걸친 검거 선풍으로 조직원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와해된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있던 제3차 조선공산당 대표였던 김철수씨의 회고담이다.

"감옥에 자꾸만 박헌영파만 잡혀와. 공산당 재건운동 한다고 잡혀오는거야.우리 파는 이권운동이다 양조장이다, 정미소나 하면서 왜놈들한테 얻어먹고 다니는데…. 그걸 보고 일본놈들이 패망하면 아무래도 박헌영을 내세워야지 그런 생각을 했지."

해방이 되자 이재유 계열이 조선공산당의 주도권을 잡는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미소 주둔,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에서 버림받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살아남았다.

이재유로부터 지도를 받은 이관술의 동덕여고 제자 이효정 할머니는 이렇게 과거를 되돌아봤다.

"일제시대에는 사회주의가 진리였습니다. 사회주의도 많은 일을 했어요. 적어도 독립운동에서는 그랬어요. 나는 젊음을 사회주의 운동에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노컷뉴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하나의 역사관 vs 다양한 역사관' 지난 12일 교육부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 추진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11월 중 집필진을 구성하고 2017년 3월 일선 학교에 국정 교과서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논란은 거세다. ‘균형 잡히고 통일된 역사관에 입각한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lsquo...
  • 2015-10-21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실크로드'는 약 기원전 2세기부터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한 옛 상업무역 노선으로 16세기까지 계속 보류, 사용되면서 동방과 서방의 경제와 정치, 문화...
  • 2015-10-16
  • 추석전날 연변인민방송 애청자협회 30명 애청자대표들은 주덕해동지기념비를 찾아 추모제를 올렸다.  해마다 선조들을 기리는 청명과 추석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찾아가군 한다. 9년째 이렇게 찾아온 로인뢰봉반 맹인반장 김봉숙로인은 주덕해로주장에게 제술을 부어 올리면서 《로주장님 뵈러 찾아왔습...
  • 2015-09-29
  • 취궈홍 주한 중국대사 등 16일 개막식 참석   새까맣게 탄 중국군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일본군(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독립기념관이 16일부터 10월말까지 중국 난징대학살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사진은 불에 타 죽은 중국군 사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일본군. 2015.9.15 난징으로 입성하는 일제(천안=연합뉴...
  • 2015-09-16
  • 1979년에 국무원으로부터 로혁명근거지로 확정된 도문시가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 70돐을 맞이해 “로혁명근거지-도문”기념비를 세운 가운데 기념비 락성식이 2일, 도문시 수원광장에서 있었다. 료해에 따르면 1930년 3월 중공 동만특별지부는 하석광을 파견, 월청 석건평에 도문의 첫 당지부를 ...
  • 2015-09-08
  •  항일전쟁 승리 70주년(9월3일)을 앞두고 발표한 '항일영웅렬사' 명단에 일제시기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전에 참가했던 조선족 항일투사들도 일부 포함됐다.  국무원 비준을 거쳐 지난 25일 발표한 '저명한 항일영웅렬사 600명' 명단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일제와 처절하게 싸왔던 박...
  • 2015-08-27
  • 중국인민항일전생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기 위해 국무원이 당중앙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제2진 국가급 항일전쟁 기념시설, 유적지 100곳 명록과 제2진 유명 항일영웅렬사, 영웅군체 600명 명록을 공포했다. 1931년 9.18사변과 함께 항일 국지전쟁이 서막을 열어서부터 1945년 전면 승리를 거두...
  • 2015-08-26
  • 독립운동가 윤낙세에 대한 고찰 (흑룡강신문=하얼빈) 윤낙세(1877 ~ 1929)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간도와 로씨야를 무대로 반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초에는 권업회, 기독교우회 등 단체를 통해 군자금 모집 및 반일선전활동을 하였고 1910년대말에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신민...
  • 2015-08-17
