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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배신당한 까레이스키, 恨과 유랑의 역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13일 15시50분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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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박물관을 세우자"
왜 광주인가, 그 배경은?

전남대 법대를 졸업한 김병학씨가 광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떠난 것이 지난 1991년. 당시 광주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에 고려인(까레이스키)을 위한 한글학교를 개설하고 있었다. 한민족네트워크에 관심을 기울여온 임채완 전남대 교수로부터 고려인동포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임 교수의 제안을 받고, 고려인 후손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학교 교사로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1937년 강제 이주당한 첫 정착지였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로부터 400km 떨어진 우쉬또베였다.

그는 알마티와 우쉬또베에서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다. 알마티 고려사범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되면서 이곳에서도 가르쳤다. 교사로 활동한 것은 2002년까지였다. 그러면서 2000년부터 3년 동안은 현지에서 발행하는 고려신문사 기자로 고려인 사회를 취재하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그는 2016년 귀국, 광주에 살고 있다.

"신문사에 일하면서 자료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뿌리가 뽑혀 유랑의 역사를 안고 살아온 고려인들의 역사가 그의 가슴에 다가왔다. 고 려인들의 노래를 책으로 만들었다. 그 노래에는 고려인들의 애환, 눈물과 한으로 얼룩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시와 문학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시집 ‘천산에 올라’(2005년),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2007년),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2012년)를 출간했고, 에세이집(2009년)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쉼 없이 문서와 사진 자료 등을 모았다.

현재 그가 수집한 고려인 자료는 1만여 점이다. 이중 사진 자료는 4800여 점. 강제이주(1937년) 이전에 연해주에서 촬영된 사진이 약 900점, 나머지 사진들은 중앙아시아 정착 이후에 해당한다. 문서와 증명서들이 1000여 점이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 정부가 발행한 증명서, 신임장, 상장, 표창장, 출생 성적 졸업증명서 등이다. 연해주 시절 발행된 30여 권, 강제이주 이후 발표된 각종 창작 작품들을 포함해 서적은 약 1000권. 고려인들의 육필원고도 100여 점이다. 1960년대 이후 고려일보 신문들을 일부 수집했고, 2000년 이후에는 거의 망라하고 있다. 의복과 식기, 메달, 휘장 등 생활용품 400여 점도 모았다.

"고려인 박물관을 꼭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러시아 정부기관에서 문서관리 업무를 하다가 퇴직한 한 고려인이 역사 자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려인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 고려인은 문서를 중심으로 고려인박물관을 만들자며 고려인 가정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연해주에 남은 고려인들은 소련 치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의 모든 자료를 불태웠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사아에서도 고려인 자료들은 인멸되고 있었다. 그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기 전, 그가 평소에 지켜보며 신뢰하던 김병학씨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김씨는 그 유지를 받들기로 했다. 그 고려인과 김씨의 수집품을 합한 것이 현재의 자료이다. 자료 중 일부를 살펴본다.


 

김병학씨가 공개한 러시아 연해주 이주민 정선달의 가족 사진. 1937년 생존하고 있었던 사진 속 가족은 카 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다./김병학씨 제공
이 사진 속 가족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 처음 정착한 원호(元戶)에 해당한다. 원호란 1863년 이후부터 1884년까지 경제적인 이유로 국경을 넘어간 함경도 농민들로 러시아 국적과 토지할당을 약속받았던 사람들이다. 불법적으로 이주했지만, 영토 개발과 러시아 군대에 대한 식량 공급이라는 상황 아래서 이주가 묵인됐다. 

사진 속 가족의 삶과 운명은 역사를 고스란히 설명해주고 있다.

흰 수염을 한 이는 정선달(1840년생). 정니콜라이로 개명했다. 대장간과 제유소, 말, 토지 등을 소유한 토호로 성장했다. 러시아 정교회 신부도 지냈다. 러시아 공산혁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도 피바람이 불었다. 그런 와중에서 정니콜라이는 1927년 이른바 토호 청산이 이뤄지기 직전 사망했다. 둘째 아들 정우호(정세르게이, 1892~1922)는 러시아 황제파 군대인 백군에서 복무했다. 백군은 반(공산)혁명파이다. 그는 만주 마적과 전투 중 숨졌다고 한다.

