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31년 전 오늘(1987년 1월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학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2세였던 이 청년은 훗날 역사책에 '열사'로 기록됐지만, 그의 옆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사를 이야기했던 친구들은 아직도 '종철이'라는 단어가 편하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던 친구, 가족과 친구에게 다정다감했던 친구, 그런데 갑작스럽게 홀로 떠나가버린 친구. 박종철 열사의 고교 친구와 대학 동기들에게 종철이는 마음의 빚이자 부채의식이다.
박종철의 고교 동창이자 대학 동기인 김치하씨(54)는 13일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얼굴이 하얗게 뽀얗고 피부가 맨들맨들한데 두꺼운 안경을 낀, 그 당시로써는 귀티 나는 친구였다"며 흐릿한 추억을 꺼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 부산의 한 학원에서 종철이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김씨는 "1~2달 학원에 다니면서 종철이를 매일같이 봤는데 추첨을 받은 학교(혜광고)가 똑같았다"며 "같은 반으로 만났고, 둘이 키도 비슷해 종철이가 15번, 내가 16번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종철이를 '아주 성실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진득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 다정다감 성격에 가족들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종종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러나 동시에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느꼈던 그였다.
김씨는 "종철이는 가족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많이 썼다"며 "편지에 누나(박은숙씨)는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냐며 안부를 묻거나 어디가서 휴지통을 하나 산 것까지 소소한 일상의 일들도 자세히 썼다"고 잔정이 많았던 친구 박종철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던 두 사람은 서울대 84학번으로 함께 입학했다. 학과는 달랐지만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자주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답답한 시국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격하게 울분도 토했던 그들이었다.
김씨가 생전 박종철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신림동 주점에서다. 평소와 다름없이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에 언론사 기자로부터 종철이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씨는 "내 친구 종철이뿐 아니라 1987년 수많은 '박종철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며 "자기의 생활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본적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사람들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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