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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1)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월7일 09시23분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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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시가지 해란강과 륙도하의 합수목에 세워진 락연공원

○ 김동수

프롤로그

불사조(不死鸟)는 애급 신화에 나오는 령조(灵鸟)로서 상서로운 새이다. 그리스어로 피닉스(phoenix)라고 해서 고대 애급의 상상의 신조(神鸟)였다. 우리말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새를 상징한다.

혁명가, 예술가, ‘비단의 길’ 문화유산 보호의 선구자, ‘중국의 피카소’, 국제반파쑈 투사이며 걸출한 조선족화가 등 여러가지 타이틀로 력사에 남아있는 전기적 색채가 짙은 천부적 화가 한락연을 말할라 치면 자연 불사조를 련상케 된다.

한락연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70여년이 지났다. 한락연이라는 이름은 1951년 새 중국 창립 1돐을 경축하여 북경에서 개최된 회화전에서 언급된 후, 근 30여년 세월이 흐른 후인 20세기 70년대말에 와서야 다시 력사무대에 등장하였다. 당시 문화대혁명이 결속된 후, 많은 로간부들의 가짜안건과 억울한 사건들을 평판하는 사업들이 륙속 전개되였다. 동북3성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과정에서 한락연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 지방 당조직과 당사 연구부문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1982년, 장춘에서발행하는 《사회과학전선》(제4기)에는 〈한 진정한 혁명가―루이 · 애리가 한락연을 말하다〉(一位真诚的革命者—路易•艾黎谈韩乐然)는 문장이 실렸다. 이것이 발단이 되였고 그 후 중공중앙당학교의 고 최룡수(崔龙水)교수의 진지하고 참다운 연구와 적극적인 노력 끝에 한락연 연구는 첫 스다트를 뗐다.

사실 한락연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3년 우연히 림무웅(林茂雄)선생이 쓴 《중국조선민족미술사》를 접하면서부터였고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04년경부터였다.

당시 중앙인민방송국 ‘오늘의 화제’ 프로에서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편집실에서 사업하는 김성룡(金成龙)선생이 중국 관내지역 조선민족반일투쟁유적지를 답사하고 집필한 《불멸의 발자취》를 매주1회, 매회 20분 량으로 도합 100회를 방송하였다. 그 가운데 ‘혁명가이며 예술가인 한락연과 그 유가족’이라는 프로그람도 들어 있었다. 당시 연변에는 애청자협회가 조직되여있었는데 책임자는 현대문화인쇄공장 사장인 문태경(文泰京)선생이였다.

2010년부터 나는 조직의 수요와 안배로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함께 일하는 박호만(朴浩万) 회장님께 룡정에서 태여난, 그것도 192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유명한 조선족 화가 한락연을 소개해드렸더니 저으기 놀라시며 그런 위인도 있냐고 하면서 자료수집을 부탁하였다. 나는 문태경선생을 통하여 김성룡선생과 전화 련락을 하였고 북경에 가서 그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한락연의 딸 한건립(韩健立)과 사위 강기민(康冀民)대사, 아들 한건행(韩健行)을 만나고 긴 시간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룡정 태생인 김성룡선생은 나에게 2005년 중국미술관과 한국 현대국립미술관에서 련합으로 출판한 《중국조선족화가 한락연》이라는 화책을 선물하였다.

2010년 1월, 룡정시 리화호텔 4층 회의실에서 룡정에서 처음으로 되는 한락연유작전을 가졌다. 화책을 복사한 그림전은 비록 소박하고 조촐했지만 당시 룡정시당위 윤성룡(尹成龙)서기와 안명식(安明植) 시장은 직접 전람을 관람하고 심도 있게 한락연을 연구하고 그의 력사자료들을 발굴하는 기초적인 사업을 잘할 것을 부탁하고 적극적인 지지도 약속하였다.

이렇게 되여 한락연을 연구하고 기리는 사업은 룡정에서 급물살을 타게 되였는데 그 일환의 첫 작업으로 한락연공원을 건설하고 한락연동상을 제작하여 세우는 것이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처음에 나와 박호만 회장님은 나름 대로 예산이 제일 적게 드는 석조각 한락연상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길림시천강(天岗)석조각공장에 가 주문하였다. 몇차례 다녀오면서 쓴소리, 잔소리를 늘여놓으며 조각상을 세밀하게 가공하였으나 좀처럼 한락연의 모습과 형상이 나타나지 않아 거의 포기상태였다.

한락연동상을 조각하는 김광혁조각가

그러는 과정에 나는 사업상 인연이 돈독한 연변박물관 김철수(金哲洙) 전임 부관장을 통하여 룡정 출신의 김광혁(金光赫) 조각가를 알게 되였다. 1961년생인 김광혁 조각가는 다년간 뿌리조각(根雕), 목조각(木雕)업에 종사하면서 수차나 주급, 성급 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는 그와 반복적으로 협상하고 사정하여 시장가보다 훨씬 싸게 유기유리﹙有机玻璃﹚로 한락연조각상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연변박물관에서 퇴직한 지승원(池承元) 화백에게 부탁하여 부감도를 설계하였다.

이러던차 북경에 있는 한락연 유가족과 리덕수 전임 전국민위 주임도 우리가 한락연동상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고 제기되는 난제를 해결해주려고 발벗고 나섰다. 특히 리덕수 주임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경중일한기업가협회 권순기 회장님과 김의진 부회장님께 실질적인 지지와 방조를 주문하고 질 좋고 값 높은 동으로 한락연동상을 주조하기로 합의하였다. 얼마 후, 고마운 두 분은 한락연동상 제작비를 선뜻이 협찬하여 주었다.