  • 중국 문인 징메이주가 1941년 한국광복군 기관지에 기고한 '의사행' 1~3편 징메이주, 1941년 한국광복군 기관지에 한인애국단 헌시 기고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의사는 아무 일 없는 듯 폭탄을 가슴에 안고 인파 사이를 헤쳐 나가/…/의사는 손을 들어 폭탄을 투척하네/…/중화의 건아들아 부...
  • 2015-08-10
  • 본사소식 7월 31일, 주심양한국총령사관 대련출장소에서 주최하고 대련시한국인(상)회, (한)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대련지회에서 협찬한 "안중근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방안 모색" 세미나가 중한 량국의 교수, 대련 소재 부분 기업인들과 대련국제학교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련부려화호텔에서 진행됐다.   ...
  • 2015-08-06
  • 동북항일련군 박물관 기본 전시로 “항전 14년-동북항일련군 력사진렬”이 다년간의 준비단계를 거쳐 8월 1일 공식 개방되였다. 전시는 9.18사변 폭발로부터 구쏘련 홍군의 동북 진입기간까지 동북항일련군 전사들이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침략군과 생사박투를 벌이고 민족 울타리를 지켜낸 력사적 증거물들이다...
  • 2015-08-03
  •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중국 이민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올해 안에 완간된다. 명말청초인 17세기 초 중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조선족은 1952년 연변자치주 설립까지 400년에 걸쳐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역사를 갖고 있다. 항일무장독립투쟁과 국공내전 과정에서는...
  • 2015-07-21
  •            조선족 항일로전사 리민 '푸틴훈장' 수여받아       "중러인민이 희생으로 바꾼 승리 후대들은 잊지말아야"   (흑룡강신문=하얼빈) "2013년 12월 21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명령에 따라 '1941년-1945년 위대한 위국전쟁...
  • 2015-06-10
  • 만세묘지에 묻혀있는 백년의 함성 연변의 항일운동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 이야기는 한 시골노인의 어릴 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7,8살 때 소를 몰고 산을 오르내리던 소년은 늘 비탈의 무명의 무덤을 지났다. 아니, 이 무덤은 주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실은 무명의 무덤이 아니었다. 방창화...
  • 2015-06-01
  •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연변지역 리사확대회의 연변대학서   더 많은 이들이 우리 조선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고 조선족의 력사를 발굴, 선양하기 위해 중국조선민족사학회(회장 정신철)에서는 5월 22일, 연변대학에서 리사확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 민족 력사연구분야의 관계자 십여명이 참...
  • 2015-05-22
  • [원제목]'애족장' 수훈자 윤낙세 후손, '2015 호국영령 위패봉안식'에 참가 항일 독립유공자 중국에서의 활동 재조명 계기 마련   ▲ 독립유공자 수훈 애족장 윤낙세 후손인 윤운걸(흑룡강신문 길림성 특파원)씨와 그의 부인 박진숙씨 [서울=동북아신문]'2015년 제2회 한국 호국영령 합동 위패봉안...
  • 2015-05-21
  • [항일전쟁은 몇년인가?]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   원상대로 보존되여 있는 노구교  옛 다리바닥부분 기실 노구교(盧溝橋)의 이 이야기는 황당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노구교의 저쪽에서 일본군이 훈련을 마치고 귀영하던 도중 병사 한명이 뒤를 보러 가면서 그만 낙오를 했다. 나중에 일본군은 이 병사...
  • 2015-04-09
  • 료녕신문소식: 항일의사 안중근 순국 105주년 도편순회전시회가 3월 31일 신빈만족자치현 조선족중학교에서 열렸다. 료녕성 동북항일련군 항일전쟁사연구회, 료녕동북아 경제문화추진회, 심양시9.18력사박물관, 한중교류문화원, 심양시조선족 제1중학교, 료녕대학 동북아연구중심에서 주최하고 료녕성 조선족로인촬영가협회...
  • 2015-04-02
  • 《3.13》반일집회 유적지에서 열심히 필기하고있는 룡정중학교 학생들. 3월 14일 오전, 룡정《3.13》기념사업회는 《3.13》반일운동 96주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룡정시조선족녀성민족무용협회 회원 30여명과 룡정중학교 사생 30명이 참가한 《3.13》반일시위 유적지와 로정 답사활동을 조직하였다....
  • 2015-03-16
  •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회장에 따르면 룡정시에서는 《3.13반일운동》 96주년을 맞으며 추모제, 기념좌담회, 《3.13》반일운동유적지답사 등 기념계렬활동을 조직하게 된다. 3월 13일 오전 10시부터 룡정시 《3.13》반일의사릉에서 진행되는 추모제 행사에는 룡정시 당위와 정부, 심양한국총령사관, 룡정《3.13》기...
  • 2015-03-11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