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 왕실 경호실장 여진족이 맡고 외인부대장은 서양인 차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14일 09시25분    조회:215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영국 왕실 사상 처음으로 흑인 시종 무관이 탄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 이민자인 나나 코피 툼마시 앙크라(38) 소령을 시종 무관에 임명했다.

시종 무관은 왕실 기마병을 지휘하고, 중요 행사 때 지근거리에서 여왕을 보좌하는 임기 3년짜리 요직이다.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툼마시 앙크라 소령이 여왕 경호를 맡음으로써 인종 차별 논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왕실은 기대한다.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이후 왕실 근위 기병대에 뽑힌 그는 영국 첫 흑인 육군 장교라는 기록도 세웠다.

2011년에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 기념 거리 행진 호위를 맡았다.

세계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에서 왕실 흑인 장교가 이제야 탄생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외국인을 무관으로 채용했다.

충렬왕 왕비로 원나라 출신인 제국공주를 수행해 1274년 고려 땅을 밟은 장순룡이 주인공이다.

중국 서북부 위구르 이슬람교도인 장순룡은 고려 귀화 후 낭장에 임명된 뒤 첨의참리(정2품), 문하찬성사(정2품)까지 승승장구한다.

낭장은 부하 200명을 거느린 중앙군 정6품 무관으로 오늘날 육군 중대장급 지휘관이다.

외국인이 육군 대위로 특채돼 참모총장까지 고속진급한 셈이다.

장순룡은 나중에 덕수 현(개성시 개풍군)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덕수 장씨 시조가 된다.

이성계를 최측근에서 호위하며 조선 개국 1등 공신에 오른 이지란도 여진족 출신 이방인이다.

쿠룬투란 티무르가 본명인 이지란은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부하를 이끌고 고려에 투항해 이성계 휘하로 들어간다.

전선을 누비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이지란은 경상도 절도사, 동북면 안무사, 좌찬성 등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다.

이지란이 지휘한 부대는 여진족과 몽골족 등 이민족이 뒤섞인 일종의 다국적군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외국인이 왕실 경호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조선에 귀화하여 무과에 급제한 여진족 출신 동청례는 연산군(1476~1506년)의 위장으로 발탁된다.

위장은 궁궐 수비와 임금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 등을 총괄 지휘하는 종2품 무관직으로, 요즘 대통령 경호 실장과 비슷한 자리다.

왕이 주관하는 국가 중요 행사나 궁궐 밖 출입 때 내금위가 최측근 경호를 맡고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우림위와 겸사복이 배치됐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야가라는 왜장이 조선에 귀화해 눈부신 전공을 세워 고속 출세한다.

왜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휘하에서 3천여 명을 거느린 사야가는 부산 상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군에 투항한다.

이후 조선군 조총부대 창설을 주도하고 왜군과 70여 차례 전투를 벌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와 싸워 용맹을 떨친다.

선조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가선대부라는 종2품 벼슬과 함께 김 씨 성을 하사받은 사야가는 김충선으로 개명한다.

동청례와 김충선이 순혈주의 전통이 강한 조선에서 고관대작에 오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동청례는 국경 지역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던 야인을 포용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김충선은 일본식 조총과 화약 제조 기술, 조총부대 전술 등을 전수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들은 이방인 약점을 딛고 출세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말년 운명은 엇갈린다.

동청례는 경호 대상인 연산군을 배신하고서 중종반정 세력에 가담해 정권 교체를 거들었지만 처참한 대가를 치른다.

논공행상에서 서운한 대접을 받은 데 불만을 품고 왕을 비난했다가 역모죄에 걸려 능지처참 형을 당한다. 부인과 자식은 노비로 전락한다.

조선 여인과 결혼한 김충선은 공직생활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가 일가를 이뤘으며, 후손이 지금까지 7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유럽계 흑인도 조선군 장교로 임관할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인 1598년 선조는 명나라 장수로부터 흑인 병사 4명을 소개받는다.

선조는 파랑국(포르투갈) 출신인 이들이 조총을 잘 쏘고 다양한 무예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왜적을 섬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며 기뻐한다.

노란 눈동자에 온몸이 검고 곱슬머리인 용모 때문에 해귀(바다 귀신)로 불린 이들은 바다 잠수로 적선을 침몰시키는 능력도 있었다고 했다.

오늘날 수중 파괴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UDT 요원과 닮았다.

해귀 출현 소식에 왜군은 바짝 긴장했으나 막상 이들이 적선을 부쉈다는 기록은 없다.

