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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혈투의 전적지 미 연방 북마리아나군도 사이판으로 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25일 05시52분    조회: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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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지난 5월22일 기자는 관광코스차로 미·일 혈투의 전적지였던 미 연방 북마리아나군도 사이판 제2차세계대전시기의 일본군최후사령부와 자살바위를 관광했다.

  현지에 가보니 일본군이 저항하다 남은 포,전차 등 무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지만 그대로 노천에 보존되어 있었고 또 일본군최후사령부 잔해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한눈으로 미국군과 일본군이 치열한 혈투를 벌였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일본군최후사령부는 미국군의 포격으로 탈화했으며 미국군이 점령한 후 지휘부로 사용했단다.

 

  자살바위는 일본군이 사이판에서 패망하면서 일본군 지어는 일본민간인들도 바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기에 오늘날 자살바위란 명칭을 달게 되었다.그래서 오늘날 이 곳은 사이판 관광의 주요 코스로 되고 있었다.

  기자는 한 현지 여성 조선족사업가의 주선으로 미국 사이판군사박물관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박물관에서 약 20분가량 사이판에서의 미일전쟁영상실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영상실화는 영어,중국어,한국어로 제작되어 있었다.특히 이 영상실화에는 가열처절했던 미·일전쟁장면들이 그대로 실화로 재현되었는가 하면 특히 일본민간여성이 일본군이 사이판에서 패망하게 되자 아이를 안고 그대로 바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영상이 고스란이 담겨졌다.

  관람이 끝난 후 문자화로 된 자료가 있는가 문의하니 없다고 해서 영상물자료도 별도로 구입할 수 없어 그저 귀로들은 내용과 관련자료들을 수집해 미·일 사이판 전쟁을 간략해 소개한다.

 

   왜 일본이 사이판을 점령하게 되었는가?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괌 다음으로 큰 섬인 사이판은 16세기에 스페인이 발견한 이후 식민통치를 하다가 1899년에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독일에게 매도하였고 1차대전 이후에는 일본이 위임 통치령을 차지하게 된다.

  일본이 위임 통치령을 갖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제1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연합국 측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일 조차지(租借地)였던 중국의 청도를 점령하고 지중해에 초계 함대를 파견했다. 독일이 패전하자 승전국 일본은 국제 연맹의 승인으로 사이판의 위임 통치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차모로족 원주민이 살고 있는 사이판에서 일본은 사탕수수 재배와 수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일본인들의 이주를 장려했다.

  사이판이 일본 통치령이 된 후 (현재 사이판에 약 2만명 거주)약 2만5천 명의 일본인이 사이판으로 이주했다. 대부분 일본 오키나와나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 하여 사이판에 온 일본인들은 현지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수산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기자가 현지를 둘러보니 사이판은 사탕수수재배에 아주 적격인 지역이고 또 태평양에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는 수산자원이 아주 풍부하다.현지인들의 소개에 따르면 현재 사이판 태평양의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어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일단 어느 누가 바다에서 고기 한마리라도 잡으면 벌금은 물론 관광객은 금방 축출되고 다시는 사이판관광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기자가 태평양에서 노니면서 물밑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칼치,돔 등 해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노닐고 있어 참으로 자연보호가 잘 되었다는 깊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사이판은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또 야자 등 각종 열매들이 대량 생산되는 지역이다.

 

  왜 미국이 사이판을 진공하게 되었는가?

  북마리아나해전이 시작된 것은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한데 그 주요원인이 있다.진주만 공섭은 세계2차대전때 일본은 미국에 선전포고없이 1941년12월7일 미,태평양함대를 무력화 시키기위해 하와이주 오아후섬 진주만에 정박해 있는 함대와 비행장 항공기를 기습공격한 사건이다. 12월8일 미국의회는 일본에 선전포고 하였다.

  이렇게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자 제2차세계대전인 미미·일 혈투의 전적지 미 연방 북마리아나군도 사이판으로 가다 일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1차대전때 태평양일대를 점령한 제도섬들의 반격에 나섰다. 1944년 6월 북마리아나제도 해역에서 미국함대와 일본함대간 해전이 일어나면서 전쟁은 백일화 되었다.

  또 북마리아나제도에서 제일 큰섬인 사이판간 전투는 미일간 치열한 전투로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최초로 전원옥쇄를 감행해 사이판에서 살던 일본인까지도 대부분 자살하였다. 한편 해전에서 일본군 3척의 항공모함이 격침 됨으로서 일본의 연합함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1944년7월9일부터 미국이 완전 점령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티니안,로타,괌은 미점령하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떨군 폭격기가 바로 북마리아나 군도인 티니안 비행장에서 이륙했다는 점이다. 1차대전후 일본이 만들어 놓은 비행장이 티니안에 있었던 것이다.미국이 티니안도를 점령한 후 미B-29폭격기로 일본 본토를 폭격할 기지로 바뀌었던 것이다.티니안은 관광지로 유명한 사이판에서 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사이판군사박물관 영상자료에서 보면 당시 미군은 사이판에서 일본군의 엄청난 저항을 받았는데 특히 일본 민간인들도 투항을 거부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생겼던 것이다.이렇게 철저한 반항에 당시 미국으로서는 최후의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같다.즉 원자탄 사용이다.

