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어느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삶 - 홍범도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2일 08시01분    조회:13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직 세월만이 그의 오랜 동지로”

평양에서 크질오르다까지
<만인보>에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시가 같은 제목으로 등장한다.
 
외금강 신계사
사미승 등명(燈明)
 
나뭇짐 벌떡 일어서면
저 비로봉 영랑봉 들도 눈을 껌벅여온다
 
어제의 고아
내일의 혁명가 홍범도의 법명 등명
신계사 앞
신계천 물소리 잠들었다
 
저 청산리
저 씨베리아
저 대륙 아득한 황무지 타슈켄트의 아비였다
< … >
(‘사미승 등명’, 18권)
 
의병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그의 생애는 또 다른 ‘사미승 등명’에서 보다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평안도 후창 후창강 강물소리 힘차다
바람소리 힘차다
아기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는 숨졌다
암죽 먹었다
여덟살에 아버지 숨졌다
열살에 머슴이 되었다
열다섯살에
열일곱살이라 나이 올려
평양 군대에 들어갔다
 
머슴 때는 통소를 불었으나
군대에서는 나팔수였다
총을 잘 쏘았다
명중
또 명중이었다
 
부패상관 두들겨패고 뛰었다
탈영
삯전 삼킨 공장주인 죽이고 뛰었다
쫓기는 살인범
떠돌다
묘향산 보현사 불목하니가 되었다
 
한 뜻있는 비구의 소개로
금강산 신계사로 갔다
지담대사 제자가 되어
법명 등명(燈明)
세상의 등불 되라 했다
 
새 속명도
범도라 받았다
큰뜻을 도모하라 했다
 
신계사 암자 사미니와
눈맞았다
그녀 옥녀와
물 떠놓고
부부가 되어 떠났다
 
큰 운명이 시작되었다
< … >
 
(‘사미승 등명’, 16권)
 
일찍 고아가 되어 머슴, 나팔수, 제지공 등을 거치며 불의한 상관과 공장주인을 두고 보지 못했던 그가, 한때 사미승 등명이 되어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지담 대사를 시봉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 그는 광산 노동자로도 잠시 일했으나 출중한 사격술 덕분에 오랫동안 산포수 생활을 하게 된다. 1907년 함경도 갑산의 산포수들을 중심으로 의병대를 조직해 항일투쟁에 들어선 이후, 전투마다 승승장구해 일본군이 ‘나는(飛) 장군(將軍)’이라 불렀다는 이 전설적인 의병장은, 일본군에 볼모로 잡혀 당당히 맞서던 아내가 고문으로 옥사하고 그 얼마 후 장남마저 전사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무장투쟁을 지속해 1920년 그 유명한 봉오동전투의 역사를 쓰게 된다.
 
참고로, 봉오동전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는데, 당시 북로독군부 참모장을 맡고 있던 최운산 장군(1885~1945)이다. 중국 옌지(연길·延吉)에서 태어난 그는 1910년 형 최진동, 동생 최치흥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간도 지역의 황무지였던 봉오동을 동포들과 함께 개간하고 '신한촌'(新韓村)을 건설했다. 또한 봉오동사관학교를 설립해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했는데, 그는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위해 사용함으로써―투쟁기지 건설, 독립군의 식량과 군복, 무기 공급 등―무장부대인 군무도독부, 북로독군부, 북로군정서가 창설될 때에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독립군들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운산 형제들의 군무도독부를 통합해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라는 독립군 연합부대를 조직했는데, 봉오동전투의 성공에는 이렇게 철저한 준비가 있었던 셈이다.
 