흑인 군인들이 무력시위만 했을 뿐 실전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에 장교 임용 기회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1604년에도 포르투갈 출신 무역상이 흑인 노예 등과 함께 태풍을 피해 경남 통영에 상륙하는 등 서양인들이 종종 입국했으나 대부분 추방됐을 뿐 귀화하지는 않았다.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머나먼 조선 해역까지 출몰한 것은 대항해시대를 맞아 앞다퉈 동방시장 개척에 나섰기 때문이다.

동방 진출을 주도한 국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포르투갈은 16세기 말레이반도 믈라카를 점령한 데 이어 중국 마카오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스페인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아메리카 대륙 남단에서 태평양을 서쪽으로 횡단하여 필리핀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을 무역 기지로 삼는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까지 가세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서양 상선이 난파하여 조선에 표착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뒤늦게 동방무역 쟁탈전에 뛰어든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제압하고 해양 패권을 장악한다.

네덜란드 동방무역은 1602년 설립한 동인도회사가 주도했다.

동인도회사는 주주 1천143명이 주식을 받은 대가로 돈을 갹출해 세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무역 전진기지로 삼아 실론 섬, 말라카 제도 등 향신료 생산지를 점령하면서 대박을 터트린다. 그 덕분에 네덜란드는 유럽 최고 부국으로 부상한다.

당시 정향, 육두구, 후추 등 향료는 음식 부패를 막고 흑사병까지 예방한다는 믿음 때문에 유럽에서 금값으로 거래됐다.

동인도회사는 요즘 기업과 달리 국가 지원을 받아 전쟁 선언과 평화조약 체결 등 역할을 하는 준국가기관이었다.

인도양과 태평양 일대를 항해하거나 연안 상륙 때 무력충돌하는 일이 잦아 막강한 군사력은 필수였다.

선원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총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정예 군인이었다.

동인도회사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대륙 간 교역뿐만 아니라 동방권 역내무역도 활발하게 했다.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대만, 아라비아 등 20여 곳을 잇는 해상 네트워크를 활용한 교역이다.

일례로 인도 면직물을 사서 인도네시아에 팔고 그 대금으로 후추를 구매해 중국에 매각한 다음 비단을 사들여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에서는 비단을 처분해 은을 매입한다.

당시 은화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유통되던 국제 결제 수단이었다.



조선이 엄격한 국경 빗장을 걸어 잠근 것과 달리 일본 무신정권은 나가사키를 해외무역 기지로 개방해 외국인 출입이 잦았다.

1627년 경주 인근 해역에서 양식과 식수를 구하려고 상륙했다가 붙잡힌 네덜란드인 박연(본명 얀 얀스 벨테브레이)도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다.

박연은 동료 2명과 함께 체포돼 경주 관아로 압송된다.

이들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들은 비명을 질렀고, 성문을 지키던 군인조차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붉고 노란 머리카락에 우뚝 솟은 코, 푸른 눈, 희멀건 피부, 우람한 체구에 놀랐기 때문이다.

박연 일행 또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조선을 식인의 나라로 생각한 이들은 해 질 무렵 군인들이 횃불을 높이 들자 자신들을 구워 먹기 위해 불을 지핀 것으로 알고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박연 일행은 조선 훈련도감에 편입돼 대포와 조총 제작·사용법을 가르친다.

훈련도감은 한양 방위를 담당한 정예 부대로 포수(총포), 살수(창검), 사수(활) 등 3개 병과에 특화한 군인들로 편성됐다.

박연 일행은 당시 성능이 가장 우수한 무기인 홍이포(네덜란드포)도 제작했다. 기존 화포보다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뛰어난 신무기다.

병자호란 때는 전쟁터로 나가 박연만 살아남고 동료 2명은 전사한다.

훈련도감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항왜)과 중국인 군인들도 많았는데 박연이 이들을 지휘했다. 외인 부대장 노릇을 한 셈이다.

1648년 무과에 장원급제한 박연은 조선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 조선인으로 동화하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향수병에 걸리게 된다.

1653년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조난한 외국인 통역을 도와준 게 잊혀가던 고향을 떠올린 계기다.

해상 난민들은 하멜표류기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출신 하멜 일행이었다.

박연은 이들과 몇 마디 주고받다가 갑자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 소매가 흥건하게 젖었다고 한다.

조선에 체류한 지 27년 만에 고향 사람을 만난 기쁨과 고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해 눈물이 펑펑 쏟아진 것이다.

