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민족 자결’의 평화 사상을 주창한 안중근 의사를 중국에 알리는 데 앞장서온 조선족 재야학자 서명훈 옹이 별세했다. 올해 86세인 서 옹이 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함께 힘을 써온 김월배 다롄(大連)외국어대 교수가 이날 문화일보에 전해왔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하얼빈역 플랫폼 한쪽에 표시된 둥그런 원 두 개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장소를 알리는 표시이다. 하얼빈시에서 이 표지를 만들 때 고증을 통해 정확한 저격 위치를 알려주고 안 의사를 중국에 알리는 데 앞장서온 사람이 바로 서 옹이다. 그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놓고 1m, 5m, 다섯 걸음, 열 걸음 등 다양한 주장이 엇갈렸다. 나는 법정 진술 등의 기록과 당시 기차역의 구조를 자세히 파악해 정확히 5m 떨어진 저격 위치를 밝혀냈다. 화살표 표시와 안내판도 하얼빈시에 꾸준히 요청한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회고했었다.
그가 안 의사 관련 논문을 학술지 등에 기고한 것만도 수십 편이다.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한국, 일본, 대만의 자료까지도 뒤졌다.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이 만들어질 때 “그동안 꾸준히 중국 사회에 안 의사의 공적을 알려왔던 노력이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지린(吉林)성 옌지(延吉)현 출신인 서 옹은 1954년 베이징(北京)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후 헤이룽장성 공무원으로 40여 년간 재직하고 1993년에 정년퇴직했다. 하얼빈시 민족종교사무국 국장으로 있던 1990년에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보는 하얼빈 문서자료에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격살’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중국사회에 안 의사의 존재를 알렸다.
1992년 중국 청소년 권장도서에 안중근 의사를 소개한 그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에서의 열하루’ ‘중국인 마음속의 안중근’ ‘중국에서의 안중근 연구논문 집성’ ‘안중근 의사 지식 문답’ 등을 중국어로 저술해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이 지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 옹은 “내가 모은 방대한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안 의사를 더 연구하고 널리 알릴 후배가 하루빨리 나오길 기대한다”고 늘 말해왔다.
발인은 7일, 유족은 부인 이영희 여사와 1남1녀가 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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