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보, 녀성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예술작품
옛날에 할머니는 사내처럼 털털한 성격을 가진 둘째고모가 눈에 거슬릴 때마다 “어이구 못살아, 저년은 시집도 안 가겠는지 뜨개 뜰 생각은 전혀 안하고 매일 미친년처럼 이 집 저 집 놀러만 다니니… 키는 꺽다리처럼 잔뜩 커가지고 누가 데려가겠는지 데려가는 놈이 눈이 멀었지…”라고 혼자말로 계속 푸념질을 했다. 그러던 둘째고모는 정말로 뜨개보는 두살 이상인 큰고모가 자기 것을 준비하면서 같이 떠줘서야 그걸 갖고 시집을 갔다.
조선족 녀성들은 과거 생산과 생활 가운데서 지혜와 창의를 발휘하여 자신들만의 특유한 민속공예품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후세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추억이 될 만한 진귀한 유물들을 남겨놓았다. 그중 뜨개보는 조선족 녀성들이 무명실과 코바늘로 짬짬의 시간을 리용하여 한코 두코 떠가면서 수만번에 거치는 반복 로동을 통한 결과물이다.
조선족 녀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지혜와 미학, 거기에 인내심을 더한 예술작품인 뜨개보는 1980년대 초반까지 집집마다 거의 다 갖추고 있었으나 거기에 들어가는 정력이 물건의 실제 가치에 비해 비교할 나위가 안되게 힘들었던 연고로 시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절대 살 수 없는 물품이였다. 어떻게 보면 조선족 녀성들은 자기네들의 애정의 상징이며 또 너무나 힘들게 뜬 코바늘뜨개였기에 시장에서 헐값으로 팔리며 남의 물건이 되는 것을 애당초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뜨개보는 용도에 따라 벽에다 걸어놓은 옷을 가리는 홰대보, 안방의 농과 궤에 올려놓은 이불과 베개 등 침선도구를 덮어서 가리는 이불보 등이 있으며 화초, 소나무, 꽃사슴, 학 등 길상을 상징하는 도안과 글자들을 조합해 뜸으로써 가정의 평안과 행복한 살림을 추구하는 조선족 녀성들의 소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과거 시집 갈 나이가 되면 이팔청춘의 조선족 처녀들은 미래 랑군님과의 백년해로를 꿈꾸면서 없는 돈을 한푼 두푼 모아 무명실을 사서 코바늘로 뜨개를 시작한다. 마을의 나이가 비슷한 처녀들은 서로 경험과 노하우를 숨김이 없이 교류하면서 코바늘뜨개에 온갖 정신을 집중하는데 그녀들의 능란하고 날랜 코바늘뜨개 솜씨를 지켜보느라면 마치 무대 우의 피아니스트가 현란한 솜씨로 피아노 건반을 다루는 듯한, 한여름날 거미가 실을 토해 잽싸게 거미줄을 쳐나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연변박물관에서 수장한 이 이불보는 1990년 7월 31일, 연변박물관 민속부의 사업일군 차명숙이 연길시 장하가 박천금녀성으로부터 30원을 주고 수집해들인 것으로서 길이 220센치메터, 너비 200센치메터이며 보관 상태가 량호하다.
길림신문 리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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