 

  제2차대전 중 1944년5월에 독일은 항복하였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세계대전을 빨리 끝내기위해 일본에 전쟁 항복조항을 요구하였다.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자 사흘만에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 하라고 미육군 항공사령부에 지시하였다.하여 미 B-29폭격기는 티니안 비행장에서 원자탄을 싣고 일본 본토로 날아가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떨굼으로서 일본이 즉각 투항했던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일본군은 산지와 동굴에 숨어서 끝까지 항전해보려고 했으나 이미 구시대적 해안방어전술때문에 식량과 장비와 탄약을 해안선에 분산배치한 실수를 범했으므로 이들 물자들이 개전 초기에 미군의 손안에 떨어지자 장기적인 저항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먹고 살 수단도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사이판섬은 과달카날이나 부겐빌같은 큰 섬이 아니므로 미군의 입장에서는 비행장 주변에 교두보를 만들고 방어하는 전략보다는 차라리 섬 전체를 토벌하는 것이 방어면에서나 비용면에서나 우월하기 때문에 섬을 완전점령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인 자살로 천황페하에 충성

  1944년7월 5일, 함대를 잃고 사이판에 숨어있던 나구모 주이치 중장이 자살했다. 그 뒤를 이어 사이판 방어 책임자였던 사이토도 자살했고 이날 새벽 4,000명이 넘는 모든 잔존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최대 규모의 반자이 어택을 감행하고 전멸함으로써 사실상 일본군의 저항은 끝장났다. 일부 병사들은 더 이상 투항할 곳이 없자 그대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고 이 절벽은 현재 '자살바위'이란 명칭이 붙었다.

  미 사이판군사방물관 영상자료에 따르면 당시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천황페하 만세”를 연속 부르짓으며 유언을 남겼는데 이제 남아있는 일본인들은 절때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미군과 싸워 천황에게 충성하라고 했다.

  일본군은 여자와 아이들이 포함된 민간인들을 방패막이로 삼아서 야습을 감행했다. 민간인들이 항복하러 오는 줄 알았던 미 해병대 4사단 25연대는 그 뒤에 일본군이 숨어서 따라오는 것을 보고 포격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군은 격퇴당했다.

  이후에도 민간인들의 운명은 끔찍했다. 영상실화에 따르면 평소 일본군으로부터 미군은 악마라는 세뇌를 받아왔던 그들은 미군에게 투항하지 않고 잇따라 자살해 버린 것이다. 미군은 이들에게 계속 투항을 권고하는 한편 좋은 대우를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이미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였다.

 

  전투가 사실상 끝난 9일 사이판의 북쪽 절벽에선 5천여명의 민간인이 미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천황페하만세'를 외치며 모두 바닷속으로 투신자살했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기록영상물에 자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특히 일본민간여인이 아이를 안고 자살하는 장면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 때까지 일본군이 민간인까지 현지에서 강제징집해서 싸우거나 일본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일본군과 같이 싸운 전례는 있었어도 일본군이 자국 민간인들에게 자살을 강요하거나 살해하는 사태가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사이판 전투가 최초란다.

  자료에 따르면 바로 이런 참상을 불러온 원인이 밝혀졌다. 일본 제국의 덴노인 히로히토가 1944년 6월 30일에 칙명을 내려 사이판의 민간인에게 자살을 권유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이판에 거주하는 일본 민간인이 잡혀서 미국의 선전방송에라도 나가게 되면 일본의 사기가 떨어지고 미국의 사기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자살한 민간인에게는 전사자로 간주해서 명예와 예우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는 부언도 했단다.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자 속술

  사이판 전투에서 미군은 7만명의 병력 중 전사 3천여명, 부상 만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일본군은 3만 1천명의 병력 중 포로로 잡힌 천여 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했다.

 

  여기에 민간인 사망자도 2만명이 넘었다. 대부분의 민간인 사망자는 자살자, 또는 강요에 의해 죽은 자들이다.

  취재후기

  전쟁은 무시무시하다.오늘날 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군도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사이판은 북마리아나군도 수부이다.오늘날 전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사이판을 다녀오면서 이 지역은 관광수입으로 부를 낳고 있다.

  일본은 철저하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략역사를 이리저리 회피하고 있다.오늘날 일본은 사이판 자살바위에 유령비를 세우고 많은 일본인들이 여기에 와서 참배한단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참배하는지는 그들 자신만이 알 뿐이다.

  하여 오늘날 전쟁구름이 또 전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오직 전쟁을 막아야만 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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