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21)즐거운 상봉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25일 07시57분    조회:30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924년 1월 25일, 한국 《동아일보》는 〈미술계의 두 수재〉라는 제목으로 한락연이 우수한 성적으로 상해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한 소식을 게재했다.

▨ 최룡수

(1)

5월은 백화가 만발하는 계절이라 북경의 곳곳에는 꽃향기가 가득하였다. 수도공항 대기청은 봄기운이 완연하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5월 12일 오후, 일본 항공편이 공항에 도착했다. 70세가 넘는 한인숙씨는 비행기에서 내려 아들 차명철씨의 부축하에 인파 속을 헤치고 나와 두리번거리며 마중 나온 가족을 찾는다. 녀동생 한건립과 남동생 한건행을 만나자 그들은 부둥켜안고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한인숙은 눈물을 닦으며 남동생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를 정말 많이 닮았구나!”라고 격동되여 말했다. 이는 바로 중국의 유명 화가인 한락연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자녀들이 북경공항에서 만나는 감격적인 장면이다.

자동차가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 한씨 자매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큰 언니는 녀동생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게 꿈이 아니겠지?”라고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70년이 되였어. 그 때 나는 출생한 지 6개월도 안되였고 7살 때 할빈에서 한번 뵌 적이 있는외에 그 후로 더는 만난 적이 없었어.”라고 덧붙였다.

녀동생은 “아버지가 1947년 사망했을 때 저는 3살, 건행이는 2살이였구요. 아버지에 대해 우리도 엄마의 얘기를 듣고 알게 되였어요.”라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 한녀사는 서둘러 트렁크를 열고 60여년간 간직해온 사진을 꺼냈다. 바로 1926년에 찍은 가족사진이였다. 비록 시간이 오래 지나 이미 누렇게 색이 바랬지만 인물의 륜곽은 아직 비교적 뚜렷했다. 앞줄에는 한인숙과 생모 최신애가 앉아있고 뒤줄에는 아버지 한락연이 서있었다. 녀동생은 벽에 걸린 1946년 가족사진을 내려 자세히 대조해보았다. 2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 등 10개 국을 누볐던 그들의 아버지는 여전히 생기가 넘치고 눈부신 모습이였다. 다만 세월이 흐르고 시국이 변하면서 가족 구조가 달라졌을 뿐이였다. 사진 속 한락연은 건립을 안고 안해 류옥하가 건행을 안고 나란히 앉아있었다. 한인숙은 사진을 보면서 익숙하지 않은 한어로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혈육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2)

한인숙 모자는 북경에 도착한 후 건립의 집에 머물겠다고 고집했다.

그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조선어, 한어 그리고 영어까지 써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어를 넘나드는 감정을 리해하군 하였다.

그들은 함께 옛일을 회상하였다. 1919년 봄, 아버지가 고향인 길림성 룡정현(지금의 룡정시)을 떠날 때 인숙은 태여난 지 6개월도 안되였다. 1926년, 최신애는 일곱살 된 딸 인숙을 데리고 할빈으로 남편을 찾아갔다. 그들은 마가구에서 집을 세내여 6개월 동안 살았지만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토요일 밤에만 집으로 돌아왔다. 인숙은 그들이 할빈을 떠나던 날 밤 아버지가 동료 한명을 보내 그들을 기차로 배웅하면서 자신은 전보대 뒤에 숨어 지켜보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후에 그녀는 아버지가 당시 반동 군대와 경찰의 엄밀한 감시를 받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1935년, 룡정 천주교회의 독일인 목사가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개인 그림전을 열었고 곧 돌아온다는 편지를 전해왔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에도 최신애 모녀는 승리를 안고 돌아올 한락연을 기다렸지만 또 한번 실망했다. 그들은 한줄 희망을 안고 조선으로 떠났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모두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인숙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기다렸고 60여년을 줄곧 기다려왔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1988년 12월, 한락연의 유작 전시 소식은 한락연의 친척과 친구들이 그에 대한 추모활동을 시작하게 되였고 여러측의 노력 끝에 한락연의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였다. 맏이 인숙은 “평생 고생만 하면서 살아왔다. 어머니와 단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왔지… 비록 지금은 아들과 손자가 많이 있지만 형언키 어려운 고독감이 있었다”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건립은 “어머니로부터 우리에게 큰언니가 있다고 들었고 어머니도 여러 모로 언니네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종시 소식이 없었어요. 어머니한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아버지랑 결혼할 때 아버지는 그에게 고향에서 결혼한 적이 있고 딸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대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고향에 편지를 보내 딸을 중경으로 데려와 공부시키자고 권했고 아버지가 몇번이나 편지를 보내셨지만 답장이 없었대요,”라고 말했다.

