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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하면 박정희? 이젠 허형식이어야 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31일 08시59분    조회: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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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기마상 건립 움직임... 구미시의원 일행이 찾아오다

한 작가의 꿈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서 금오산 기슭 채미정(採薇亭) 앞에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세워지는 꿈을 꾸었다. 경향 각지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제막식이 거행되는 동안 "대한독립만세!"를 계속 연호했다. 금오산은 그 모든 걸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글은 내가 쓴 실록소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 허형식 장군>의 마지막 문단이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은 한낱 꿈속에서 그렸는데, 어쩌면 곧 현실이 될 듯하다.
▲  허형식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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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신문식 구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화를 걸어왔다. 요지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허형식 장군' 기마상 건립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며 강원도 원주에 있는 내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고향 산천도 볼 겸 구미로 내려가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집필실도 볼 겸 자신들이 방문하는 게 후배된 예의라고 간청하기에 허락했다.

8월 28일 오후, 가을을 재촉하는 억센 장대비를 맞으면서 신 의원을 비롯한 이미경 전 더불어민주당 구미시을 지구당위원장, 이재섭 몽양기념사업회 이사, 최준영 구미일번지 편집장, 전병택 뉴스프로 번역기자,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 등이 원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먼저 내 집 서재에 갈무리된 허형식 장군의 액자 사진에 묵념을 드린 뒤, 내게 허 장군의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다.

나는 고향 후배들에게 허형식 장군을 만나게 된 경위와 그분의 유적지를 찾아간 일화를 들려줬다. 다음의 글은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의 머리글로 내가 허형식 장군을 알게 된 연유다.
"많은 작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신의 어린 시절과 고향 이야기를 평생토록 작품의 제재로 삼고 있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고향 칼브를 <데미안> 등 여러 작품에서 그렸다. 또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고향 호워드의 황야에 살면서 세계문학사에 남을 명작 <폭풍의 언덕>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박경리, 현기영, 김원일, 박완서 등의 작가들도 당신의 고향 풍물과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뒷날 작품화했다.

사실 나도 습작기인 고교시절에 고향의 한 인물(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살아 있는 사람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충고를 했다. 그러면서 그 무렵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그분의 전력을 들려주셨을 때 나는 큰 충격에 빠진 채 지냈다."

 내 집을 찾아온 구미청년 지도자들(왼쪽부터 최준영, 전병택, 신문식, 이미경, 이재섭, 박찬문).
▲  내 집을 찾아온 구미청년 지도자들(왼쪽부터 최준영, 전병택, 신문식, 이미경, 이재섭, 박찬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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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에서 만난 고향 출신의 항일전사
"그런 가운데 내 나이 쉰다섯이던 199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 증손 이항증(전 광복회 경북지부장) 선생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무장투쟁의 선봉장이었던 일송 김동삼(金東三) 선생 손자 김중생 선생의 알뜰한 안내로 중국 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보름 동안 답사했다.

그때 나는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許亨植)'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얼빈 거주 동포 사학자 서명훈 선생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소개를 받는데, 동행한 이항증 선생은 나에게 불쑥 말씀했다.

'허형식 열사는 구미 금오산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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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에 온몸에 전류가 흐른 듯 전율했고, 동시에 가슴이 벅차게 뭉클했다. 그와 함께 내가 이분을 만나기 위해 수륙만리 먼 길을 왔다는 어떤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구미 임은동에서 태어났어요. 임은동과 상모동은 철길 하나 사이지요.'

나는 '임은동과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상모동은 철길 하나 사이'라는 말에 또 놀랐다. 그러면서 그 순간 비로소 그동안 내가 그리던 인물을 비로소 찾았다고, 마치 탐험가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황홀경에 빠졌다."

33세에 장렬히 산화하다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 왕산 허위 선생의 집안 조카로 태어난 허형식은 1915년 일제 경찰과 밀정 및 그 끄나풀에 시달리다가 끝내 만주로 망명했다. 1930년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하고 일제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입당한 뒤, 그해 5월 1일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해 심양 감옥에서 평생 동지 김책과 조상지를 만나 항일전선 전사로 거듭나게 됐다.

1937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9군 정치주임으로, 1939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돼 북만주 제일의 항일파르티잔으로 우뚝 솟았다. 하지만 일제의 빗질 토벌이 한창이던 1942년 8월 3일 북만주 일대 소부대 지도 중 경성현 청송령에서 부하는 살리고 당신은 위만군 토벌대의 총알을 벌집처럼 맞은 뒤 장렬히 산화했다.

허형식은 이육사 시인의 외척으로 <광야>에서 노래한 '백마 타고온 초인'이기도 하다. 국내 처음으로 허형식 장군을 연구한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는 허형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허형식은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이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괴뢰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허 장군은 자신과 가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당신 모두를 제물로 바쳤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당선한 장세용 구미시장은 그동안 잘못 알려진 선산 구미 지역의 이미지를 임기 내 말끔히 씻고, 다음 세대에게 충절의 고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지역 출신 독립유공자 현창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허형식 장군의 기마상 건립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에 뜻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허형식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장세윤 박사의 허형식 연구논문을 인용해, 그분이 허형식을 주목했던 점을 일러줬다.
 
"첫째, 항일연군 지도자들이 대부분 북한 출신인데 견주어 남한 출신이다.
둘째,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당질이다.
셋째, 항일연군에서 정치 이론과 사상, 대원 교육과 전략전술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넷째, 1940년대 초 최용건·김책·김일성 등과 거의 대등한 고위 간부로 활동했다.
다섯째, 1942년 8월 북만주에서 전사할 때까지 항쟁할 만큼 철저한 적극 무장 투쟁론자였다."
   
 
그리고 연세대 신주백 교수는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486쪽에서 1942년 소련이 편성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지휘부는 다음과 같다고 밝히고 있다.
"제1영장 김일성
제2영장 왕효명
제3영장 허형식(취임 전 희생), 영장 대리 왕귀명
제4영장 시세영
"
 
 중국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송령에 세워진 허형식 희생기념비
▲  중국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송령에 세워진 허형식 희생기념비
ⓒ 장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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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

특히 장세윤 박사가 허형식 장군을 높이 평가하는 점은 1941~1942년 무렵 다른 항일연군 지도자들은 일제의 극심한 빗질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넘어갔으나, 허형식 장군은 단 한 번도 중소 국경을 넘나들지 않고, 끝까지 만주의 백성들을 지키다가 토벌군에게 장렬히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독립전사의 열정과 순수성에서는 누구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이날 내 집을 찾아온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은 오는 10월 중하순 무렵에 구미에서 허형식 장군을 기리는 행사를 열게 될 경우, 내게 한 말씀을 하길 부탁했다. 나는 그 청에 응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삼 '사필귀정'이라는 말과 함께 역사의 정의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이 살아있음에 감격했다.

아무튼 허형식 장군의 장엄한 항일투쟁사가 내 고향 구미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도 널리 알려져 그동안 구겨진 민족정기 회복에 한 줄기 빛으로, 그분의 생애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한 표상이 되기를 바란다.

해방 후, 우리 백성들은 줄곧 오만 잡스러움과 가짜들의 추악한 행태로 매우 지치고, 정의와 양심에 매우 허기져 있다. 조선의 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의 올곧은 생애는 한 모금 생명수로, 내일의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과 삶의 활력소가 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허형식 장군의 일대기는 오마이뉴스에 <들꽃>이라는 제목으로 2014. 10. 5.부터 2015. 2. 14.까지 연재한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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