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안창호-김원봉 옆에 이런 분들이...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16일 15시24분    조회:62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73번째 광복절이다. 여느 해와 다르게 각 방송사 별로 풍성한 광복절 특집이 마련되었다. 그 중에서도 KBS는 공영방송답게 다양한 특집을 마련했다. 

그 중 15일 방영된 <특집 다큐 - 독립 운동을 한 의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입신양명'의 상징이었던 '의사(醫師)'가 되었지만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숙명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의사(義士)'된 선열들의 삶을 조명했다.  

사천 나창헌, 연변 박서양, 몽골 이태준, 하얼빈 김중화, 북경 이자해 등 1945년까지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의사'들은 156명에 이른다. 그 중 포상을 받은 사람은 불과 67명.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은 독립 운동의 숨은 주역, '전문직 종사자 의사'로써 독립 운동에 참여한 그들을 환기시킨다. 

이정희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일제 강점기 경성 의전이나 세브란스 의전이라면 어땠을까?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가던 곳이었을 곳이었으니 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까. 영화 <동주>에서도 간도에서 연세 의전 문학부에 가는 두 청년을 그곳 친지들이 얼마나 축하해 주었던가. 하지만 시대는 그들에게 그저 환자를 고치는 의술만을 편하게 펼치도록 놔두지 않았다. 

KBS 특집 다큐- 독립 운동을 한 의사들ⓒ KBS


몽골에서도 뜨거웠던 독립의지, 이태준

청년 이태준은 1907년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했던 1907년은 군대 해산이 있던 시기, 즉 나라의 운명이 바뀌어 가던 시기였다. 2년 뒤,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에 전 세계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의거'를 일으켰다. 그 격동의 시절 의대생인 이태준의 운명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안창호 선생을 만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안창호 선생을 만나며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안창호 선생이 위태로운 국운에 고뇌하는 젊은 의학도를 알아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형제였던 세브란스 의전 1회 선배였던 김필순 선생을 소개하셨을 테고, 최남선이 만든 청년 학우회에 기꺼이 입회하게 하셨을 것이다. 

1907년 안창호의 발기로 비밀 결사조직으로 만들어진 신민회는 국권 회복운동을 벌이던 중 105인 사건을 계기로 조직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더는 국내에서는 활동하기 힘들게 된 신민회의 인사들은 대거 망명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이태준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이태준은 김필순과 함께 신민회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그 역시 망명의 길에 나서게 됐다.

단동을 경과하여, 중국에서 가장 '혁명'의 열기가 뜨거웠던 남경으로 옮겨간 이태준 선생. 그는 그곳에서 해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취직하여 힘겨운 망명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파리 강화 회의에 민족 대표 3인 중 한 명으로 파견됐던 김규식 선생과 함께 '독립'에 대비할 '무관학교'를 만들기로 뜻을 모아 몽골로 향했다. 

1914년 말도 설고, 땅도 설은 몽골의 후레에 도착했지만,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무관학교는 자금과 현지 사정으로 무산되고 만다. 그래서 동의지국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여 마지막 몽골 왕이었던 복드 칸의 어의로 활약하며 공을 세운 외국인들에게 주는 에르테닌 오치르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몽골 현지에 2차 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탑 앞에 이태준 기념 공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낯선 몽골에서도 이태준 선생은 독립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의사를 하면서 번 돈으로 김규식 선생에게 2000원의 여비를 제공하는 등 독립 운동을 하는 인사들의 숙소와 교통편, 자금원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또한 영화 <암살> 속 속사포 캐릭터의 본 인물로 추측되는 당신의 운전사였던 폭파 전문가 마자르를 소개하는 등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에 가입해 활약했다.  

그는 또 한인 사회당의 비밀당원이 되어, 자금 마련에 힘썼다. 레닌이 상해 임시정부에 준 12만 불의 금괴를 2400km를 거쳐 안전하게 수송한 선생은 8만 루블을 김립 선생에게 전하고, 다시 4만 루블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일제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몽골 점령 러시아 백위파에게 발각되어 가솔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1921년 선생의 나이 불과 38세 때였다. 

ⓒ KBS


블라디보스토크에 번쩍, 상해에 번쩍... 곽병규 선생

이태준 선생이 먼 몽골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과 달리, 곽병규 선생은 천수를 누렸지만 정작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가족들조차 몰랐다. 평양 숭실중을 나와 이태준 선생에 이어 3회에 세브란스 의전에 입학한 선생은 역시나 독립 운동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청년 곽병규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건 블라디보스토크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당시 1만 명 정도의 한인들이 '신한촌'이라는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이곳에 살던 한인들과 유학생들이 조국에 '문화공연'을 하러 왔는데 이 해삼위 음악단장이 바로 곽병규였다. 