봉오동전투(1920년 6월6~7일)에 이어 몇 달 뒤 청산리전투(1920년 10월21~26일)에서도 김좌진·최진동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격파한 홍범도부대는 일본의 간도대학살(경신참변)로 인해 많은 독립군들처럼 시베리아로 이동해갔고, 1921년 6월27일 러시아령 아무르 주 스바보드늬(‘자유로운’이라는 뜻의 시 이름, 구 알렉세예프스크)에서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된다. 적군과 백군이 내전 중이던 소련에서 적군―백군은 일본과 연계되어 있었으므로―을 돕고 단합된 힘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하기 위해 자유시에 총집결한 독립군 부대들은, 군통수권 장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사이의 갈등에 코민테른과 소련 적군이 개입함으로써 참변을 맞게 된다. 대한독립군단의 소수파인 이르쿠츠크파의 편을 든 소련의 적군은 자유시에 집결한 대한독립군단의 부대들 중 투항하지 않은 독립군들을 대량사살하고 생존자들을 포로로 잡아 수용소에 보내는데, 이는 조선독립군 세력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시 참변이 더욱 비통한 이유는, 이 비극이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 내부의 갈등,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와 극동공화국정부의 정책 등이 얽혀 독립군이 사살되고 조직이 파괴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홍범도군대는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 적군에 편입되었고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다(앞서 소개한 첫 번째 시에 “타슈켄트의 아비”라는 표현이 있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시에서 언급한 새 속명은 範道). 평양에서 태어나 만주로, 시베리아로, 온몸과 마음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전설의 용장(勇將)은 카자흐스탄의 황무지에서 움막생활을 하다가 1938년 크질오르다(현 키질로르다)로 이주해 고려인극장의 수위로, 광복을 2년 앞두고 마지막 삶을 마감한다. 여천 스스로 원해서 고려인극장의 수위로 근무하였다고 하니, 노녀의 나이에도 마지막까지 동포들 옆에서 그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한편, 1943년 10월 25일 그가 눈을 감기 전 벗들을 불러 돼지를 잡아 대접했다고 하니, 이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을지언정, 쓸쓸하게만 끝났다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동상.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지역에 있는 이 묘역은 95년에 설립된 ‘홍범도 펀드’가 관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림동 판자촌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처럼 이름 알려진 독립군 대장이 아니라 그 대장을 따라, 또한 온몸과 온 마음을 던져 싸웠던 수많은 독립군 병사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을 대표하여 여기 고은 시인이 소개하는 한 인물, “진짜 애국자”가 있다.
 
나이 90세로 살아 있었다
만주벌판 독립군 전사 이우석
< … >
관악산 밑 어느 구석방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한번도 빛나는 영예 받아 본 적 없다
 
열여섯살로 독립군 전사가 되어
북로군정서 서일 휘하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북간도 여기저기 무기수송 임무를 맡았다
 
전우끼리 서로 바지저고리 나눠입고
사흘 굶어도
밀전병 한 조각도 나눠먹고
청산리 1백여리 긴 골짜기
어랑촌 백운평에서
일본군 나남 14사단 신예병력과 맞서
그는 백병전 전사였다
 
체코총 들고 싸우다가 살아나
전우들 다 죽어갔는데
그는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굵직굵직 주름살 패어나
오직 세월만이 그의 오랜 동지로
서울의 한 빈민굴 구석방
호호 추위에 곱은 손 비비며 살아 있었다
 
이것이 진짜 애국자이고 독립운동가였다
싸운 것 몇천배로 받아먹지 않는
(‘이우석’, 13권)
 
시에서 언급하듯이, 이우석(1896~1994) 선생은 서일(1881~1921) 장군의 북로군정서에서 소속되어 무기 수송 임무를 수행했고, 4중대 4소대 4분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으로 인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그는, 이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만주로 돌아가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농사를 지으며 해방을 맞게 된다. 1947년 남한으로 귀국한 그는 생계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연명해야 했으나,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한일협정을 지켜봐야 했다는 점일 것이다. 18년 후 그에게 주어진 보상은 오만천원의 연금으로, 신림동 난곡 철거민촌에서 노부부는 남편의 막노동과 아내의 파출부 일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고결한 신념과 열정어린 투쟁의 삶은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담담하게 써내려간 수기에 소중히 담겨 있다.
 