하멜 일행도 훈련도감 외인부대에 배속됐다가 1664년 조선을 탈출해 일본을 거쳐 귀국한다.

하멜표류기는 조선에 14년간 억류된 탓에 챙기지 못한 급여를 동인도회사에서 받아내려고 작성한 행적 보고서로 조선을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문헌이다.

박연의 아들 역시 훈련도감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후손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보다 민주주의 역사는 짧지만, 외국인을 포용하는 전통은 비교우위를 자랑한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난민이 유럽 해역을 떠돌다 무수히 죽어가는 데도 주변 국가들이 침묵하는 현실을 보면 서양인들이 입버릇처럼 외친 인도주의는 헛구호였던 셈이다.

우리도 외모와 말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멸시하는 악습이 적잖다는 점에서 자성하고 개선할 여지가 많다.

다름을 포용함으로써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공존한 국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대체로 번창했다.

다양성은 자연 섭리인 만큼 정치권 등에서 강조하는 양성평등이나 지역균형보다 하위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인종차별금지법을 만드는 방안을 이제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는 시대 흐름에 비춰 봐도 그 법은 필요하다.

고려나 조선처럼 외국인을 정부 고위직에 발탁한다면 대한민국이 열린 사회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하나의 역사관 vs 다양한 역사관' 지난 12일 교육부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 추진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11월 중 집필진을 구성하고 2017년 3월 일선 학교에 국정 교과서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논란은 거세다. ‘균형 잡히고 통일된 역사관에 입각한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lsquo...
  • 2015-10-21
  •      조선반도의 삼국승려와 대륙고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실크로드'는 약 기원전 2세기부터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한 옛 상업무역 노선으로 16세기까지 계속 보류, 사용되면서 동방과 서방의 경제와 정치, 문화...
  • 2015-10-16
  • 추석전날 연변인민방송 애청자협회 30명 애청자대표들은 주덕해동지기념비를 찾아 추모제를 올렸다.  해마다 선조들을 기리는 청명과 추석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찾아가군 한다. 9년째 이렇게 찾아온 로인뢰봉반 맹인반장 김봉숙로인은 주덕해로주장에게 제술을 부어 올리면서 《로주장님 뵈러 찾아왔습...
  • 2015-09-29
  • 취궈홍 주한 중국대사 등 16일 개막식 참석   새까맣게 탄 중국군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일본군(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독립기념관이 16일부터 10월말까지 중국 난징대학살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사진은 불에 타 죽은 중국군 사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일본군. 2015.9.15 난징으로 입성하는 일제(천안=연합뉴...
  • 2015-09-16
  • 1979년에 국무원으로부터 로혁명근거지로 확정된 도문시가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 70돐을 맞이해 “로혁명근거지-도문”기념비를 세운 가운데 기념비 락성식이 2일, 도문시 수원광장에서 있었다. 료해에 따르면 1930년 3월 중공 동만특별지부는 하석광을 파견, 월청 석건평에 도문의 첫 당지부를 ...
  • 2015-09-08
  •  항일전쟁 승리 70주년(9월3일)을 앞두고 발표한 '항일영웅렬사' 명단에 일제시기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전에 참가했던 조선족 항일투사들도 일부 포함됐다.  국무원 비준을 거쳐 지난 25일 발표한 '저명한 항일영웅렬사 600명' 명단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일제와 처절하게 싸왔던 박...
  • 2015-08-27
  • 중국인민항일전생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7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기 위해 국무원이 당중앙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제2진 국가급 항일전쟁 기념시설, 유적지 100곳 명록과 제2진 유명 항일영웅렬사, 영웅군체 600명 명록을 공포했다. 1931년 9.18사변과 함께 항일 국지전쟁이 서막을 열어서부터 1945년 전면 승리를 거두...
  • 2015-08-26
  • 독립운동가 윤낙세에 대한 고찰 (흑룡강신문=하얼빈) 윤낙세(1877 ~ 1929)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간도와 로씨야를 무대로 반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초에는 권업회, 기독교우회 등 단체를 통해 군자금 모집 및 반일선전활동을 하였고 1910년대말에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신민...