당시 이러한 '조국 방문 문화 행사'는 그저 공연이 아니었다. 고국에 살 수 없어 먼 이방의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 학생들의 공연은, 삼일 운동 이후 그 어떠한 정치적 행사도 불허한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일하게 함께 모일 수 있는 '집회'였다. 그래서 일제는 이 집회를 불을 켜고 감시했다. 그런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해외 동포들과 고국의 국민들은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어우러져 눈물을 흘리고 '한 민족으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선영 지음, <식민지 트라우마> 중에서)

곽병규 선생의 활약은 말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임정의 외부 활동이었던 간호부 양성소 교수였던 곽병규는 1920년 상해에선 대한 적십자사 의사로 활약했고, 1927년 사리원에서는 경산병원과 유치원을 개업했다. 그러다 사리원 신간회 회장으로 체포당한다. 그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은 선생은 1930년대 서울로 근거지를 옮긴다. 

곽 선생의 딸은 아버지를 '의술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봉사'라는 신념을 가르친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때문에 의사의 자녀들이었음에도 어렵게 살아야 했다고. '불의의 악을 극복하고 전진하라'는 아버님의 숨겨졌던 유지는 뒤늦게 아버님의 활동을 알게 된 딸의 노력으로 2011년에야 비로소 국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환자를 치료하던 손에 들진 폭탄, 나창헌 

여기 또 한 명의 의사가 있다. 아니 의사이기보다 열사인 나창헌 선생이다. 경성의전 2학년이던 24살에 3.1 운동을 겪은 선생은 당일 1차 시위에 참여한 후 2차 시위를 준비하던 중 연행됐다.  미결수로 서대문 감옥에 갇혀 온갖 심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입원하게 된 선생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탈출, 대동단에 가입하여 의친왕 이강 망명 작전에서 '경호'의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정보를 미리 알게 된 일제에 의해 작전은 실패한다. 선생은 포기하지 않고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고 1919년 11월 8일 종로 경찰서 앞에서 200여 명의 동지 및 군중들과 '독립 만세' 운동 거사를 일으킨다. 일제는 선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그런 일제를 피해 선생이 상해로 망명한 상태에서 재판부는 3년 형을 구형했다. 험난했던 망명 과정, 선생의 부인은 망명 과정에서 발톱이 몽땅 빠졌다는 기록이 남았을 정도다. 

상해 독일 병원에서 의술을 다시 배운 선생은 세움 병원을 세워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임정의 재정을 돕는 한편, 임시 정부 의정원에서 두루 요직을 맡으며 활약한다. 하지만 점점 더 독립의 가능성이 멀어져만 가고, 임정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온건한 투쟁 방식 대신 일제에 직접적 손실은 물론 민족의 자긍심들 독려하기 위해 암살-파괴 등 투쟁 방식의 변화를 꾀한다. 직접 폭탄을 제조하는가 하면, 1926년 상해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에 주모자로 참여한다. 하지만 그 사건은 더는 선생을 상해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고, 다시 중경으로 발길을 돌린 선생은 그곳에서 만현의원을 개업하여 독립 운동을 돕던 도중 약관 40세의 나이에 위암에 걸려 순국한다. 

의사인 열사들의 운동은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특수성을 가진다. 의사들은 병원 개원을 '자금 지원'과 '인적 교류의 통로, 혹은 교두보'로 승화시키는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중경, 몽골 등 지역을 막론하고 넘나들며 독립의 기치를 드높였다. 의사라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의사든 그 누구든 독립 앞에서는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세 분 선생의 행적은 기록한다. 