장남 정우권은 대장간을 운영하다, 토호 청산 때 재산을 몰수당했고, 중국으로 피해갔다. 손녀 정소피아(1896년생)는 1934년 토호 가족이란 이유로 체포돼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1937년. 스탈린은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17만여 명이었다. 이 사진 속 남은 가족은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그곳이 우슈토베였다. 연해주에서 뿌리를 내리던 이 가족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당국에 체포되어 숨지고, 중국으로 피신하고, 남은 가족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당한 정우호의 아들 정조심(정세르게이치, 1923년생)은 1938년부터 그곳 집단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54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 1977년까지 협동농장에서 일했다. 다시 그 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옮겨갔다. 1993년부터는 연금생활자로 살며, 1997년 강제이주로 인한 피해보상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간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는 알지 못한다.

김씨가 갖고 있는 문서, 사진 등을 통해 간략하게 복원된 연해주 초기 이주자의 사례이다.

 
1922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열린 3.1운동기념식 모습./ 김병학씨 제공
김씨는 지난 3월 11일자 조선일보에 연해주 우수리스크 3·1독립운동기념사진을 공개했다.

우수리스크 중심가에 가설된 3·1독립운동기념문사진이다. 독립운동사연구자 박환 수원대(사학과)교수는 "우수리스크에서 벌어졌던 3·1운동 관련 사진은 처음 본다"며 "연해주 한인들이 3·1운동정신을 계승하려고 한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투쟁의 거점 도시였다. 이 사진이 특별한 것은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물리치고 다시 맞은 첫 3·1절 관련 자료이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1922년 10월 러시아 혁명군과 함께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몰아냈다.

이 사진 속 가운데 깃발은 러시아 적기(혁명정부)로 추정된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분위기는 1937년이 되면 확 바뀌었다. 일본이 만주를 장악하고 1937년 중국 본토를 침략하는 등 극동지역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스탈린은 한인들이 일본인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1920년대 연해주 한인사회 지도자들을 담은 생생한 사진도 있다.

 
1921년 3월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활동가들의 첫 모임 사진. 아무르주 크라스노야르 마을에서 모였다. 맨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경천(본명 김광서,1888~1942) 독립운동가라고 김병학씨는 말했다. 이들은 당시 연해주를 대표하던 한인사회 지도자들이었다. 맨 앞쭐 가운데 안경쓴 이는 강제이주되어 중앙아시아에서 살았다./ 김병학씨 제공
소련 당국의 강제이주는 철저했다. 강제이주 조치 직전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고려인들(한인들) 2500여 명이 처형되었고, 수천명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1937년 8월 강제 이주 이틀 전 출발을 통보했다. 가을철 수확을 앞두고 간단한 식량과 가재도구를 챙겨 화물열차에 올랐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허허벌판, 사막지대에 버려졌다.

아래 사진은 강제이주 직전 체포돼 처형된 인물 사례이다.

오학태는 1937년 7월 16일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경찰에 체포됐다. ‘트로츠키 간첩 혐의’였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스탈린과 대립했던 인물로 1940년 멕시코에서 암살됐다. 오학태는 1938년 1월 23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일 처형됐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던 서울 태생 오학태. 그는 1937년 강제이주 직전 체포돼 이듬해 총살형을 당했다. 그의 신분증명서이다. / 김병학씨 제공
그는 1905년 4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체포 직전 연해주 하바롭스크 제2기차역에서 주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체포돼 있던 중, 아내(박에카테리나,1912년생)와 세 자녀는 하바롭스크에서 강제이주 열차에 올랐다. 카자흐스탄에서 살아온 둘째 아들 오자하르씨(1932년생)가 1993년 명예회복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청원했다. 그때 청원문서가 남아있다. 오씨와 성격이 비슷한 인물들이 약 30명 가량이다. 이 문서들을 김씨는 확보하고 있다.