건립의 딸은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전까지도 저에게 ‘이모를 찾게 된다면 꼭 사이 좋게 보내라’고 얘기하셨어요.”라고 덧붙였다.

인숙은 눈물이 글썽하여 “어머니의 관심에 고맙구나. 아쉽게도 우리가 늦게 찾아오다 보니 어르신을 뵙지 못했구나.”라고 말했다.

건립과 건행의 생모 류옥하는 광동성 대산현 사람이다. 1929년에 남경 금릉녀자대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에 기독교 녀청년회로부터 미국에 파견되여 공부를 하였고 이듬해 콜롬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에 남아 일하라는 미국 이민국의 초청을 거절하고 결연히 조국에 돌아와 항일구국 선전활동에 종사하였다. 1938년에 무한에서 항일구국 활동에 종사하는 화가 한락연을 알게 되였고 1939년에 중경에서 결혼한 후에 선후로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3)

5월 18일, 그들은 중국미술관에 갔다. 건립은 “해방 초기에 어머니가 책임지고 아버지의 모든 유작을 나라에 바쳤고 지금은 전부 이곳에 소장하고 있어요.”라고 언니에게 알려주었다. 한녀사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5월 19일, 그들은 북경언어학원에 가서 아버지의 생전 친구인 성성교수를 방문했다. 90세 고령의 성선생은 한락연의 예술생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성선생은 “내가 락연을 ‘중국의 피카소’라고 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는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반파쑈 투쟁에 참가하였고 예술사에 탁월한 기여를 했다”고 격동되여 말했다.

저명한 화가 황주는 일찍 글을 써서 그의 계몽선생 한락연을 기념했다. 저명한 화가 엽천여는 한락연을 ‘첫 키질벽화를 연구하는 중국 화가’라고 불렀다. 중앙미술학원 김유노교수는 한락연을 ‘우리 나라에서 유럽을 다녀온 화가중 제일 먼저 전통문화와 창작활동을 결합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문화재감정위원회 부주임인 사수청교수는 한락연의 작품을 “매점의 유작마다 전부 국보다.”라고 인정했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짧다 보니 그들은 아버지의 생전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뵙지 못했다. 한인숙녀사 모자는 북경을 떠나기전 팔달령에 가서 만리장성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며 친인의 유골이 뿌려진 장성 서단의 가욕관을 떠올렸다.