한락연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선 전임 국가민위 주임인 리덕수와 필자(오른쪽)

동상 제작과정에서 상상외로 수많은 난관과 애로가 나타났다. 내가 며칠 밤을 새우면서 일을 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진흙으로 모형을 만드는 과정도 몇십번을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손에 스케치노트를 들고 있는 한락연의 전신상으로 만들었다가 가족의 건의에 따라 전신상을 취소하고 반신상으로 다시 수정하였다.

한락연이 혁명가인 만큼 얼굴표정이나 옷차림도 조금은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그리고 가족의 의견을 청취했더니 한락연은 이름과 같이 그 어떤 역경이나 시련, 곤난 앞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락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였다면서 1935년에 그린 그의 활짝 웃은 소묘 자화상을 표준으로 삼을 것을 건의하였다.

여직껏 알심을 드린 노력과 정성이 단번에 물거품이 되면서 허탈감과 실패감, 원망과 개탄이 뒤반죽되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족의 요구를 100% 만족시키는 것이 한락연렬사에 대한 가장 큰 존경과 추모였다. 나는 동산재기를 선언하였고 김광혁 조각가는 불평 한마디 없이 무너진 진흙무지 속에서 또다시 팔을 거두고 나섰다.

조각 현장을 찾은 박호만과 한건립 강기민 부부, 리현봉교수 (좌로부터)

우리는 동북사범대학 조각학부의 리현봉(李显峰) 학부장을 청해와 리론 강의와 현장지도를 받았다. 나중에는 한락연의 딸 한건립녀사와 사위 강기민대사를 현장에 모셔다놓고 직접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하나하나 완공해나갔다.

이런 과정을 30여차 반복하면서 끝내 유기유리 한락연조각상 모형을 완공하였다. 제작과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 가장 세밀하고 치밀한 동주조를 거쳐야 하였다.

동북 지역에서 동조각상을 수준급으로 주조하는 곳은 대련시 금주개발구에 자리 잡고 있다. 초봄의 대련은 기온이 낮고 날씨가 차고 으스스하였다. 년세 많은 박회장은 밤새 기침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그 다음부터 나 홀로 대련에 무려 4, 5차나 드나들며 현장에서 푸념과 잔소리를 늘여놓으며 고품질의 한락연동조각상을 주조하여 기한내에 락연공원에 안장하였다.

1919년에 태를 묻은 고향을 떠나서 무려 90여년이 지난 후에 한락연은 동상으로 되여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리덕수 주임이 락연공원, 락연정이라고 제사를 써주셨다. 제막식날, 한락연의 딸 한건립녀사는 흐느껴 울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는 고향땅에서 고이 잠드세요. 외로워 마세요. 아버지는 절대 혼자가 아니예요. 수많은 고향사람들이 아버지를 동반하고 그릴 거예요.”

그러면서 한락연조각상 제작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온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시하였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고향의 아침’ 제작팀(프로 담당에 강창익)에서는 수차나 룡정에 다녀가면서 〈한락연을 기리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프로를 만들어 2011년 7월17일 아침시간에 방송하였다.

그동안 한락연을 기념하고 기리는 많은 실제적인 활동을 벌려오면서 쉬는 날이 따로 없이 뛰고 뛰면서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름 대로 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그 과정에 한락연이라는 위인과 그의 전기적 생애와 예술인생에 저도 모르게 깊이 감화되고 매혹되였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회 최하층에서 살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과 질고를 주목하고 관심하고 그들의 처지와 생활모습을 생동한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 그의 고결한 인품과 인격이 바로 필자가 그를 숭배하고 우러르게 되는 가장 큰 리유라고 할 수 있다.

한락연기념관에 써준 만리의 제사

1945년 6월생인 한락연의 아들 한건행씨는 1964년 북경사범학원 체육학부를 졸업하였고 북경에서 국가체육신문총서 대형활동쎈터에서 사업하다가 2011년 7월에 페암으로 불행히 사망하였다. 한건행의 생전에 나는 그와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전임 주석이였던 만리(万里) 아들과의 친밀한 우정관계를 빌어 ‘한락연기념관’이라는 만리의 친필 제사를 써줄 것을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다.

2016년 9월 28일 오후, 룡정시정부청사 3층 작은 회의실에서 한락연의 딸 한건립은 이 친필제사를 룡정시정부에 기증하였다.

2017년 7월, 연변교육출판사에서는 한락연연구회의 협조하에 〈나는 중국사람이다〉는 한락연의 이야기를 의무교육 조선족학교 교과서 제4학년 한어문 교재에 수록하였는데 이는 일대 장거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한락연은 120여년전에 룡정에서 태여나서 성장하였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만경창파를 헤가르는 머나먼 항행에 닻을 올렸다.

나는 그의 인생궤적과 발자취를 따라 동북은 물론 화북, 화남, 서북 등9개 성의 광범한 지역을 전전하면서 한락연의 생전의 모습과 숨결을 머리와 가슴과 피부로 체험하고 느껴봤다.

속담에 초행길이 어렵다고 했다.

한락연의 발자취를 추적하여 나선 이 길이 바로 초행길이자 고난의 길이였다. 그러나 “길이란 원래 있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주 다니면서 길이 생겨났다.”는 로신선생의 말처럼 한락연이 개척한 길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걸을 수 있어서 행운이고 자랑이고 보람이였다.

불사조―한락연, 과연 그는 어떤 업적을 후세에 남겼을가?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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