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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임시 정부’는 왜 ‘임시’로 끝났나?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19일 15시30분    조회: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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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라는 말은 명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잠시 동안의 상태를 이르는 명사이다. '정부'라는 단어와 함께 쓸 때는 둘 다 명사이므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나, 그 임시 정부가 어떤 고유성을 띨 때에 한해 '임시정부'라 붙여 써도 마땅할 것이다. 이 글은 이 문법적 고려를 가해 쓴 글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설립된 조직이다. 이 기구는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처음 설립된 단체로서, 3·1운동이 개시되고 1개월 뒤 결성한 단체이다. 3·1운동의 여세로 5개월 뒤에는 각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경성(京城)에서 벌어진 3·1운동이 없었으면, 단지 '임시 정부'로 머물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시 정부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는 말이다.

◈임시 정부와 이승만

바로 이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다.

하지만 5년 뒤인 1925년, 그는 임시 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다. 발단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라는 해외 기구에 우리나라 통치를 위임했다는 사유였다. 당시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이완용보다 더한 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결국 면직당했다. 하지만 반(反) 이승만 전선은 '위임통치'라는 단어만 전파했지, 그 국제연맹이 우드로 윌슨이 만든 기구라는 사실은 누락한다.

사실 윌슨 대통령은 연합국과 대결하고 있던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에 속한 식민지에만 적용하려던 것이었으나, 미국에 거점을 둔 이승만 등 세계 정세 파악에 밝았던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바로 우리나라에까지 강력하게 적용시키는 외교의 노력을 펼쳤던 것이다. 게다가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 이승만의 스승이었다. 위탁통치인가 외교인가,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임시 정부' vs '임시정부'
 
이승만
▲이승만 초대 대통령. ⓒ크리스천투데이 DB

3·1운동의 흥분이 천년만년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든 국외든 피로감에 젖어들기 마련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일제의 박해 내지는 친화 정책으로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었고, 해외에서는 생활형 독립운동가들의 끊임없는 파벌 싸움으로 평소 애국적인 동포들도 신물을 내고 있었던 터이다.

임시 정부는 3일 후인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임을 예상해서였을 것이다. 이때 애국심 있는 재미 한인들에게도 새로운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이 액수는 한인 개인당 약 2천불에서 3천불에 달하는 액수였는데, 이는 1900년대 초 노동이민으로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까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기 2세들의 미국 동화작용까지 방해하는 사회 행태로 나타났는데, 미국 사회에 동화력을 갖춘 한인들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있는 양상과는 달리 당시의 일본인의 조국에 대한 열정은 무조건적 충성심에 기인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이 두 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의 처후를 가른 것이다.

이 행정명령이 뭐냐 하면, 미국 서부지역의 약 11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을 서해안에서 떨어진 중부 사막 수용소들(relocation camps)로 보내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감금을 시킨 일이다.

 

그리하여 한인들은 광복군을 위한 독립금, 혈성금, 인구세 등 임시 정부를 위해 모금했던 액수보다 수십 배 더 많은 돈을 미국 전쟁공채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노동이민으로 온 자신들에게 영사도 하나 보내주지 않던 나라, 그토록 부르짖던 호소에도 외면하던 조국에 대한 애정이 흐릿해지다, 전쟁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애국심이.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임시정부란 '임시 정부'였기에, 이승만은 독자적으로 독립을 위한 활동을 속개했다. 그러던차 임시 정부는 1934년 다시금 이승만을 외교위원으로 선출한 터이다.

미주 한인을 중심으로 미국 전쟁공채 구매 등 적극적 의사 표현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임시 정부는 궁극적으로 '참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게는 이 전쟁이 자국을 방어하는 전쟁이었겠지만, 이면에서 이 전쟁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었기에 약소국들은 너도나도 참전을 선언하고 있는 분위기인데도, 진주만 공습 3일만에 '대일 선전포고'를 한 한국 임시 정부가 참전 선언은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는 하였으나, 광복군이 마지막 순간까지 적극적인 참전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부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의사들을 통한 무력 테러는 있었지만, 이제 비로소 전쟁다운 전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정작 일본과의 접전에 나서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이를테면, 줄기차게 게릴라전을 펼치던 티토(Josip Broz Tito)는 연합군에 참전함으로써 우방임을 인정받았고, 전쟁 후에는 그 세력을 유고슬로비아 독립국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광복군은 참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용감하던데.

 

◈정부가 될 기회를 놓친 '임시 정부'
 

훗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표 김구는 이르기를, 임시 정부와 광복군은 한 일이 없어 앞으로 발언권이 약하게 되었으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전한다.

현대에 들어 대한민국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가열차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대다수는 그 임시 정부를 '김구의 임시 정부'로 기억하는 까닭일 것이다. 김구를 위대한 선각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던가?

'임시 정부'가 아닌 '정부'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지정학적 이유로 열강의 틈에 끼어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이념의 갈래에 끼어서, 언제나 가장 많은 피를 흘리는 당사국인 우리 자신은 결정적 상황에서 스스로의 당사 국 지위를 내려놓는 민족성을 보이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스스로 독립을 이룬 나라란 없다. 있다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독립을 할 필요가 없었거나, 아니면 전혀 가치가 없는 땅을 영토로 딛고 있었거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힘 있는 누군가가 주권을 부여해 줄 때에만 비로소 독립은 성립될 수 있었다. 그것이 역사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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