만주벌 독립운동가로 마지막 생존자이셨던 선생께서 떠나신 지 이십삼 년, 이우석 옹을 그린 또 다른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민병일 시 이지상 곡)이 들려주는 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만주벌판의 독립군 병사들이 우리에게 달려오리라.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4월 3일, 왕청현혁명렬사릉원에서 렬사들의 위훈을 기리고있는 왕청현교통관리국 민경들. 올 청명절전야 왕쳥현의 여러 기관과 사회가두의 공무원과 학교 학생 도합 3000여명이 혁명전통교양기지인 왕청현혁명렬사릉원에서 혁명선렬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대거 진행하였다. 추모제에서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최금철부...
  • 2014-04-08
  • 4월 4일, 청명을 하루 앞두고 길림시조선족차세대관심위원회와 길림조중, 길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의 조직하에 길림시조선족중소학교 사생 100여명이 화피창렬사릉원을 찾아 영령들을 추모했다. 오전 8시, 세대의 뻐스를 내세워 길림조중 학생처 고춘영주임이 인솔한 30여명 조중학생들과, 길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의 전성민...
  • 2014-04-07
  •  당년 일본군의 또치까잔해물들. 훈춘시 춘화진 초평(草坪)촌 동쪽 이도관(二道关)산속에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남긴 매우 큰 규모의 군사요새지유적이 발견되였다. 초평촌의 촌민 마련파, 장본용 및 장고봉사건기념관 관장 류충지, 춘화변방파출소 류군부소장 등 인원들이 유적지를 답사하여 초보적으로 중국...
  • 2014-04-07
  • 고성마을 입구에 세워진 온특혁부성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비우성 비석.  훈춘시구역에서 서남으로 8킬로메터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삼가자향 고성촌, 지난 3월 4일 이곳을 찾았을 때 논에서 밭에서 봄을 맞으며 농사준비를 하는 농민들이 간간히 보였다. 력사적으로 고성촌은 19세기때 청정부가 이곳에 통상분국...
  • 2014-04-04
  •  4월 2일 청두(成都)시 고고연구소와 량산(凉山)주 박물관은 쓰촨(四川)성 량산주 진양(金陽)현 문물 관리소 측과 마이쭈샹무나거우(馬依足鄕木納溝)촌 주민이 집 건설 시 발견한 문물에 대해 감정을 진행한 결과, 발견된 문물 4개 중, 동단검 1개, 동칼집 1개가 전국시대 문물이고, 철삽은 한나라 시대 문물로 밝혀졌...
  • 2014-04-03
  • 간도특설대가 창립된 초기의 지휘부. (사진=서해문집 제공) ◈ 혼돈의 만주벌판…일본군, 조선청년 모아 독립군 토벌에 나서다 조선인 청년들이 일본군이 준 무기를 들고 조선 독립군에게 총을 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소설 같은 장면이 1930~1940년대에 만주벌판에서 실제 펼쳐졌다. 1931년 만주를 점령한 일...
  • 2014-04-03
  • , 책자 발행식이 오늘 오전에 있었습니다.   170만자로 된 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치주 제9기위원회 집정기간 종합실력이 가장 빨리 제고되고 도시와 농촌 면모가 일신됐으며 군중들이 실제혜택을 가장 많이 본 5년 력사를 담았습니다. 주당위당사연구실 주임 변군입니다. 《이 책은 우리 주에서 각항...
  • 2014-04-02
  • ▣ 경성의 새벽을 뒤흔든 격렬한 총격전 의열단원 김상옥(사진=생각정원 제공) "탕~탕~탕" 3.1운동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1923년 1월 27일 새벽. 조용한 삼판통(현 용산구 후암동) 주택가에서 총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이 곳에 은신한 의열단원 김상옥은 20여명의 종로경찰서 무장경찰들이 포위하자 양손에 든 쌍권총을 ...
  • 2014-04-01
  • 남북 및 해외 녀성민간단체들 심양서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토론회” 개최   본사소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조선민주녀성동맹 등 남과 북 및 해외의 20여개 녀성. 종교 단체가 3월 29일 심양 칠보산호텔에서 “일본군 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군위안부를 비롯한 일...
  • 2014-03-31
  • ◈ 경찰서를 빠져나와 감쪽같이 사라진 거물급 공산주의자 '이재유' 일제가 만주를 석권한 1934년 4월 13일 밤. 조용하던 서대문경찰서에 한가닥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이어 "이재유가 달아났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당직경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경성과 경기도 경찰부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 시내를 뒤졌...
  • 2014-03-31
