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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전쟁은 몇년인가]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4월9일 08시34분    조회: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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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전쟁은 몇년인가?]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

 

원상대로 보존되여 있는 노구교  옛 다리바닥부분

기실 노구교(盧溝橋)의 이 이야기는 황당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노구교의 저쪽에서 일본군이 훈련을 마치고 귀영하던 도중 병사 한명이 뒤를 보러 가면서 그만 낙오를 했다. 나중에 일본군은 이 병사를 찾는 소동을 벌이며, 사건은 급기야 중국과 일본 두 나라 군대의 교전으로 치닫는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변’은 그렇게 중국 전면적인 항일전쟁의 꼭지를 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똥을 잘(잘못) 누면 역사를 만든다.”는 말귀가 저절로 떠오른다.

정말이지 사관이 기록한 정사(正史)가 아니라 민간의 여담을 기록한 야사(野史)처럼 들리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진감한 8년 항전의 총소리가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울렸다고 하니 어딘가 수긍하기 어렵다.

“자네는 소설을 만들어서 엉터리 설명을 하는 게 아닌가?” 답사에 따라나섰던 친구는 종내 미덥지 않다는 기색을 짓고 있었다.

하긴 예전에 교과서에서 읽지 못했던 ‘엉터리’의 내용이다. 일본군 병사의 실종사건이 실은 웃지도 울지 못할 그런 일에서 기인되었다고 하니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미리 각본을 맞춘 그럴 듯한 이야기여야 할까…

노구교는 북경시 도심에서 서남쪽으로 약 20㎞ 상거,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설계하고 금나라 대정(大定) 29년(1189) 시공을 했으며 명나라 정통(正統) 9년(1444) 중수(重修)했다. 북경시의 현존하는 제일 오랜 석조 아치형 다리이다. 이 다리는 길이가 267m이며 아치형 다리구멍이 11개로 양쪽 난간에는 망주(望柱)가 각기 140개나 된다. 그러나 이런 일목요연한 수치와는 달리 망주 위에 조각된 돌사자는 도대체 몇 개가 되는지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노구교의 돌사자’라는 말은 민간에서 헤아리기 힘들다는 뜻으로 통한다네.”

이걸 어쩌지, 이번에도 친구는 못내 믿기 어렵다는 기색을 지었다. 그는 재미 삼아 망주 몇 개의 돌사자를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반금 세고 지난 돌사자에서 누군가 또 용케도 숨은 ‘돌사자’를 한 마리 찾아냈다.

 노구교 망주의 돌사자

어미 돌사자에게는 새끼 돌사자가 여러 마리나 매달려 있었다. 등에 한 마리가 업혀있었고 발밑에 한 마리 재롱을 부리고 있었으며 또 두 마리가 품을 파들고 있었다. 친구는 겨드랑에 숨어서 머리 반쪽만 내민 새끼 돌사자를 미처 셈에 넣지 못했던 것이다.

1962년, 해당 부문의 요원은 사자마다 번호를 달면서 전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크고 작은 돌사자가 485마리라는 것을 밝혀냈다. 돌사자의 숫자는 이로써 미스터리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1979년 재조사에서 또 17마리가 발견되며 돌사자는 502마리로 된다. 현재 노구교 문물보호부문이 제공한 수치에 따르면 노구교의 돌사자는 도합 501마리이지만, 실제로 누구도 이 숫자에 마침부호를 찍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노구교의 이름 역시 서로 다른 각본이 존재한다. 항간에서는 갈대 골짜기의 다리라는 의미의 노구교(蘆溝橋)라고 부른다. 옛날 이 지역에 갈대가 무성하다고 해서 로구하(蘆溝河)라고 강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다리 이름은 이 강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의 이름으로 다리 이름을 만든 게 아니라고 하는 설이 있다. 민간에 구전되는 전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예전에 이곳에는 다리가 없었고 나루터가 있을 뿐이었다. 노(盧)씨 성의 사람이 부근에서 가게를 꾸렸는데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해 가을, 노씨는 그동안 모은 은자를 소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배로 그를 싣고 강을 건너던 전(田)씨 성의 뱃사공은 은자를 보자 갑자기 흑심이 생겼다. 전씨는 로씨를 영정하에 밀어뜨려 죽이고 그의 은자를 가로챘다. 이듬해 전씨는 아들을 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성장한 후 날마다 전씨더러 그의 뺨을 치게 했으며, 뺨을 치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전씨는 부근 사찰의 늙은 스님을 찾아가서 그 영문을 물었다. 스님은 전씨에게 이 아들은 로씨가 전세(傳世)한 것으로 그를 살해한 전씨에게 복수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스님은 전씨가 이 업보에서 벗어나려면 겁탈한 은자를 모두 보시하여 다리를 만들고 길손의 도하 위험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전씨는 기술자들을 불러 강에 다리를 놓은 후 또 스님에게 다리 이름을 뭐라고 달아야 할지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로씨의 빚을 갚는 다리이니 로씨 성을 달아야 한다고 하면서 로구교라고 작명해줬다는 것이다.

노구교 동쪽의 완평성 


기왕 강 이름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노구하는 청나라 때부터 수로가 영원히 안정하라는 의미에서 영정하(永定河)라고 불리고 있다. 상류 지역은 또 옛날부터 뽕나무 상(桑), 마를 간(干) 자를 넣은 상간하로 불리고 있다. 이 이름은 특정시기의 강의 수위를 기슭에 자라는 뽕나무에 연계시키고 있다. 실제로 해마다 뽕나무의 열매가 익는 4월이면 강바닥이 말라서 붕어 잔등처럼 허옇게 드러난다고 한다.