하지만, 2011년에야 비로소 딸에 의해 알려진 곽병규 선생, 우리보다 몽골 사람들이 더 기억하는 이태준 선생, 그리고 1993년에야 유해가 발굴되어 환국한 지 57년 만에 건국훈장을 받게 된 나창헌 선생처럼, 국가와 역사의 보답은 여전히 미비하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79
  • 경기도 성남시 판교 백현동 행정복지센터 인근 이완용 생가터에 세워진 푯돌. JTBC 유튜브 캡처 매국노 이완용(1858~1926)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설치된 지 일주일 만에 철거된다. 경기도 성남문화원 측은 28일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유치원 인근에 세웠던 이완용 생가터 비석(가로 75cm, 세로 112.5cm)을 이...
  • 2023-11-28
  • [명작의 비밀] 카메라 프레임에 담으려 한 예술 향한 욕망 ● 한국 최초 예술사진 작가 ● 전통적 분위기에 현대적 ‘여인’ ● 자연스러움이 한국인 특성? ● 160년 전 사진도 포즈는 21세기形 정해창의 ‘여인’(1929년 작 추정). 흰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른 여인은 단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 2023-03-16
  •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13주년 기념식'에서 한 참석자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행사장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소나무관에 안치돼 뤼순(旅順)감옥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서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3주년인 26일 공...
  • 2022-10-26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영국서 거래되던 '보록' 기업후원으로 매입 왕실 의례 따라 왕·왕비 위해 제작…"왕실 정통성·역사성 상징" 환수 문화재 '보록' 공개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환수 문화재인 '보록'(어보를 보관하는 상자)...
  • 2022-07-27
  •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 시대 앞서간 예술 후원가 김향안     1956년 파리 다사스 거리에 있던 첫 아틀리에에서,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 환기미술관 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얼마 전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 필자를 찾아왔다. 김향안(1916~2004)을 주...
  • 2022-07-16
  • 전권공사 박정양 일행 워싱턴의 사저 마운트 버넌 방문 모습 기증자가 이베이에서 구입 후 마운트 버넌 도서관에 기증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 버넌을 방문한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 일행 (워싱턴=연합뉴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2일(현지시간) 간담회를 열고 박정양 초대 주미전권공사 일행이 마운트 버넌을 방문한...
  • 2022-06-03
  • 투옥 당시 日간수-경찰에 건넨 5점 논어-주역 구절 인용한 글귀 통해 죽음 앞에서도 조국수호 의지 담겨 왼쪽 사진은 안 의사가 순국 직전인 이듬해 3월에 쓴 ‘洗心臺(세심대)’ 유묵. 안 의사는 비슷한 시기 일본인 기자에게 ‘志士仁人殺身成仁(지사인인살신성인)’ 문구를 담은 유묵을 남겼다. 문화...
  • 2022-05-04
  • 올해 예비군 훈련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유다. 하지만 이 예비군 제도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대원 31명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문에 생겼다. 양주 노고산(496m)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곳을 스쳐 지나갔다.   ■ 북악산 성곽 북측면 개방 68년 1월...
  • 2020-11-14
  • "안익태 애국가 교체, 정답 아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안익태. [사진 이경분 제공] “최근 광복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ㆍ친나치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나치와 함께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민족 반역자가 작곡...
  • 2020-08-18
  • KBS 다큐인사이트 캡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최초로 컬러 복원됐다. KBS ‘다큐 인사이트’가 지난 14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 ‘만삭의 위안부’ 컬러 복원 버전이 16일 온라인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해당 영상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9월 촬영된 것으...
  • 2020-08-16
  •     “중국인 가옥을 약탈해 군 위안소로 만들고 조선인 여자 30명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영업시켜 4000명의 성폭행 대상으로 만들었다.” “조선인 여자 30명을 노예로 간주해 자유를 박탈하고 능욕하고 성폭행하는 일에 공개적으로 협조했다.” 일제 패망 후 중국에서 붙잡힌 일본군들이...
  • 2020-08-13
  •      항미원조전쟁에서의 중국인민지원군의 혁명영웅주의정신과 국제주의정신, 중요한 기여를 표창하기 위해 조선정부는 선후하여 조선국가보위전쟁 2주년과 3주년, 항미원조 1주년, 2주년, 3주년 기념일에 중국인민지원군 간부와 유공자들에게 다섯차례 훈장을 수여했다.        ...
  • 2020-07-30
  •  viewer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미·중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는 영상을 KBS가 발굴해 보도했다. ‘만삭의 위안부’로 잘 알려진 고(故) 박영심 할머니(왼쪽사진). 오른쪽 사진은 KBS가 공개한 연합군에 구조된 후 만세를 부르는 박 할머니의 영상...
  • 2020-05-31
  • 금방 지나간 국제 간호사의 날, 세계 각지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무일군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들이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을 대처하는 기간 죽음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고 환자를 돌보며 국경이 없는 사랑을 보여준 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영국의 100세 로인 톰 무어는 실제 행동으로 의료일군들의 전염병대처 이...
  • 2020-05-19
  • 영조가 만든 효종의 어보도 함께 환수 소장해온 재미교포 최근 기증 뜻 밝혀 국새엔 서양인 소유자 이름도 새겨져 22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미국서 환수한 국새 ‘대군주보’. 거북이 모양 손잡이인 귀뉴가 인장을 찍는 인면 위에 붙어있다. 효종어보를 옆에서 본 모습. 1882년 5월, 재위 19년째를 맞은 ...
  • 2020-02-19
  • 김좌진 장군 영정.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신민부 수령으로 남북만주에서 여러 활동을 하던 백야 김좌진 씨가 1월 24일 오후 2시에 중동선 산시역 부근 산중에서 김일성(金一星)이란 자에게 총살되었다는 풍설이 있다 함은 기보(旣報)한 바거니와 금 12일에 이르러 시내 각처에 씨의 서거가 확실한 것을 증...
  • 2020-01-21
  • 1905년 9월20일 고종이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와의 공식오찬 때 마련한 음식, 각종 자료를 토대로 신세계 조선호텔 조리팀에서 재현했다. |문화재청 제공 “신선로(그릇에 육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함께 끓인 열구자탕), 비빔국수(골동면), 숭어찜(수어증), 편육, 생선전(전육), 전복조림, 누...
  • 2019-09-20
  • 이북5도청서 기념식…보훈처장 등 각계인사 300명 참석 2019년 3월의 호국 인물 '강우규 의사'[전쟁기념관 제공]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1855.7~1920. 11)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식'...
  • 2019-09-02
  •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미 외교관과 개화파 조선인의 우정 [오마이뉴스 글:김선흥, 편집:이주영] 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
  • 2019-07-06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