김병학씨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고려인의 역사를 생생하고 처절하게 증언하고 있다. 김씨는 국내로 들여오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가 청춘을 보낸 중앙아시아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고려인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광주에는 고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 일원이다. 이곳을 고려인마을이라 한다. 대략 4000여명이 살고 있다.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자치조직인 고려인마을을 만들어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 고려인마을에서 고려인 관련 자료들을 보존, 연구하는 고려인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1931년 한인(고려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고려사범대학을 설립했다. 2학년을 마치고 1937년 강제이주당하자, 이 대학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옯겨졌다. 강제이주당하고 난 뒤 그곳에서 1939년 첫 배출된 고려사범대학 조선어문학과 첫 졸업생들과 교수들 사진.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가르쳤던 보이찌크 교수(사진 맨 뒷줄 가운데에서 첫 오른쪽 얼굴사진)는 강제이주 당시 “제자들을 버릴 수 없다”며 다른 5명의 교수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학생들을 계속 가르쳤다./ 김병학씨 제공
광주에는 고려인들과의 역사가 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0년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는 고려인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광주사람들은 이 무렵부터 중앙아시아에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학교를 개설했다. 이때 김병학씨도 교사로 참여, 카자흐스탄으로 떠났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에서 살기 어려워진 고려인들은 러시아 연해주로 재이주하기 시작했다. 6000km 떨어진 거리였다. 1937년 부모 또는 조부모가 중앙아시아로 왔던 그 길을 거슬러 다시 연해주로 향했다. 러시아에서도 고려인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정착을 위한 농사를 지을 도구도 없었다. 광주에서는 연해주 재이주 고려인들을 돕기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고려인 문화농업교류협력회였다. 오채선씨가 중심이었다. 이들에게 농기구를 지원하고, 광주로 초청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재영·박정인씨 부부는 2001년 연해주로 가서 고려인사회로 뛰어들었다. 현지에서 함께 살면서 고려인들의 재이주 정착을 돕고 있다. 그들이 기록한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2005)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현장기록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고려인들은 직접 국내로 들어왔다. 외국인이 많은 경기도 안산이 거점이었다. 광주에서도 고려인들이 모여 살면서, 또 하나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 신조야씨를 중심으로 자치기구인 고려인마을을 만들었고, 광주사람들도 힘을 보태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 주택가에 자리한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이주와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고려인마을 대표 신조야씨가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권경안 기자
고려인마을에는 고려인종합지원센터를 비롯, 아동센터, 진료소, FM방송국 등이 고려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새날학교(교장 이천영 목사)도 있다. 우리말이 어려운 고려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이다. 가까운 곳에 산업단지가 있어 구직에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짜여지고 있다는 것도 지속적인 이주자들의 유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려인마을을 연구해온 김경학 전남대교수(인류학과)는 고려인들의 이주와 정착 과정 등에 이주자들간에 형성된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고려인들을 한 데 묶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는 의례적인 행사들도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매년 설과 추석 등 민족의 명절에 고려인들은 한데 모여 잔치를 벌인다. 결혼과 돌잔치 등도 있다. 주일마다 모여 예배하는 교회도 기능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들은 6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라별로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타지키스탄 순(고려인 동포수)이다. 경기도 안산 뗏골마을, 광주의 고려인마을 등이 대표적으로 고려인이 모여사는 곳이다.

광주의 경우 고려인을 돕기 위한 후원단체나 후원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 고려인 강제 이후 70주년때는 고려인의 상황을 조명하는 학술대회와 전시회도 열었다. 올해엔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연해주 고려인 항일독립운동 자료전시회-우리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싸운 고려사람입니다’를 10일부터 광주시청 로비에서 열었다. 전시기간은 8일간. 김병학씨가 수집한 자료에서 선별, 전시회가 마련되었다. 

고려인들은 한민족, 같은 동포이면서도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자·근거지를 잃고 유랑해온 사람들)의 삶을 살아온 이들은 조국에서의 정착을 고대하고 있다. 역사로부터 배반당한 고려인들은 유랑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만 하다.

고려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는 자료를 물려줄 수 있는 박물관이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조국의 품에 돌아왔지만, 고려인 후손들이 살기에는 아직도 어렵지만 같은 민족이요, 동포"라며 "고려인의 역사를 알게해 줄 박물관이 세워지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고려인 마을 공동대표이기도 한 이천영 목사는 "현재의 고려인센터 인근에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있다"며 "올 상반기 예정된 부지라도 매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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