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8 /
1
오늘날 혼인의 성사를 ‘진진지호(秦晋之好)’라고 비유하는 말이 최초에는 춘추시대 진(秦)나라와 진(晋)나라 간의 정략결혼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2,500년 전, 진(秦)나라와 진(晋)나라의 세력 범위는 어떤 상황이었을가? 고고학자가 산시(陝西 섬서)성 이촨(宜川)현에서 발굴한 춘추시대의 한 유적지가 이 연구에 새로운 근거를 제공했다. 탐사를 통해, 이 유적지는 거주지와 묘지로 구성되었고 남북 길이는 700m, 동서 너비는 250m, 면적은 약 10만m2 이다. 충핑위안 유적지의 발견과 발굴은 춘수시대 진(晋)나라의 세력 범위, 진진(秦晋) 간 정치세력의 변화 및 북방 민족이 남쪽에서 활동한 구역의 확정 등에 새로운 근거를 제공했다. 신화망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