/편역: 《길림신문》 리전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영웅은 갔어도 넋은 남아   김창영   일행은 리홍광 렬사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을 찾기 위해 평정산에서 차머리를 돌렸다. 사실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은 혼자서도 수없이 찾았던 곳이다. 렬사릉원이 있는 남산은 신빈시민들의 힐링의 곳으로 최적의 산행코스였는데 나는 그곳에서 편안...
  • 2019-06-03
  • 연길시 하남가두 백국사회구역의 백세로인 조경상이 자신이 평생 간직했던 영예증서와 메달들을 연변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로인의 아들이 연변박물관 사업일군에게 증서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백세고령인 조경상로인은 퇴직전 기층일선에서 일하면서 농업모범, 부녀로력모범 등 수많은 영예들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자...
  • 2019-05-20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26일, 중국조선민족사학회(사학회) 제3기 리사회 제1차 회의가 북경에서 있었다. 이번 회의에는 사학회 회장 정신철, 사학회 운영리사회 리사장 리상철, 전임 리사장 남룡, 리사 김의진, 리춘일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 첫 순서로 지난 한해동안 사...
  • 2019-04-29
  • 27일, 제11회 진달래축제를 맞아 진달래민속촌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상품을 파는 상인, 관광하는 관광객들의 흥겨운 표정과 달리 도로 량켠에 세워진 전시판 앞에서 숙연한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끔식 볼수 있었다. 올해 진달래민속촌은 이왕과 달리 진달래축제를 계기로 화룡지...
  • 2019-04-29
  •   김성민(우) 관장이 731부대 전 부대원인 스즈키 스스무로부터 731관련 경력을 듣고 있다 (2000년 7월)    “열심히 준비해 나아가다 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렬관 김성민 관장의 말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김성...
  • 2019-04-15
  • 현재  연변에는 11개 렬사릉원과 343개 기념비가 있어 전성 70%에 달하고 혁명렬사는 7,377명으로 길림성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 초기부터 연변의 각급 당위, 정부 및 사회 각계에서는 혁명선렬들을 기리기 위해 혁명렬사 기념시설들을 건설했다. 혁명렬사 기념비들은 혁명전통을 전승하고 애국주의교양을 전개...
  • 2019-04-09
  • 4월 1일 기자는 주퇴역군인사무국, 연변군분구 관련일군과 함께 진증길, 정동춘렬사의 가족을 찾기에 나섰다. 곧이어 두 렬사의 가족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동춘렬사의 제수 오채봉씨) 당일 기자는 선후로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주퇴역군인사무국을 찾았다.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사업일군의 조사를 통해 항...
  • 2019-04-03
  • 이승만 기념사업회 등 성명 발표 '이승만은 美 괴뢰' 김용옥 발언 비판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지난 16일 KBS 강연 프로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해 이승만 전(前)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발언한 방송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
  • 2019-03-27
  • 피우진 "검토한 적 없다→가능성 있다" 입장 변화 보훈처 '심사기준 개선'까지 언급…방침 정한 듯 野 "그런 기준이면 김일성과 무슨 차이냐" 비판 약산 김원봉. 의열단을 조직해 일본 요인 및 친일파 암살과 주요 시설 폭파 작전을 벌였다. (사진=약산 김원봉 연구)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피우진 국...
  • 2019-03-27
  • 한국재외동포재단이 개최한 ‘2018 한국재외동포재단 초청장학생 력사문화체험’이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 3일 간의 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재외동포재단 초청장학생 48개국 2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장학생들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한국 력사·문화 체험을 통해 한국에 대...
  • 2018-11-23
  • 연변대학민족연구원이 주최하고 동북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와 연변조선족총소년교육연구회가 협력한 명동학교설립 110주년 기념학술회의가 10월 27일 이라는 주제로 연변대학 본관 4층 회의실에서 개최되였다. 학술회의 개막식에서 연변대학교 교장 김웅이 환영사를, 동북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소장 심송철이 개회사를,...
  • 2018-10-31
  • 연길시 소영진 오봉촌 오봉산아래에 높이가 각각  57메터, 45메터, 22메테에 달하는 돌바위 3개가 나란히 솟아 형제바위를 이루고 있다. 촌민들에 따르면 1932년 오봉금광 광산로동자이며 중공 지하당원이였던 윤철주, 왕영복, 김정완은 물감옥에 같혀있던 로동자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장렬히 희행되였으며 세 사람의...
  • 2018-10-27
  • 10월 27일,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주최하고 통화청산그룹에서 협력한 ‘교육의 선구자’ 김약연 탄신 150돐 기념행사가 ‘중국조선족교육의 제1촌’으로 불리는 룡정시지신진동명학교에서 치러졌다. 이번 행사는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처음 진행하는 김약연 기림행사로 된다. 다년래 조선족교육에 일관...
  • 2018-10-27
  • 한락연 탄신 120주년을 맞는 기념활동이 26일, 룡정시에서 있었다. 이번 활동은 연변주당위 선전부와 룡정시당위, 룡정시정부에서 공동으로 주관하고 룡정시당위 선전부, 룡정시당안국,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한락연연구전업위원회에서 개최했다. 활동에는 원 중앙통전부 부부장이며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인 리덕수, 연변...
  • 2018-09-26
  • 연길시 제2진 ‘문화경지’ 현판식 거행 현판식 장면 연길시가 ‘력사문맥 발굴, 연길기억 찾기’ 문화캠페인 전개로 문화자원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연길시 제2진‘문화경지(景址)’현판식이 9월 21일,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거행되였다. 중공연길시위와 연길시인민...
  • 2018-09-25
  •      박대호는 조선혁명군 부사령으로 지난 20세가 20, 30년대 24년간 동북의 환인 관전 일대에서 피어린 반일투쟁을 견지하며 일본군국주외와 불요불굴의 투쟁을 견지해온 항일투사이다. 그의 사적은 ‘3강’(압록강, 혼강, 부얼강) 지역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그의 묘소는 환인만족자치...
  • 2018-08-20
  •     리승권 전 흑룡강성조선어방송국 국장이 회억하는 고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 부주석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리민 녀사와는 지난 세기 80년대 ‘동북항일련군가곡집’ 출판을 위해 만나면서 인연을 맺게 되였는데, 어언 30여년이 흘렀군요. 올봄 제가 단동으로 휴양을 가면서 전...
  • 2018-07-26
  •   본사소식 7월 25일, 동북3성 항일운동 활동 현장을 돌아보고 애국지사의 뜻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취지의  2018년 ‘중국 동북3성 항일운동 유적지 답사’ 발대식이 중한교류문화원 2층 강당에서 진행되였다.   중한교류문화원, 월드코리안신문, 대한걷기협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 2018-07-26
  •          동북항일련군로전사, 전 흑룡강성정협부주석 리민동지 유체 고별식이 2018년 7월 29일(일요일) 할빈시 천화원에서 열린다고 정협 흑룡강성위원회 판공청이 지난 21일 통보했다.   앞서 22일 오전 10시, 흑룡강성과 할빈시 여러 조선족단위와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안산가 23번지에 있는...
  • 2018-0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