  • 2015-08-17
  • 중국 문인 징메이주가 1941년 한국광복군 기관지에 기고한 '의사행' 1~3편 징메이주, 1941년 한국광복군 기관지에 한인애국단 헌시 기고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의사는 아무 일 없는 듯 폭탄을 가슴에 안고 인파 사이를 헤쳐 나가/…/의사는 손을 들어 폭탄을 투척하네/…/중화의 건아들아 부...
  • 2015-08-10
  • 본사소식 7월 31일, 주심양한국총령사관 대련출장소에서 주최하고 대련시한국인(상)회, (한)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대련지회에서 협찬한 "안중근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방안 모색" 세미나가 중한 량국의 교수, 대련 소재 부분 기업인들과 대련국제학교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련부려화호텔에서 진행됐다.   ...
  • 2015-08-06
  • 동북항일련군 박물관 기본 전시로 “항전 14년-동북항일련군 력사진렬”이 다년간의 준비단계를 거쳐 8월 1일 공식 개방되였다. 전시는 9.18사변 폭발로부터 구쏘련 홍군의 동북 진입기간까지 동북항일련군 전사들이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침략군과 생사박투를 벌이고 민족 울타리를 지켜낸 력사적 증거물들이다...
  • 2015-08-03
  •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중국 이민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올해 안에 완간된다. 명말청초인 17세기 초 중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조선족은 1952년 연변자치주 설립까지 400년에 걸쳐 험난한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역사를 갖고 있다. 항일무장독립투쟁과 국공내전 과정에서는...
  • 2015-07-21
  •            조선족 항일로전사 리민 '푸틴훈장' 수여받아       "중러인민이 희생으로 바꾼 승리 후대들은 잊지말아야"   (흑룡강신문=하얼빈) "2013년 12월 21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명령에 따라 '1941년-1945년 위대한 위국전쟁...
  • 2015-06-10
  • 만세묘지에 묻혀있는 백년의 함성 연변의 항일운동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 이야기는 한 시골노인의 어릴 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7,8살 때 소를 몰고 산을 오르내리던 소년은 늘 비탈의 무명의 무덤을 지났다. 아니, 이 무덤은 주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실은 무명의 무덤이 아니었다. 방창화...
  • 2015-06-01
  •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연변지역 리사확대회의 연변대학서   더 많은 이들이 우리 조선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하고 조선족의 력사를 발굴, 선양하기 위해 중국조선민족사학회(회장 정신철)에서는 5월 22일, 연변대학에서 리사확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 민족 력사연구분야의 관계자 십여명이 참...
  • 2015-05-22
  • [원제목]'애족장' 수훈자 윤낙세 후손, '2015 호국영령 위패봉안식'에 참가 항일 독립유공자 중국에서의 활동 재조명 계기 마련   ▲ 독립유공자 수훈 애족장 윤낙세 후손인 윤운걸(흑룡강신문 길림성 특파원)씨와 그의 부인 박진숙씨 [서울=동북아신문]'2015년 제2회 한국 호국영령 합동 위패봉안...
  • 2015-05-21
  • [항일전쟁은 몇년인가?] 노구교의 돌사자에 깃든 옛 이야기   원상대로 보존되여 있는 노구교  옛 다리바닥부분 기실 노구교(盧溝橋)의 이 이야기는 황당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노구교의 저쪽에서 일본군이 훈련을 마치고 귀영하던 도중 병사 한명이 뒤를 보러 가면서 그만 낙오를 했다. 나중에 일본군은 이 병사...
  • 2015-04-09
  • 료녕신문소식: 항일의사 안중근 순국 105주년 도편순회전시회가 3월 31일 신빈만족자치현 조선족중학교에서 열렸다. 료녕성 동북항일련군 항일전쟁사연구회, 료녕동북아 경제문화추진회, 심양시9.18력사박물관, 한중교류문화원, 심양시조선족 제1중학교, 료녕대학 동북아연구중심에서 주최하고 료녕성 조선족로인촬영가협회...
  • 2015-04-02
  • 《3.13》반일집회 유적지에서 열심히 필기하고있는 룡정중학교 학생들. 3월 14일 오전, 룡정《3.13》기념사업회는 《3.13》반일운동 96주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룡정시조선족녀성민족무용협회 회원 30여명과 룡정중학교 사생 30명이 참가한 《3.13》반일시위 유적지와 로정 답사활동을 조직하였다....
  • 2015-03-16
  •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회장에 따르면 룡정시에서는 《3.13반일운동》 96주년을 맞으며 추모제, 기념좌담회, 《3.13》반일운동유적지답사 등 기념계렬활동을 조직하게 된다. 3월 13일 오전 10시부터 룡정시 《3.13》반일의사릉에서 진행되는 추모제 행사에는 룡정시 당위와 정부, 심양한국총령사관, 룡정《3.13》기...
  • 2015-03-11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