  • 심양 3월 28일발 인민넷: 이번에 한국측에서 중국에 귀환한 항미원조지원군렬사 유해의 안장지는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으로서 중한 량국이 2월에 북경에서 진행된 사업회의에서 토론하여 결정한것이다. 료해한데 의하면 이번의 렬사 유해들을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 부근의 따로 건설한 묘지에 안장할것이라고 했다. 3...
  • 2014-03-31
  • 비공식 협의 병행, 규모도 확대…20일 결과 발표 북한과 일본이 19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적십자 실무회담과 외무성 과장 간 비공식 협의를 재개했다. 수석대표인 리호림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서기장과 다사카 오사무(田坂治) 일본적십자사 국제부장 등 양측 대표단은 이날 정오(현지시간)께...
  • 2014-03-20
  •  항일의사 안중근 순국 104주년(3월 26일)을 맞으며 안중근사적 보고 및 사진전시회가 지난 주말 심양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서 있었다.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와 중국조선족사학회서 공동 주최하고 료녕성조선족로인련의회에서 주관,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단,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료녕성조선족애심...
  • 2014-03-19
  • 남경시문화광전신문출판국은 남경 리제항(利濟巷)에 위치한 10년 가까이 방치되였던 중국침략 일본군위안소 유적지를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는 이곳이 위안부들이 지목한 아시아 현존 최대 규모의 일본군 “위안소” 유적지라며 현재 7동의 건물이 남아있다고 소개했다...
  • 2014-03-18
  • 중국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렬관에서 입수한데 따르면 할빈시는 3.2억원을 투자해 731유적지핵심구 및 731전쟁유적지공원건설용지내의 여러개 비문물건축물을 허물고 환경을 다스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리고 있다.   731유적지는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전국 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 전국 홍색관광풍경구 및 국...
  • 2014-03-17
  • 3월 14일 오전, 룡정시《3.13기념사업회》에서는 사업회 회장단과 룡정시통신협회 회원들 그리고 룡정로인대학 등산대 성원들이 참가한 3.13반일집회 유적지답사활동을 조직하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3.13》반일집회장소였던 제1유치원에서 시작하여 반일시위행진로선을 따라 류혈사건발생지(번영로와 건설가 교차 십자거...
  • 2014-03-17
  •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 일본이 침략력사를 왜곡하고 있는 오늘, “룡정3.13반일운동 95주년 추모제”가 룡정3.13기념사업회, 룡정시노인대학,해란강합창단,연변력사연구회,룡정시정부 등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룡정 3.13반일의사릉에서 있었다.   이번 추모제...
  • 2014-03-14
  • 안중근의사가 순국전인 1910년 3월 려순감옥에서 쓴 글씨가 경매에 나온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은 안중근의사 순국일(3월 26일) 다음날인 오는 27일 오후 5시,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제131회 경매를 열고 안중근의사 유묵 《경천》(敬天)을 비롯한 157점을 출품한다고 10일 밝혔다. 《경천》은 하늘의 리치...
  • 2014-03-13
  • 2월 26일, 진시황릉 박물관 측은 발굴학자들이 진시황 병마용 1호갱에서 3차 발굴을 진행하던 중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활과 화살이 출토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진시황 병마용 발굴작업에서 최초로 발견된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활과 화살이며, 2009년부터 시작된 진시황 병마용 1호갱 3차 발굴작업에서는 고고학적 성과가 ...
  • 2014-02-27
  • 1945년 9월 9일, 허잉친(何應欽, 좌측)은 난징에서 중국 정부 대표로 중국침략 일본군 고바야시 센사부로(小林淺三郞) 총참모장이 제출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중국침략 일본군 사령관의 항목문서를 받았다.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제7차 회의는 25일 오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의 중국인민 ...
  • 2014-02-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