“소설 ‘태양이 상간하를 비춘다(太陽照在桑干河上)’를 알지 않는가? 소설의 배경이 바로 이 강의 유역이라네.”

장편소설 “태양이 상간하를 비춘다”는 중국의 유명한 작가 정령(丁玲)의 작품으로, 1946년 화북에서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진 농민과 농촌 투쟁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은 훗날 소련 스탈린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고 보면 이 강은 원래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 틀림없구먼.”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의 그림--동북지역은 아직 공백으로 되어 있다.

일행은 오랜만에 한 물곬으로 화제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로구하라고 하든 아니면 영정하라고 하든 그리고 상간하라고 하든 정말로 이야기가 많은 강이었다.

계절적으로 마르는 상간하는 산과 들을 지나는 천연적인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5천년 전에는 중국 대륙에서 유일한 인간 대통로였다. 이 시기의 인간은 아직 길을 닦을 능력이 없었으며 다만 천연 통로를 이용하여 이동했기 때문이다.

상고시대 황제와 치우가 전쟁을 벌였던 탁록(涿鹿)은 바로 이 통로 부근에 위치한다. 황하 상류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던 황제는 이 옛 통로를 진공로로 이용하여 북방의 연산(燕山) 기슭까지 거침없이 진군하여 치우와 마지막 대결을 벌였던 것이다.

상간하에 얽힌 천년의 이야기가 현세의 중일 양국의 대전으로 윤회를 했을까… 아무튼 영정하는 이름과는 달리 영원히 안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전면항전은 영정하에서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중국과 일본은 완전히 전쟁상태에 처했지만 당시의 국민정부는 ‘자위항전 성명서’를 발표했을 따름이다. 일각에는 중국에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해상 운수로가 일본에 의해 두절될까 우려했고 또 화교 철수와 보호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설이 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서도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앞에 세운 높이 14미터의 게양대에 국기가 나붓기고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때에야 국민정부도 정식으로 ‘중국정부의 대일 선전포고 문서’를 발표하고 “정식으로 일본에 전쟁을 선고”한다.

사실상 항일전쟁은 이미 1931년 동북 땅에서 불길을 지피고 있었다. 1931년 9월 18일 밤, 일본 관동군의 배치하에 철도 ‘수비대’가 심양 유조호(柳條湖) 부근의 일본이 부설한 남만철도 철길을 폭파한다. 관동군은 이 사건을 중국 군대가 조작했다고 무함하고 북대영(北大營)의 중국군을 무장 진공하며 이어 동북 전역을 대규모로 침략한다.

중국 전 지역을 강점하기 위한 전주곡은 이렇게 철길에서 기적을 울리고 있었다.

훗날 일본군 병사의 실종이 아니더라도 ‘노구교 사변’의 빌미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전쟁은 북경의 다리가 아니라 심양의 철길에서 시작되었구만.” 친구가 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실제로 지금까지 8년 항전을 중국 항일전쟁의 대명사로 착각한 사람은 그 뿐만 아니다. ‘8년 항전’은 1937년 노구교에서 일어난 ‘7.7사변’으로부터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을 선포하기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로서 전면 항전을 지칭한다. 중국의 항전은 실은 1931년 ‘9.18’ 사변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 옹근 14년 동안 진행되었다.

노구교에서 내린 일행은 동쪽의 완평성(宛平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완평성은 명나라 때 둔변(屯兵)을 위해 설립한 작은 위성(衛城)이다. 완평성에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노구교만 보고 기념관에 들리지 않으면 항전 유적을 보러 왔다고 말할 수 없네.”

중국인민의 14년 항전은 최근 국가적인 공감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기념관 광장에는 높이 14m의 국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는데, 바로 중국인민의 14년 항전의 여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중축선 양쪽에 각기 펼쳐진 7개의 잔디밭은 ‘7.7사변’ 즉 전 민족의 항전이 일어난 곳에 이뤄진 녹색의 평화와 14년의 항전이 이룩한 평화의 성과를 의미하고 있다.
“잊지 말게, 그때 노구교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부대에 우리 겨레가 있었거든.”
“…”
이것 보지, 친구는 또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서 못 미덥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노구교에서 최초로 일본군과 접전했던 부대는 당시 북경과 천진 지역을 수비하던 국민군 제29군단이다. 항일전쟁 시기 중국 대륙에서 널리 불리던 노래 “대도진행곡(大刀進行曲)”의 부제는 바로 “제29군단 대도대(大刀隊)에 드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데 의하면 이 군단에는 조선인 장교가 2명 있었다. 김자열(金子烈, 1897~1961)이라고 하는 조선인이 소속 180사단에서 소장급 참모로 있었으며 강석훈(姜錫勛, 1896~?)이라고 하는 다른 조선인은 소속 113여단의 상교급의 부관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놀라운 사실은 북경에 살던 김자열 아들의 기술에 의해 밝혀졌다.

“중국 항일전쟁의 첫 총소리를 울린 조선인 장교”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노구교의 채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는 돌사자만 아닌 것이다.*

사진/글 김호림기자
출처: <<중국민족>> 2호,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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